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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의 문학푸드

10년 만에 처음 산책을 나온 개

동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사랑하고 느낀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1-05 16:52:59

 
▲ 이정일 인문학 칼럼니스트
 처음 느끼는 세상의 환희
 
손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있다. 촉각을 느끼는 데 2년이 걸렸다. 처음으로 컵을 잡는 감촉을 느꼈을 때 그녀는 환희에 휩싸였다. 아픔과 뜨거움도 그녀에겐 기쁨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느끼는 그런 기쁨을 잘 모른다. 사실 세상에서 정말 소중하고 값진 것은 촉각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혼자 힘으로 걷고 밥을 먹고 화장실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서울 용산구 문배동에 작은 공장이 있다. 공장 뒤쪽 마당엔 1미터 짧은 줄에 묶여 지내는 개가 있었다. 직원들은 세 끼 사료를 챙겨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무심하게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시끄러운 콤프레셔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개는 털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나마도 다 빠졌다. 하지만 그것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작년 11월 반려견과 산책하던 한 여성이 이 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돌봐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온종일 묶여 지내는 개를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 딱하긴 하지만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짬을 내어 다시 회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 개의 이름이 진숙인 것도 알게 되었고 그 개를 산책 시켜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다. 진숙이는 그렇게 10년 만에 처음 산책을 나왔다. 그 산책의 기쁨은 두 손을 잃은 뒤 다시 촉각을 회복한 환자의 기쁨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시대가 바뀌는 징후들
 
얼마 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과 바둑판 앞에서 격돌을 벌였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우리가 사는 사회를 엄청나게 바꿀 것은 분명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면 미래 사회의 모습이 나온다.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인간화된 로봇이 발달하여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을 인간 대신에 수행한다. 이들은 복제인간이다. 이들은 감정도 있고 사랑도 하고 생각도 하지만 수명은 4년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시대에도 반려동물을 키우지만 속은 다 로봇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 사회에서 인간은 반려동물을 키운다. 아주 부자만이 로봇 펫이 아닌 진짜 생명을 가진 반려동물을 키운다. 이들이 반려동물에 애정을 쏟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외롭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쏟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봇 펫도 눈치가 빨라서 주인의 기분을 쉽게 파악한다. 인간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반려동물의 눈으로 본 인간의 모습은 어떨까 싶다.
 
한국사회가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낀다. 반려동물을 보호하는 법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1인 가구와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가족 간의 유대감이 예전보단 느슨하다. 그 느슨함을 반려견, 반려묘가 채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개나 고양이는 주인의 눈빛만 보고도 주인의 감정을 읽어낸다. 입양을 해 본 사람은 처음 눈을 마주친 순간 빠져든 경험을 이야기한다. 0.2초의 짧은 순간에 시선과 표정만으로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공감과 동정
 
지난 연말 시작된 양준일 신드롬이 뜨겁다. 그의 노래를 잘 모르던 시민들마저 그를 좋아한다. 그가 잃어버린 30년이란 세월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런 마음을 우리는 공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싶어 한다. 이것은 불쌍히 여기는 동정과는 다른 감정이다.
 
인간의 시선에는 독특한 힘이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찾아내지 못하는 뭔가를 읽는 힘이 인간의 시선에는 있다. 지금도 동물유기나 학대가 여전하지만 다른 곳에는 곤경에 처한 동물을 찾아내어 돕는 선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이 만큼이나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덕분에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TV에서 소식이 끊긴 친구나 지인들을 찾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전에도 있었는데 요즘 다시 편성된 듯하다. 사연을 들어 보면 대개는 배고프고 어려운 시절 이야기다. 누구나 힘든 시절이 있다. 모두가 외면하던 때 자신을 챙겨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배고픈 시절 따뜻한 밥 한 그릇 사주며 격려해준 친구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가끔 동물에게도 이런 친구가 생기기도 한다. 10년 동안 쇠사슬에 매어 한 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던 개에게 10년 만에 난생 처음 산책에 나서도록 도와주는 사람 친구가 생기듯이. 이럴 때 인간과 동물 간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친구의 영역은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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