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02:44
뉴스 > 연재기획
[정창옥의 열사일침(烈士一鍼)] 응답하라 ‘바보 청년’ 장기표여!
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22 06:31:10
 
▲ 정창옥 길위의학교 긍정의힘 단장
2000년 전, 지혜와 번영의 상징이자 신의 대리인으로 모든 법률을 제정한 로마 원로원. 그러나 특권·특혜·신격화로 모든 권력이 집중되며 원로원은 부정부패로 얼룩진다. 그들 속에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평민을 사랑한 한 남자가 있었다. 모두를 포용하는 관대함, 세심함을 갖춘 치밀함, 냉철한 이성적 판단과 행동, 개인의 성공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 그의 철학에 민중은 권력을 떠맡긴다. 불과 39세에 신전의 폰티펙스 막스무스(제사장)가 된 그는 B.C.52년 갈리아전쟁 승리로 게르만족을 굴복시키고 브리타니아(영국)까지 세력을 확장한다.
 
하지만 그를 두려워한 부패한 원로원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 무장해제를 명령한다.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오라”는 원로원의 명령을 거부한 그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며 조국인 로마을 향해 칼을 겨누고 운명의 루비콘강을 건넌다.
 
로마제국 무관의 제왕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백성의 고통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그들의 삶을 챙겼던 민중의 수호자 카이사르.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전사의 칼을 휘두르면서도 관대함을 잃지 않았지만 로마제국의 심장 판테온에서 호의호식하는 원로원의 부정부패엔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러나 멈출 줄 아는 지혜와 자제력을 소유한 천재성으로 주어진 운명에 만족했으며 주어진 운명만큼 진군하며 드넓은 로마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식민 정책, 간척·항만·도로·구제사업 등 각종 사회 정책을 추진하며 부패한 특권을 타파하는 혁명을 수행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피복공장 미싱사로 노동자의 환경 개선을 촉구하며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焚身)한 걸로 알려진 22세 청년 전태일. 초등학교 중퇴자인 그의 소원은 대학생 친구를 두는 것이었다. 서울대 법대생 장기표는 그렇게 그에게 다가왔다.
 
분신하기 1년 전, 전태일은 그럴싸한 근로기준법은 있으나 열악한 노동환경·박봉·산업재해 불인정·부당 해고에도 찍소리 못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바보회’를 만든다. 그러나 한창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던 사회가 그를 빨갱이로 몰자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이후 청계피복노조가 결성되고 동일방직·반도상사·콘트롤데이타·원풍모방·YH무역 등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며 노동운동의 중심이 된다.
 
1980년 ‘전태일 평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일본에서 출판됐다. 저자는 ‘김영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본명이 아니다. 서울대 정치학과 김정남의 ‘김’, 조영래 변호사의 ‘영’, 장기표의 ‘기’를 합친 이름이다. ‘전태일 평전’은 김정남·조영래·장기표가 함께해 조영래 변호사가 쓴 책이었다.
 
광고
 
▲ 1988년 12월21일 장기표(가운데)가 공주교도소를 출소하면서 아내 조무하(왼쪽) 여사와 전태일 모친 이소선 여사와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민주화·노동운동으로 9년을 감옥에서 지냈고, 12년의 수배생활을 견뎠다.
 
장기표는 월남전 파병엔 반대했지만 일단 월남 파병이 박정희정부의 국가정책으로 결정되자 월남으로 향한다. 그리고 평생 고엽제후유증에 시달린다. 김영삼정부 시절 민주화운동 보상금 10억 원을 거부하며 장기표는 말한다. “민주화운동만이 국가발전에 기여한 게 아니지요. 전 분야에서 모든 국민이 함께한 것입니다. 민주화운동은 당시 청년 대학생들의 책무였습니다.”
 
패배한 정적들에 대한 관대함으로 인간정신의 승리를 보여 준 카이사르. 그는 한 번도 공직을 갖지 않은 개인 자격으로 자비를 들여 지중해역을 공포로 떨게한 해적들을 소탕했다. 강력한 나라는 많았지만 위대한 나라는 없었다. 로마가 위대한 것은 모든 백성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아니었지만 황제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카이사르, 개인의 이름이 한 국가의 별칭이 되고 죽어서도 그 이름 자체가 황제의 별칭이 된 카이사르. 세계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카이사르를 호명한다. “응답하라 카이사르여!”
 
54년 전, 만약 전태일에게 대학생 친구 장기표가 없었다면 노동자·도시빈민의 삶은 어찌 되었을까? 만약 삼일다방 한켠에서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 여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전태일의 죽음은 어찌 되었을까. 
 
바보 청년 장기표는 꿈을 꿨다. 탐욕과 이기심·부정부패로 악취가 진동하는 오물을 온몸에 적시면서도 합리적 자아실현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그 꿈을 향한 길은 지독한 절제와 통렬한 자아비판을 어깨에 지고 깨끗한 무소유란 옷을 입고 가야 하는 길이었다.
 
7월17일, 페이스북에 글 한 편이 올라왔다. 
 
“말기 담낭암 판정으로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죄송합니다. 나라 꼴을 보면 자괴감이 들고 무지의 광란이란 팬덤 정치가 횡행해 나라 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지만 물극즉반(物極則反)의 이치처럼 이를 극복할 대반전이 일어나길 기대할 뿐입니다”는 내용이었다. 불치병으로 시한부 생명이 사그라질 시간이 임박했다는 것을 직감한 통렬한 자기 절제이자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 없다는 당당한 고백이었다.
 
그러자 누군가의 댓글이 달렸다.
 
“안 됩니다. 아직 하실 일이 많은데 선생님이 가시면 누가 그 일을 한단 말입니까. 자아실현으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평생을 바쳤으니 국민의 행복한 미소는 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서슬 퍼런 민주화운동도 청년의 책무라며 보상금 10억 원도 던져 버린 시대의 양심이지 않습니까. 탐욕이 지배하는 타락한 세상을 깨끗이 정화시키려 독야청청하지 않았습니까.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가장 낮은 곳의 약자를 맨먼저 챙기지 않았습니까. 더러운 한국 정치를 올곧게 세우기 위해 행복정치론을 펼치며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고 가장 가난한 정치 혁명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까. 누가 감히 당신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안 됩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당신은 이 시대 가장 나이 많은 청년이기에 육체의 병은 얼마든 극복해 내실 겁니다. 보낼 수 없습니다. 청년 시절, 그 푸르고 푸르른 청년을 감옥으로 던져 버린 당신은 영원한 재야이지 않습니까. 바보 청년 장기표! 당신을 결코 보낼 수 없습니다.”
 
“응답하라 장기표여!”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24
좋아요
5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27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5,183 ▶
어제 140,566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