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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한 이란의 이중적 반응이 주목된다. 이란 국영 매체에선 수상 소식을 전하며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으나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의 ‘정권에 대한 저항’이라는 논평엔 외부무가 발끈하며 공식 항의했다. 그러나 중대한 변화상이 감지된다.
24일 제78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파나히의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우연일 뿐’)가 최고 영예를 차지한 것에 바로 장관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란 정권의 억압에 맞선 파나히”의 수상으로 “전 세계 모든 자유의 투사들을 위한 희망은 다시 불붙었다”고 하자 이튿날 이란 외무부가 이란 주재 프랑스 대리대사를 초치했다. 바로 장관 발언이 “모욕적이며 무근거한 평가” “내정 간섭이자 무책임한 도발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란 외무부에선 또 “칸영화제를 이란 관련 정치적 의제를 띄우는 플랫폼으로 이용했다. 이스라엘 정권을 지지해 온 프랑스가 인권문제를 제기하거나 다른 나라를 비난할 도덕적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 높였다. 파나히는 일개 영화 예술인이 아니라 상징적 존재다. 해외 망명 대신 자국 내 활동을 택한 그는 반정부 시위 내지 반체제 선전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체포됐다. 2010년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금지 처분을 받았으나 몰래 영화를 만들어 해외 영화제에 출품해 왔다.
칸영화제 폐막 직후 ‘귀국이 두렵지 않느냐’는 AFP통신 질문에 파나히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내일 출발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나 개인을 위한 상이 아닌, 지금 당장 활동할 수 없는 모든 이란 영화인들을 위한 상이다. 그들이 활동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선 “수상하든 못하든 난 (이란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고국에서 작품활동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란 당국이 파나히의 활동을 완전히 막지 못한 것은 일단 ‘국제 사회의 눈’ 때문이다.
2022년 재수감된 그가 2023년 2월 단식투쟁 끝에 보석으로 풀려난 후 첫 작품이 이번 수상작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였다. 복수·용서·정의에 대한 통찰의 영화로 평가된 이 작품은 정치범이었던 한 남자가 수감 시절 자신을 고문한 경찰을 우연히 만나면서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파나히에 따르면 이 작품 역시 몰래 촬영됐으며 며칠 전 출연진·제작진이 이란 당국의 압박에 처해 있다. 여배우 하디스 파크바텐을 비롯해 여러 명이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한편 국영 IRNA통신이 파나히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반겼다. 아예 무시하거나 거센 비판을 쏟아내던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1997년 ‘체리향기’로 이란 최초 황금종려상에 빛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언급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제가 이란 영화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25일 이란 보수 매체 ‘타브낙’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줄리엣 비노슈(배우)가 “영화보다 영화감독의 세계에 더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것을 인용해 “파나히를 억압당한 예술가로 만들어 국제적 동정을 얻었다”며 폄하했으나, 국영 매체의 보도 양상엔 무시 못할 변화가 엿보인다.
파나히 공동감독작인 ‘닫혀진 커튼’이 2013년 베를린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을 때 이란 문화부에서 공식 항의하며 당시 이란 영화청장 자바드 샤마크다리가 “이런 영화 제작은 불법이다. 우리 이슬람공화국이 지금까지 이를 인내해 왔다”고 말했으며, ‘택시’로 2015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을 때도 축하와 비판이 섞인 성명을 냈던 것과 대비된다. 더 중요한 것은 현 상황이 이란 내부의 정치적 기류 변화나 모순의 틈새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간 이란에선 반정부 시위, 여성인권 문제, 청년층 저항 등이 계속된 가운데 일종의 국면 전환 신호일 수 있다.
특히 이란 당국이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고 위반시 강력 처벌하는 새 법률을 당분간 공포하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칸영화제 폐막 이튿날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마즐리스(의회) 의장을 통해 최고국가안보회의(SNSC)가 이른바 ‘히잡과 순결 법’을 공포하자는 의회의 요청에 대해 “당분간 이를 공포하지 말라”고 통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작년 12월 발효할 예정이던 이 법률의 시행을 SNSC에서 일시 보류 결정을 내린 상태였으나 더 멀어진 분위기다.
의회 강경파 주도로 2023년 8월 통과돼 작년 9월 헌법수호위원회가 승인한 이 법률의 정식 명칭은 ‘순결·히잡 문화 증진을 통한 가족지원법’이다. 이 법에 의거해 이슬람 복장 규정을 어긴 여성에게 10년 이하 징역형, 재범자 등에겐 15년 이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히잡 착용법 또한 머리카락과 목이 보이지 않도록 규정하는 등 더 엄격하다. 반복 위반 시엔 해외출국 금지, 기업에 대해서도 위반자 신고 의무가 부과돼 있다. 민심의 반발을 의식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법률 재고의 뜻을 드러냈을 뿐이었으나 파나히 수상 다음날 사실상 해당 법률의 ‘무기한 유보’가 발표된 셈이다.
이란에선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신정일치 체제가 되면서 초대 최고지도자(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지시로 여성의 히잡 착용이 법제화됐다. 2022년 9월 당시 22세였던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이는 등 복장 규정을 어겼다며 도덕경찰(가쉬테 에르셔드)에 끌려간 후 의문사한 일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번진 적이 있으며, 작년 11월엔 수도 테헤란의 이슬람아자드대 이과대학 캠퍼스 내에서 한 여학생이 히잡 단속에 항의하는 뜻으로 겉옷을 벗고 시위하다가 붙잡힌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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