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핵심축인 세운상가 일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종묘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수십 년간 정비가 지연돼 온 이 지역은, 주변의 을지로·청계천·광화문이 빠르게 현대화되는 동안 홀로 뒤처지며 도심 연결축을 끊는 ‘공백지대’로 남았다. 낮은 층수의 노후 상가, 철거 후 방치된 공터, 어두운 골목 등이 이어져, 보행·관광·상업 기능이 모두 해당 지점에서 급격히 약화되는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김윤재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인터뷰에서 “세운상가 일대는 단순히 낙후한 정도가 아니라 도심 기능을 끊는 결절부가 된 곳”이라며 “90%가 아니라 100% 정비가 필요한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스카이데일리는 김 교수와의 인터뷰를 정치적 공방은 배제하고, 도시계획과 경관·정비 논리를 중심으로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했다.
-세운상가 재건축 관련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운상가는 1970~80년대 전자·기계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산업 구조 변화와 상권 분산 이후 급속히 쇠퇴했다. 지금은 배선·배관이 노출된 노후 건물,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내부 구조, 폐점된 점포와 공터가 이어지는 등 도심에서 보기 드문 관리 공백이 넓게 드러난다.
반면 주변의 종로·을지로·청계천 일대는 중·고층 복합건물과 보행환경 개선으로 빠르게 현대화됐고, 그 대비가 뚜렷해지면서 세운상가 구간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남게 됐다.
이 구간에서 보행 폭이 좁아지고 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종묘에서 을지로와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끊긴다. 관광객도 이 지점에서 발길을 멈추기 쉽고, 도심 상권의 유입 효과가 크게 약화되는 것이다. 세운상가 정비가 단순한 재개발이 아니라 도심 중심축의 단절을 해소하는 작업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고도 조정은 개발이익 비용 현실화… 기존 스케일로는 사업 불가능”
-최근 고도(높이) 규제 완화가 쟁점이 되고 있다.
세운상가 일대는 20년 넘게 정비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실질적으로 추진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사업성 부족이었다. 공사비와 인건비, 자재비가 꾸준히 상승한 데다 안전·환경 기준도 강화되면서 기존 고도 제한 아래 확보 가능한 연면적으로는 조합 분담금이 급격히 증가해 사업이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서울시가 높이 조정을 검토한 것은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재정비가 구조적으로 가능하려면 필요한 최소한의 규모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많다. 주변 지역은 이미 20층 안팎의 중·고층 스카이라인이 형성돼 있어 세운상가만 저층으로 남아 있을 경우 경관 단절도 갈수록 심해진다. 결국 고도 조정은 도심 경관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현실적인 비용 구조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시계획상의 조정으로 볼 수 있다.
“종묘와 현대 도시구조는 공존 가능… 문제 ‘높이’가 아니라 ‘방치’”
-종묘와의 간섭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종묘의 가치 핵심은 건물의 크기나 형태보다 제례 의식, 공간 배치 원리, 악가무 등 무형문화 요소에 있다. 실제 유네스코도 종묘를 ‘의례와 전통’ 중심으로 평가했다. 창경궁·창덕궁 일대처럼 주변에 10층 이상 건물이 있어도, 조망축·거리·배치를 조정하면 보존가치를 해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
정작 문제는 높이가 아니라 장기간 방치로 인해 종묘 관람과 도심 방문의 연결 경험이 끊겼다는 점이다. 관광객은 종묘만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시장·골목·도심 문화까지 연속적으로 경험하길 기대한다. 그러나 세운상가 구간의 불안정한 보행 환경이 이 흐름을 막고 있어, 정비는 종묘의 문화적 활용도를 높이고 주변 역사·관광권을 하나로 묶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녹지·보행축 복원은 도심 회복의 핵심… 기능이 살아나는 구조”
-서울시가 제시한 ‘보행축·녹지축 회복’은 어떤 의미인가.
도심은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보행·녹지·교통·생활·관광이 연결되어 하나의 체험을 만드는 구조다. 현재 세운상가 일대는 이 연결축이 가장 취약한 구간이다. 정비를 통해 종묘→세운→을지로→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보행 네트워크가 복원되면 열섬 완화, 야간 안전성 향상, 관광 동선 강화, 상권 회복 등 복합 효과가 동시에 나타난다.
특히 보행로가 정비되면 도심 방문자의 이동 경로가 자연스럽게 확장돼 지역 전체의 체류 시간이 늘고, 이는 상업·문화·관광 기능을 동시에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세운상가 정비는 강북 회복의 핵심 축… 서울 경쟁력의 문제”
-도심 정비가 강북·강남 균형과도 연결되나.
1990년대 이후 강남이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성장하는 동안, 강북은 노후화와 기능 분산으로 중심 축이 약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임대료 안정성, 전통·문화 자원, 창작 산업 기반 등을 이유로 글로벌 기업과 IT·콘텐츠 기업이 다시 강북으로 입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역시 전통과 근대 산업, 도시문화가 중첩된 강북을 선호한다.
문제는 이 강북의 주요 동선이 세운상가 구간에서 끊긴다는 점이다. 이 단절을 해소하면 종묘→청계천→을지로→광화문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강북은 업무·관광·문화·창작 산업이 결합된 복합 중심지로 재도약할 수 있다.
세운상가 정비는 강북의 회복뿐 아니라 서울 전체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문제다. 도시의 매력은 특정 권역이 아니라 전체의 연속성과 다양성에서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세운상가 일대는 서울 도심 구조를 다시 연결하는 핵심 지점이자, 미래 도시 경쟁력의 관문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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