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8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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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식도 없는 기자에게 어느 암 환자 가족분이 이메일을 주셨다. 치료를 받으러 상경해야 하는데 임시로 거주할 만한 시설을 찾기 어렵다며 정보 좀 제공해 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매번 친인척이나 지인에게 신세를 지다가 미안한 마음에 직접 지낼 만한 곳을 찾아 보려 연락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치료 일정에 맞는 마땅한 숙박시설을 찾기 어려워 도움을 청하셨으나 기자 역시 찾아봤지만 도보 거리의 숙소는 모두 만실이었다.
최근 비수도권 환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환자방’이라는 숙소가 있다. 이들 숙소 대부분은 오피스텔, 고시텔, 다세대주택 등을 임시로 활용해 투숙객을 받는다.
특히 암이나 희귀질환의 경우 일정한 주기로 치료가 필요해 반복적인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항암화학요법이나 면역요법은 한 주기가 끝날 때까지 2주~4주 간격으로 반복 투여하며, 치료 후 환자의 신체적 회복 기간을 고려하면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게 쉽지 않아 일정 기간 서울에 머무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지방 환자들은 지인들의 도움을 받거나 대형병원 인근에 있는 비공식 숙소인 이른바 ‘환자방’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생업을 멈춘 상태에서 치료비에 더해 체류 비용까지 비용적인 부담이 크다 보니 병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저렴한 숙소에 대한 수요는 높고 공급은 제한적이다.
이 같은 비용의 부담은 다시 시설의 위생과 안전 등의 문제로 이어지고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 큰 위협으로 돌아온다.
병원 등에서 제공하는 숙박업소 자료는 치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와 환자 가족에겐 사치스러운 옵션일 뿐 선택지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공의 파업 사태가 장기화되고 진료 일정이 변경되면서 구해 놓은 숙박시설 예약을 취소하고 새로운 체류 일정을 잡느라 혼란이 거듭됐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 역시 모두 환자와 그 가족의 몫이 됐다.
암 환자의 상당수는 고령층이다. 또한 사망 원인의 1위는 암이다.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보면 65세 이상 인구의 55% 이상은 수도권 이외 지역에 거주한다.
즉, 암 환자의 발생률은 노인 인구가 집중된 지방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이들이 치료를 위해 수도권을 찾는 게 현실이다. 구체적인 통계나 연구가 없는 가운데 일명 빅5 병원의 암 환자 중 40% 정도가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비수도권 환자 중 통원과 서울 지역 내 임시 거주 비율 등 실태 파악도 전혀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환자방’은 회색 지대에 존재한다. 이는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숙박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의료 인프라의 부재와 수도권 집중의 의료전달체계가 만들어 낸 구조적 문제다.
지역거점 공공병원 활성화 등 지역 의료기관의 기능 강화 등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방 환자들이 불편함과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 수도권 병원을 선택하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다.
이 상황에서 양질의 환자방 공급 등은 과도기적인 상황에 대한 대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방의료 활성화 이외에 다른 묘안은 없어 보인다.
지역 거점병원과 암센터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장비 확충과 인력 보강이 필수적이다. 특히 지역의료 기관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이 서울 집중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울러 현재 존재하는 환자방에 대해서도 법적 기준과 관리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소방 및 공중위생법상의 기준을 마련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시설만 등록·운영될 수 있게 하는 등의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공공기관과 병원이 협력해 공공 의료숙소나 체류형 쉼터 등 새로운 유형의 의료숙박 모델의 개발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5월에 개소한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 쉼터’ 등 공공시설이 들어서고 있으나 성인 환자를 위한 공간은 사실상 전무하다.
지방 환자들에게 서울 원정 치료는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거주지 밖에서 겪는 복합적인 경제적·신체적 부담을 의미한다. 환자방 문제는 바로 이 구조적 의료 불평등의 단면이다. 따라서 이것은 병원 바깥의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의료전달체계와 지역 의료 자원의 배분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환자가 어디에 거주하든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치료를 받으면서 겪는 불필요한 비용 부담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모두의 책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 밖 환자방에서 고단한 싸움을 이어 가는 환자들의 현실을 제도와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료 선진화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정부와 의료기관은 환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 의료체계 개선은 단지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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