[임요희의 작가노트] 미인박명 혹은 미인박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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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05 06:31:00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중국 저장성 항저우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중국에는 서호라는 이름의 호수가 약 800개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항저우의 서호(西湖·시후)다. 서호는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西施)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의 서호는 서쪽에 있는 호수라는 뜻이 아니라 서시처럼 아름다운 호수라는 뜻이다.

서시의 아름다움을 빗댄 고사가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침어(沈魚)’다. 하루는 어린 서시가 강가에 빨래를 하러 나갔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물고기들이 정신줄을 놓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고 한다. 침어는 강바닥에 물고기를 가라앉힐 만큼 뛰어난 미모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장자’에 등장하는 ‘효빈’ 고사다. 서시는 위장이 안 좋아 손을 늘 가슴에 얹고 얼굴을 찌푸리며 걸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마을 여자들이 그래야 이쁜 줄 알고 똑같이 따라 했다고 한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부자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가난한 이는 아예 짐을 싸서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버렸다고 한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다. 여자가 아름다우면 팔자가 기구해진다는 뜻이다. 박명(薄命)은 명이 짧다는 뜻이 아니라 박복하다는 뜻이다. 단명도 물론 이에 해당되기는 하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시의 삶도 평탄치는 않았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와의 전쟁에서 패했다. 구천의 참모 범려는 미인으로 소문난 서시를 데려다 오나라 부차에게 공물로 바쳤다.

“이 여자를 갖는 대신 월나라는 그냥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도 잊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니 부차는 오죽했으랴. 부차가 서시에 빠져 지내자 오자서가 앞으로 나서 월나라를 칠 것을 종용했다. 그가 뜻을 굽히지 않자 부차는 오자서를 죽여버렸다. 그러는 사이 월나라는 국력을 키워 오나라를 집어삼켰다. 경국지색이란 서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나라가 망하자 이번에는 월왕 구천이 서시를 데려다가 자신의 후궁으로 삼아버렸다. 구천의 아내인 월부인이 이를 보다 못해 서시를 죽여 없앴으니 미인박명이란 아름다움이 지나쳐 스스로를 해치는 칼이 될 때 쓰는 말이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미인박명을 ‘미인박멸’이라고 우스개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월부인 같은 권력 있는 여인들은 아름다운 연적을 그냥 두지 않았다. 둘은 결국 같은 말이 됐다.

임요희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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