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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화가 림학은 중국 길림성 연변 출신이다. 그는 동서양의 기법을 융합한 그림과 북한·한국·중국의 서체를 융합한 서체를 구사하는 예술가다. 그는 지난 2005년까지 연길시의 한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으나 그림 공부를 위해 그는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저는 예술과 민족에 대한 열정으로 어둠에서 벗어났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예술가가 마음 놓고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제 자신 역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지난 23일 구로도서관 1층 로비에는 ‘아리랑 스토리,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전시회가 있었다. 재중동포 서화가 림학(37)은 윤동주 시인의 시를 쓴 자신의 서예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했다.
글씨를 다루는 예술가는 서예가, 그림을 다루는 예술가는 화가라고 한다. 그리고 그림과 글씨 둘다를 잘하는 예술가를 서화가라 부른다. 그는 동서양의 기법을 융합한 그림을 그리고 북한·한국·중국의 서체를 융합한 본인만의 서체를 구사하는 예술가다.
“저는 중국 길림성 연변 출신입니다. 어릴 적부터 서예가 취미였어요. 집에 서예 선생님을 모셔와 제대로 배웠죠. 서예 선생님께서 서양화도 함께 배워서 그림과 관련된 대학에 진학할 것을 권했어요. 당시 연변에는 서예학과가 있는 대학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는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연변대학에서 미술계 미술교육전공을 했다. 성인이 되고나서도 독학으로 서예를 꾸준히 공부했다. 그리고 지난 2005년까지 연길시의 한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미술공부를 더 하고싶어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고향이 전라도인 할머니의 평생 소원은 고향 방문이었죠. 할머니는 결국 고향방문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대신 제가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할머니의 꿈을 대신 이뤘죠”
▲ 림학은 어린 시절 서예 전문 선생님으로부터 과외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서예 작업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서예와 함께 그림을 병행하고 있다. 사진은 전시회에 출품한 그의 서예 작품 ⓒ스카이데일리
부친 임종 후 우울증 3년 겪어…“죽고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죠”
그는 지난 2005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 학기 정도 다니며 우리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익혔다. 같은 해 그는 제주대학교에 편입해 서양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저는 원래 미술을 배우기 위해서 왔어요. 그림을 공부할 학교를 제주대학교로 정한 이유는 다름 다닌 풍경때문이었습니다. 한 학기동안 우리말을 배우면서 한국에서 풍경이 가장 좋은 곳을 탐문했는데 그곳이 바로 제주도였어요”
림학은 풍경화를 주로 그리기 때문에 그림의 소재가 될 만한 좋은 풍경이 있는 곳에서 그림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학사 편입한 제주대학교에서 2년간 공부한 뒤 2007년 졸업을 했다. 이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에 석사로 입학했다.
“석사 졸업 후 2010년 중앙대학교에 박사과정을 등록했습니다. 2010년에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습니다. 그 외 여려가지 나쁜 일들이 연달아 찾아왔어요. 결국 박사 과정을 포기하게 됐죠”
림학은 자신의 꿈을 위한 한국에 온 뒤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이후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2013년까지 3년간 아무것도 안하고 폐인처럼 살았다. 죽고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우울증 증세가 심각했던 마지막 6개월 동안에는 아무 것도 안 먹고 물만 마시며 침대에 가만히 누워지내기를 반복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는 제 삶에 대한 질문을 참 많이 했어요.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서 너무 공허했죠. 특히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에 대해 ‘대체 왜 그려야하는지’ 도저히 이유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폐인으로 살던 그를 구원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림이었다. 어느날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그림만 그려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그림만 그리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서양화부터 다시 그리기 시작했어요”
3년간 아무런 경제 활동을 하지 않다보니 그의 통장 잔고는 위태로워졌다. 정신을 차린 2014년부터 작년까지 2년간 그는 한국미술정보센터에서 아카이브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 물론 그림은 계속 그렸다.
“제가 예술가라 그런지 어딘가에 오랫동안 얽매이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결국 작년 6월경 센터를 그만뒀습니다”
▲ 구로도서관에서는 지난 23일까지 윤동주 시인을 주제로 ‘아리랑 스토리,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는 림학이 회장으로 있는 ‘한민족문화예술인협회’와 구로도서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다. [사진=림학]
재중동포 싱크탱크 단장 역임, “한중 예술가 활동 지원 하고파”
센터를 그만 둔 그는 KC동반성장기획단에서 활동하게 된다. KC는 Korean-Chinese(조선족)과 Korea&China(한국과 중국)를 의미한다. KC동반성장기획단은 한국 거주 중국 동포 중에서 각 분야 엘리트가 중심이 된 싱크탱크 모임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 내 재중동포 사회에서 싱크탱크 모임은 드물었습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일 기회는 부족했지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봉사정신을 가진 재중동포 전문가가 한 단체로 모이게 된 것입니다”
KC동반성장기획단의 전신은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재한중국동포 역사문화탐방’이다. 매년 40명씩 모집한 이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끼리 연락을 하면서 KC동반성장기획단에 대한 구상이 시작됐다.
“저는 처음에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인사를 대표해서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작년 6월 처음 KC동반성장기획단이 설립됐을 때는 부단장으로 선출됐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초 원래 단장이 개인 사정으로 중국에 정착하면서 제가 임기 1년의 단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올 한해 KC동반성장기획단에서 진행한 사업들 중 대표적인 것은 재중동포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한 경제아카데미와 코리안 디아스포라 관련 사진전 개최다. KC동반성장기획단은 대림동 맛집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대림동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조선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대규모로 해외로 이주한 ‘재외한인’을 말합니다. 재중동포로 치면 이민 1세대를 뜻하지요. 이들의 삶을 많은 분들께 알려드리기 위해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그의 KC동반성장기획단장 임기는 올해 말로 끝난다. 그러나 그는 다른 단체를 통해 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 직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그는 올해 ‘한민족문화예술인협회’를 창립해 회장을 맡았다. 이 단체는 국내 재중동포 예술인들의 창작지원, 전시지원, 공연지원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재중동포 예술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예술인들도 돕고 싶습니다. 제가 예술인으로 활동하다보니 예술가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지요. 한국과 재중동포 예술가들이 보다 덜 힘든 환경에서 예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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