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의약품 관세? 속내는 글로벌 약가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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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보복 아닌 외국 약가체계 흔들기…시장지배력 강화 병행

주경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5-07 09:15:2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꺼내든 의약품 품목별 관세는 리쇼어링과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글로벌 약가 체계를 겨냥한 전략적 수단으로 보인다. 단순한 수입세금 부과에 그치지 않고 공공의료 시스템에 직접 개입하려는 미국식 외교의 출발점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필수 의약품의 국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의약품에 대한 2주내 품목관세 부과 계획의 발표도 예고했다. 업계는 미국 내 의약품 생산 확대를 위한 통상 카드로 해석하고 있지만 미국과 무역하는 국가의 약가 정책을 흔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 단초는 지난 3월 트럼프 진영의 싱크탱크인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연구소(AFPI)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AFPI는 ‘글로벌 무임승차 종식’을 명분으로 외국의 약가 억제정책을 문제 삼았고 무역법 301조상의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한 뒤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전 세계 의약품 매출의 67%를 차지하는 반면 유럽은 단 16%에 불과하고 유럽 약가는 미국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AFPI의 정책 구상은 명확하다. 미국 내 약가를 낮추는 것도 시도할 수 있는 전략이나 우선적으로 외국 약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글로벌 수익 균형을 재조정하겠다는 방향을 갖는다. 미국 제약사의 이익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R&D 재투자를 확대하고 더 많아진 신약으로 약가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다.

약가 억제정책으로 미국 제약사의 제품이 외국 시장에 저렴하게 공급될 경우 이를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반대로 높은 약가를 수용할 경우 관세 장벽을 낮추는 관세 협상 전략이 펼쳐질 공산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구상은 무역법 301조와 함께 무역확장법 232조와도 연결된다. 미국 상무부는 4월부터 의약품과 원료의약품(API)을 포함한 공급망에 대해 국가안보 차원의 조사를 개시했다. 이는 특정국가의 약가정책을 자국 의료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고율 관세나 수입 제한 조치를 검토하는 절차다.

표면상 법률 근거는 다르지만, 두 조치는 모두 외국의 약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동일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관세는 실제 부과 여부와 상관없이 압박 수단으로 작동하며, 외국 정부의 약가제도 자체에 구조적 개입을 가능하게 한다.

때마침 스위스와 프랑스에 본사를 둔 노바티스와 사노피의 최고경영자들은 지난 4월 23일 파이낸셜 타임즈에 공동기고를 통해, 유럽연합이 단일약가제도를 도입하고 미국 수준의 약가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기존 모델이 관세 리스크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이 기고문은 관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보다는 트럼프의 정책 기조에 동조하는 입장이 드러난다.

행간을 읽으면 유럽 역시 높은 약가를 유지해야 관세를 회피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제약업계와 트럼프 행정부는 함께 공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관세 정책에 대응하는 해법으로 약가 인상을 수용하라는 동일한 논리다.

결국 트럼프의 전략은 단순한 자국 생산 확대를 넘어서 외국 정부의 약가 결정 권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구조다. 제약산업의 글로벌 가격 기준을 미국이 재설정하고, 외국의 보건정책에 구조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접근이다.

한국은 이미 비슷한 갈등을 경험한 바 있다. 2007년 한미FTA 협상 당시 한국은 건강보험 시스템 내 약가 통제를 놓고 미국과 마찰을 빚었다. 당시에는 공공성 유지와 제약사 권리 보장 사이에서 절충적 타협에 도달했지만, 이번에는 관세라는 직접적 수단을 앞세워 자국 제약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약가제도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트럼프의 입이 아닌 제한적이나 문서화된 모든 자료는 의약품 관세는 단순한 수출입 문제를 넘어, 글로벌 약가 구조 자체를 겨냥한 지정학적 통상 전략의 핵심 도구라고 가르키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기술 패권이 핵심이라면 의약품은 각국의 약가통제, 급여제도에 대한 직간접적인 관여, 공급망 자립 등 복잡한 셈법이 숨어 있다.

주경준 기자 gjju@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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