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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38] 크리스마스의 첫 몽정
보이지 않게 사랑할 거야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7 06:30:20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온종일 함박눈이 내렸다. 나는 교회 앞 공터를 서성거렸다. 아버지가 새로 아내를 맞은 뒤부터 나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내가 없는데도 교회 꼭대기 빨간 십자가와 문 앞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휘감은 작은 전구들은 잘도 반짝거렸다. 작고 허술한 건물 밖으로 아버지의 설교와 기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교인들이 찬송과 연극을 하는 동안 터지는 웃음소리도 크게 들렸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동갑내기 달봉이의 목소리도 우렁차게 들렸다. 밀물 같은 박수가 내가 있는 곳까지 쏟아져 나왔다.
 
뭐 하냐?”
 
노래만 부르고 뛰어나왔는지 내 앞에 선 달봉이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터에는 예배 시간 동안 내가 만들어 놓은 고만고만한 눈사람들이 보초병처럼 양쪽으로 줄 맞춰 서 있었다. 나는 빨갛게 언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소복이 쌓인 눈밭에 발자국만 찍었다.
 
사람들이 교회 밖으로 나왔다. 마리아가 보였다. 용기를 내어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그 아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마리아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마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리아는 병정 같은 눈사람들의 사열을 받으며 내게 달려왔다. 내가 등 뒤에 감추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작은 유리병 안에 넣어 둔 눈사람은 리본으로 만든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입술은 색종이를 붙여 아이의 혓바닥처럼 빨갰고 가슴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빨간 막대 사탕이 깃발처럼 꽂혀 있었다.
 
아아. 이쁘다!”
 
마리아가 활짝 웃었다.
 
나도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
 
아이는 어깨에 사선으로 메고 있던 작은 가방을 열었다.
 
부처님오신 날, 내가 만든 것 중에서 제일 예쁜 거야.”
 
아이가 건넨 건 종이컵에 색종이를 붙여 만든 작은 연꽃 등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달봉이가 마리아와 나의 머리 위에 꽃잎 같은 눈가루를 뿌려댔다. 뭐지? 하는 순간 독수리처럼 달려와 내 손에서 연등을 낚아챘다.
 
이리 내! 달란 말이야!”
 
하얀 눈밭에 쫓고 쫓기는 달봉과 나의 발자국이 수없이 찍혔다. 마리아가 깔깔대며 웃었다. 마리아의 엄마가 그만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아이는 팔랑팔랑 뛰어가서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내가 뚝, 멈춰 섰다. 달봉이도 우뚝 멈췄다. 한손에 눈사람이 든 유리병을 안고 마리아가 바이 바이, 손 인사를 했다. 내 옆에서 달봉이가 꽃등을 열심히 흔들었다.
 
마리아가 보이지 않자 달봉이가 꽃등을 내게 건넸다.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나는 연등을 받아 들고 화가 난 사람처럼 성큼성큼 걸었다. 달봉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조용한 밤거리에 당시 유행하던 가요 한 소절이 울려 퍼졌다.
 
보이지 않게 사랑할 거야, 너무 슬퍼 눈물 보이지만.”
 
얼마쯤 걷다 보니 혼자였다. 그날 밤 크리스마스 새벽 송을 다니느라 아버지도, 그분의 아내도 아침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달봉이도 그들을 따라 고요한 밤을 요란하게 깨우고 다녔을 것이다. 적막한 집으로 혼자 돌아온 나는 책상 위에 꽃등을 높이 걸었다. 그날 밤 꿈에서 아이를 만났다. 나의 첫 몽정이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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