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의 작가노트] 밥 한 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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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20 06:30:30

“네가 하고자 하고 일이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법칙에 부합되도록 하라!”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은 어떤 조건도 없이 무조건 지켜야 하는 명령을 말한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추상적 보편성’으로 불린다.

대의를 앞세우는 사람이 간과하기 쉬운 게 사소함이다.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치는 사람이 자기 직원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갑질을 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모른 체한다면?

청년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면서 자기 밑에서 일하는 청년에게는 언어 폭행을 일삼는 정치인, 인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어려운 이웃은 모른 체하는 목회자,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하면서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인은 열외로 치는 공권력이 대표적인 예다.

칸트의 보편성이 추상적이라면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보편성은 구체적이다. 슬라보예 지젝에 의하면 “헤겔의 ‘구체적 보편성’은 특수한 것과 좀 더 넓은 전체 사이의 관계, 특수한 것이 타인들 및 그것의 맥락과 관련을 맺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특수한 것이 자신과 관련 맺는 방식, 그것의 특수한 정체성 자체가 내부로부터 분열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헤겔 레스토랑+라캉 카페’ 중에서).

‘구체적 보편성’은 좋은 세상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 내가 좋은 세상의 1인으로 기입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아동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가 칸트의 보편성이라면, 가난한 아이에게 밥 한 끼를 지원하는 것은 헤겔의 보편성이다.

‘아이는 아이다’ ‘법은 법이다’ ‘나는 나다’를 헤겔 용어로 무한판단이라고 한다. ‘아이’는 철없는 아이지만 보호받아야 할 아이이기도 하다. ‘법’은 엄정하게 지켜져야 할 사회적 약속이지만 사람을 향한 것일 때에 의미가 있다. ‘사람’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숙주면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차에 뛰어드는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다.

아동의 권익을 위해서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가. 당신은 사회적 서열이 낮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밥 한 끼는 지극히 작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구원할 힘이 담겨 있다. 구원은 도덕법칙이라는 거대한 추상성이 아닌 사소한 만 원짜리 한 장에 깃들어 있다. 사소함은 구체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거대 담론보다 힘이 세다.

임요희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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