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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 표방하면서 진정 한국적이라 칭송받는 이 드라마
디즈니플러스 ‘무빙’에 드러난 지극히 한국적 서사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0-15 08:49:00
 
▲ 미국에 태어났으면 어벤저스로 불리며 추앙받았을 사람들이 한국에서 태어나 진로를 고민하는 이상하고 신나는 드라마 ‘무빙’. 디즈니플러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디즈니플러스 무빙이 화제다. 부산영화제 아시아컨텐츠어워즈를 싹쓸이했다고도 하고 디즈니 구독자 수를 14만 명이나 늘렸다고도 한다. 흥행도 작품성도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말하면 극의 전개며 편집이 그다지 흡족한 수준은 아니다. 불필요한 게 자꾸 눈에 들어오고 꼭 필요한 건 안 보인다. 원형탈모증처럼 듬성듬성 여기저기가 빠져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칭찬해주고 싶은 포인트를 몇 개 갖고 있다.
 
먼저 이 드라마는 히어로물이 한류를 입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번개를 부르고, ‘칼빵을 맞아도 죽지 않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지구를 구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는 내내 별종 취급을 받다가 조직의 총알받이로 전락한다. 심지어 조직의 기밀 보호를 위해 제거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목에 보자기를 묶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무모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을 통과한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주인공 김봉석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아버지의 뛰어난 능력과 초월적 시청각 감각을 가진 어머니의 피를 물려 받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아들의 능력을 쉬쉬하며 감추려 한다. 국정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비정한 임무의 세계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봉석은 제어할 수 없는 자신의 몸이 두렵다. 마음이 붕 뜨면 몸은 더 잘 떠오른다. 어느 날, 여자친구 희수가 팔을 잡아오자 마음의 부력을 견디지 못한 봉석의 몸이 그만 붕 떠오르고 만다. 봉석은 희수에게 자신에게서 떨어지라고 외친다. 희수가 떨어지자 봉석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른다. 봉석은 자기를 잡으라고 다급하게 외친다. 잡는 순간 더 떠오른다. 잡을 수도 떨어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봉석은 떨어져!’잡아!’를 반복한다. 강풀 작가의 특기인 비틀기가 이 드라마에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런 딜레마는 봉석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평준화를 지향하는 한국 풍토에서 넘침은 곧 모자람이다. 현실 세계에 발붙이고 살려면 초능력을 숨겨야 한다. 그러나 그는 불의와 맞서 싸우고 약자를 도와야 할 히어로의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현실과 유리될 수도 없고 현실에 발붙이고 살 수도 없는 그의 삶은 정확히 떨어져!’잡아!’ 사이에 놓여 있다.
 
이 드라마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히어로물이면서 학원물이라는 것이다. 입시를 코앞에 둔 아이들은 공부에 매진한다. 자신의 진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3 아이들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인 것은 우연일까.
 
마블 영화 엑스맨엔젤은 어린 시절, 등에 날개가 돋아나자 이를 숨기기 위해 가위로 자른다. 평범하지 않음에 대한 공포는 서양 히어로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아이들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고3 때 모든 게 결정 난다. 무엇이 될지, 어떻게 살지
 
물론 긴 인생을 사는 동안 번복의 여지도 있고 다시 시작할 기회도 있지만 한 번 정한 진로를 바꾸는 데는 매우 큰 에너지가 투여된다. 한 인간의 미래가 결정지어지는 고3이라는 독특한 지점을 도입하면서 무빙은 진정 한국적인 히어로물이 되었다.
 
미국에 태어났으면 어벤저스(응징자)나 히어로(영웅)로 불리며 추앙받았을 사람들이 한국에서 태어나 진로를 고민하는 이 이상하고 신나는 드라마, 끝까지 시청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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