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의 작가노트] 무지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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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의 작가노트] 무지의 지

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13 06:30:30

순수의 역설(패러독스)이라는 게 있다.

‘순수한 사람은 자신이 순수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안타깝지만 순수한 사람은 자기 입으로 자기 정체성을 밝힐 수 없다. 그가 자기를 순수한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순간 불순한 사람이 되니까 말이다. 진짜 순수한 사람은 자신이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품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거짓을 말한 걸까, 참을 말한 걸까. 그가 참말을 한 것이라면 그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그는 거짓말쟁이가 아닌 게 된다.

역설은 부정하기 힘든 추론을 거쳐,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에 도달하지만 진실의 작은 조각을 보여준다.

역설의 정점은 ‘무지의 지’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역설로 유명한 이 말은 ‘나는 내가 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로 풀이할 수 있다. 내가 뭘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놀라운 앎은 없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의 진짜 의미는 ‘너는 네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라!’이다. 이것을 메타인지(초월적 인지)라고 한다.

교육학에서 메타인지는 세 종류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첫째 내가 가진 지식의 총량은 얼마인가(declarative knowledge), 둘째 나의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가(procedural knowledge), 셋째 나에게 필요한 지식은 무엇인가(conditional knowledge).

무지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광신도·정치적 극단주의자·음모론자·꼰대 상사가 이에 해당된다. 평생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한 권도 안 읽은 사람보다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내 지식 수준과 이해도를 인지한 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취하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는 작업을 수행한다면 세상을 널리 이롭게까지는 못해도 적어도 무해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

내 안에 들어가 있으면 나를 볼 수 없다. 나는 알기 위해서는 나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라는 말이 있겠나.

사람이 배워야 하는 것은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보같은 질문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물색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뭘 모르는지 아는 것!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임요희 시인·소설가

임요희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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