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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한동훈과 인천시의원들에게 보내는 격문(檄文)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1-19 00:02:40
 
▲ 허겸 사회부장
어떤 주제로 데스크 칼럼을 쓸까 잠시 고민하다 문득 이런 생각과 맞닿았다. 새해 벽두부터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새삼 화두다. 
  
본지가 그간 보도해 왔고 앞으로도 보도할 5·18 특집 시리즈를 영국의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하는 건 어떨까. 그것도 표지에 제목이 실리도록 추진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근거가 아주 없진 않다. 의·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1980년 5월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가 없었음을 본지가 밝혀 냈다. 당시 검시조서와 검안서를 공신력 있는 의료인이 분석한 기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김영삼정부 때 위·변조된 기록이 아니라 원본 그대로 를 분석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모티브가 됐던 사건이건만 현실 속에선 집단 발포의 직접 목격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절대다수가 40년 넘게 군이 집단 발포했다고 믿고 있다.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뒤집은 의·과학적 취재 결과로서 가치가 있다고 기자는 믿는다. 
 
그 내용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자. 먼저 시신의 사망 위치가 도청에서 금남로를 따라 1km까지 흩어져 있다. 계엄군이 앉아 쏴, 서서 쏴 자세로 도청 앞에 모인 시민을 향해 일제 사격을 했다는데 어떻게 사망자가 곳곳에 흩어져 분포될 수 있나. 총 맞은 채로 1km를 걷다가 죽었나. 
 
동구청 골목과 수협 뒤편 골목에서 죽은 이들은 또 뭔가? 총알이 좌우로 휜다는 얘기는 일찍이 들어본 바 없다. 골목 안쪽에서 죽은 사람은 누군가 같은 골목이나 건물 옥상에서 쐈어야 죽을 수 있다. 그곳엔 계엄군이 없었다. 이 내용은 본지의 5·18 진실 찾기③·④·⑮편에서 다뤘다. 
 
도청 앞에서 일제 사격한 총알이 90도 꺾여 골목으로 날아갔다는 얘기다. 이게 가능하다면 과학적 대이변이니 네이처 표지를 장식해도 된다. 
 
피해자의 사망 시각도 오전부터 저녁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다. 계엄군이 격발한 총알이 허공을 갈라 45시간 만에 희생자 몸에 박힐 순 없다. 
 
5·18이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이야기는 아니다. 전두환의 사격 명령에 따라 계엄군이 시민을 쏴 죽였다는 게 요체다. 그래서 전두환은 악마이고 죽어서도 묫자리 하나 못 찾아 마땅하다는 논리다. 
 
계엄군이 없는 지역에서 총에 맞아 죽은 임신부 최미애 씨 사례도 과학적 불가사의다. 수천 명에 포위돼 시위대가 던지는 돌에 맞아 죽을까 봐 벌벌 떤 공수부대가 1km 떨어진 곳까지, 그것도 전남대 앞 시위대가 가득한 용봉교를 뚫고 중흥동 시장 골목까지 가서 임신부의 이마 정가운데를 쏘고 달아나는 게 가능한가. 계엄 시 명령 불복종은 사형인데도?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군인의 모습인가. 
  
장갑차 위에서 태극기를 펼쳐 들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조사천 씨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계엄군은 앞에 있었는데 시신 부검에서 총알은 위에서 70도 각도로 땅을 향해 내리꽂힌 것으로 분석됐다. 
  
이상하지 않나? 앞에 있는 군인이 쐈는데 어떻게 위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나. 건물 위에는 계엄군이 없었다. 군인이 도청 앞에서 위로 쐈다면 허공을 가르고 올라가 속력을 잃은 총알이 어떻게 빗각으로 떨어지나? 바람이 강하게 불었나. 바람에 날려서 휜 총알이 머리를 뚫고 가슴에까지 꽂혀 맹관총상을 입힐 수 있나. 이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 
 
가해자 총기도 칼빈총이었다. 당시 계엄군은 M16을 갖고 있었다. 칼빈은 폭도들이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기였다. 
  
전두환이 보낸 편의대가 쐈다고? 군중에 스며들기 위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잠입한 편의대가 구태여 건물 옥상에서 시민을 쏴 죽이는 순간에 군복으로 갈아입을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완전범죄를 획책하려는 이들이 굳이 금남로에 모인 시민을 향해 하향 사격을 하기 전에 “옷 좀 갈아입겠습니다. 군복으로요”라며 환복한 뒤 복장을 갖춰 총을 쏘겠나. 
 
그러니 이 무장 괴한들의 실체가 군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냐를 찾는 데 정부 예산을 쓰는 게 정상적이지 않을까? 군복을 입고 시민을 죽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군인이 죽였다고 분노하게 만든 이 괴한들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 
 
그런데도 무장괴한의 실체를 찾겠다는 전문가들은 정부 조사위에서 모두 방출되고, 결국 전남대 카르텔 인사들이 주축이 되니 40년째 전두환이 사격명령을 내렸다 안 내렸다 헛다리 짚는 것 아닐까. 40년 동안 증거가 안 나온다면 한 번쯤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수만 명의 시위대에게 포위된 계엄군이 실탄도 없는데 집단사격을 해 죽였다는 비과학적인 추론엔 문제가 있다고 누군가는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 1980년 5월21일 오전 8시10분 발생한 ‘군분교 20사단 지휘차량 피탈’ 사건은 군 전술에 능한 세력이 개입한 고도의 차단 작전이자 5·18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군사적 변곡점이었다. 계엄군의 이동 계획을 사전 입수해 도로를 절개하고 통나무와 폐타이어 등 고난도 장애물로 군분교 길목 3곳을 차단한 뒤 매복하고 있다가 정규군을 습격해 혼비백산케 하고 차량·무전기·총기·장교용 우의 등을 탈취한 데다 훔친 차들을 몰고 아세아자동차 공장으로 진입하는 등 정규군을 능가하는 월등한 군사력을 보였다. 이는 계엄군 사상자가 나온 20일 3공수여단 5개 대대를 광주 기차역에서 포위하고 차량 돌진 공격을 감행한 사건과 맞물려 20사단 병력 1만3000명의 광주 진입을 막기 위한 육로와 철로 봉쇄 전략으로 분석됐다. 일반 시민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군사작전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5·18을 헌법에 수록하겠다는 건, 마치 아직 연구논문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학술지 1면에 게재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연구 결과에 따라선 학술지에 수록되기는커녕 주임교수로부터 귀싸대기(?) 맞을지도 모를 일인데도 말이다. 
  
5·18 정신? 이걸 모든 국민이 납득하게 정의할 사람이 여태껏 있었나? 불의에 항거한 정신이라고? 그러나 생각해 보자. 만약 그 당시 정부가 불의가 아니었다면, 시위 학생을 과격하게 대해 물의를 빚은 잘못은 있을지언정 정부를 상대로 무기를 든 이들을 폭도로 간주했어야만 했다면, 그게 절대다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조치였다면, 신군부 시나리오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면, 전두환의  사격 명령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다면 과연 불의에 항거했다고 명료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누군들 광주시민의 죽음이 안타깝지 않겠나. 기자라고 그 슬픔에 가슴이 먹먹하지 않겠나. 기자는 이민 생활을 하는 동안 5·18 행사를 취재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직접 가서 묵념했고 추도했다. 누가 먼저 쐈든, 누가 싸움을 야기했든 간에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은 건 비극이고 위로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범인을 가리는 일이 지금처럼 편향되게 진행되는 데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제 피의자가 잡혀 재판은커녕 수사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저 자는 범인이 아니다”고 떠들어댄다면 공정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을까.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나. 정치인들의 5·18 헌법전문 수록 발언을 보고 드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공정한 조사도 없었거니와 공정성마저 해할 잇단 공개 발언으로 증거도 없이 ‘계엄군은 악마’라는 세인들의 인식이 고착화된 게 정확한 현실 아닐까. 
 
왜 섣부르게 헌법에 수록하려 할까. 그만큼 증거는 없고 선언적 구호만 있기 때문은 아닐까. 증거는 없는데 누군가는 원망을 해야 하기 때문 아닐까. 그 대상이 전두환이든, 계엄군이든 간에 말이다. 이참에 북한도 원망해 보는 건 크게 잘못된 것인가? 북한은 김신조 사건부터 연평도 포격까지 현대사에서 꾸준히 도발을 감행해 왔는데 유독 1980년 5월에는 안 했다고? 김일성의 교시가 있었는데도? 북한에선 관여하지 않은 순수 민주화운동이 맞다고? 꼭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고? 왜 그래야 하지? 
 
문재인정부가 진상을 밝히겠다며 만든 5·18 조사위원회조차 작년 말에 전두환 사격 명령’ 규명에 실패했다는 뉴스통신사 보도가 나왔다. 규명에 실패한 원인은 증거 부족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전두환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니 증거 부족이란 표현을 쓴 것 아니었을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범인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40년 넘게 증거가 없어도 마냥 전두환이 했다고, 전두환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북한이 범인일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들 세뇌된 머리와 분노한 가슴이 이걸 인정해 줄 수가 있겠나. 
 
그렇게 인생을 살고도 모르나. 입이 재갈 물린다고 다물어지던가. 어설프게 광주의 아픔을 묻고 가려다 대한민국 전체의 아픔이 된다. 환부는 도려내야 한다. ‘도려낸다’는 파낸다는 뜻이다. 밖으로 꺼내 드러내지 않고선 진상규명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정신 좀 차리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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