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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불운아 루소를 품은 프랑스 샹베리
거리의 소년 루소가 달콤함 만끽한 작은 마을
루소의 자아 형성지이자 인생 2막이 열린 곳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19 06:31:00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프랑스 대혁명에 가장 큰 영감을 준 두 인물이 있다. 루소와 볼테르다. 이 두 저명한 철학자는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루소는 고문에 시달리며 방랑하는 철학자로, 스위스의 작은 집에 숨어 아르메니아산 긴 튜닉에 보닛을 쓰고 소박하게 살았다. 반면에 볼테르는 사교계의 명사로, 군주처럼 아름다운 푸른 새틴 이브닝드레스에 세 개의 꼬리가 달린 가발로 치장한 모습으로 유럽 사회에서 귀족 대접을 받았다.
 
루소는 1755인간 불평등 기원과 기초에 관한 담론에서 인간이 토지를 처음 소유한 날에 우리가 말뚝을 뽑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재산 소유권을 공격했다. 이에 볼테르는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강탈당하기를 바라는 거지의 철학”이라며 반박했다. 이처럼 양립 불가능한 사상을 지닌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증오하며 살았다.
 
하지만 운명의 아이러니인가. 볼테르가 죽고 2개월 후 열여덟 살이나 연하였던 루소도 황망히 그의 뒤를 따라 떠났다. 그토록 앙숙이던 이들은 이제 프랑스 위인들의 성전인 팡테옹 맨 앞자리에 서로 마주 보고 누워 있다. 화해를 한 것인가. 이들의 관계를 승자와 패자로 가릴 순 없지만 오늘날 루소는 볼테르보다 더 추앙받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 루소 거리가 볼테르 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살아생전 큰 영광을 보지 못했던 불운아 루소그는 제네바의 한 시계 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났다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세상을 떴다. 루소가 열 살 되던 해 아버지는 그를 삼촌에게 거의 내동댕이치다시피 맡겼다삼촌은 조카의 교육을 걱정해 조각가의 집으로 보냈다그러나 그 조각가는 거칠고 비타협적이었다고된 견습생 생활을 하던 루소는 결국 열여섯 살 되던 해 조각가의 집을 도망쳐 나와 길 위의 소년이 됐다.
 
▲ 루소와 바랭 부인의 첫 만남. 샤를 드 스퇴뱅의 그림.
  
뽕베르(Pontverre) 신부는 이 오갈 데 없는 소년을 데려다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 했다. 개신교도였던 루소는 멈칫했지만 결국 설득당했다. 이 신부는 17319, 19살이 된 루소를 프랑스 사부아의 샹베리(Chambéry)로 보내 다른 망명자인 바랭 부인(Madame de Warens)과 함께 살게 했다. 이 부인은 사부아로 이주한 스위스 칼뱅주의자들을 받아들여 신성 교회로 개종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임무는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의 비토리오-아메데오 2세 왕이 그녀에게 맡긴 것이었다.
 
루소는 수줍음이 많지만 생기 넘치는 눈빛과 유쾌한 표정을 지닌 명랑한 청년이었다. 바랭 부인은 이 청년에게 볼테르의 작품을 소개해 타고난 학습 취향을 자극했다. 이때부터 볼테르는 루소의 이상향이자 모델이 됐다.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했던 루소는 비서·가정교사·통역사·음악 선생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바랭 부인의 소개로 루소는 사르디니아 토지등록소에서 업무를 보게 됐다. 그러나 따분하기 그지없는 이 일을 천재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8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때를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스물 한 살, 마지못해 사무실에 갔을 뿐인데 불편함과 고된 업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었고 마침내 직장을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샹베리에는 주민이 1만 명 남짓 살고 있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상당히 건강하지 못했다. 바랭 부인은 생로랑 백작의 저택 한 칸을 빌려 살았다. 나는 이 아파트에서 그녀와 함께 살았다. 그녀의 집은 어둡고 슬펐는데 내 방은 집안에서 가장 어둡고 슬펐다.”
 
병으로 고통 받던 루소는 그가 마망(엄마)’이라고 부르던 바랭 부인에게 샹베리의 레 샤르메트(Les Charmettes)에 있는 시골집을 얻자고 졸랐다부인은 도시 교외에 있는 콩지에(Conzié) 후작의 작은 정원을 빌려 그곳에서 여름철을 보냈다그때 그녀는 젊은 시절의 위험으로부터’ 루소를 구하기 위해 그를 남자로 대했다루소는 처음으로 여자의 품에 안긴 나 자신을 보았고내가 숭배하는 여자를 보았다고 고백록에서 회상했다.
 
▲ 알프스의 설경이 일품인 샹베리 전경. 위키피디아
   
루소는 부유한 가정의 어린 소녀들에게 음악 이론과 노래를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 크루아도르(Croix d'Or) 거리에는 훌륭한 개인 저택들이 있었다. 루소는 샹베리 귀족의 어린 소녀들에게 음악 레슨을 하러 이 저택들을 드나들었다. “갑자기 나는 사교계’(beau monde)’에 던져졌다. 최고의 가정에서 찾고 인정받는 사람이 됐으며 어디를 가든 우아하고 애정 어린 환영과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친절하고 잘 차려입은 숙녀들이 나를 기다리다 열렬히 맞이했고, 장미와 오렌지 꽃향기 속에서 그들은 노래하고 웃고 즐거워했다.”
 
“이 세상에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삶의 달콤함을 만끽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샹베리다. 그곳에 모인 지방의 귀족들은 성공하기엔 충분치 않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다 가지고 있다.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향상시키고 심지어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 샹베리에서 매력적이지 않은 소녀를 단 한 명도 본 기억이 없다.
 
샹베리에서의 이 시기는 루소의 삶에서 매우 중요했다. 이 소중한 기간 동안 그의 혼란스럽고 일관성 없는 지식이 일관성을 가지게 됐고, 자신을 에워싼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아’가 형성되었다. 루소는 여기서 과학과 특히 음악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바랭 부인의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고, 상류 사회의 어린 소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그리고 자신에게 개인 도서관을 열어 준 콩지에 후작과 고프쿠르(Gauffecourt) 같은 든든한 친구를 사귀었다.  바야흐로 루소의 인생 2막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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