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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임현범 차장, 김민아·남승진 기자] 아이를 낳고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부모의 눈에 자식은 돌봐줘야 할 어린 아이다. 특히 몸이 불편한 자식이라면 더욱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보살핌을 넘어 당당히 성공의 열매를 맛보게 만들어 주변에 귀감이 되는 사례들이 여럿 존재한다.
“자녀에게 가장 행복한 길을 찾아 주는 것 중요…장애인이라 더 특별해요”
첼리스트 김어령(남·35) 씨는 지적장애 2급 장애인이다. 2살 때 뇌수종을 앓아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 때 손가락·얼굴 등을 움직일 때 사용하는 소근육도 다쳐 신체 오른쪽을 온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비록 장애인 신분이지만 그는 남부럽지 않은 실력으로 당당히 전문 연주가의 자리까지 올랐다.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하고 바리톤 김동규 등 유명 음악인들과 협연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장본인은 어머니인 송명애(여·58) 씨다. 송 씨는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지고지순한 헌신과 희생으로 지금의 김 씨를 만들었다.
“어령이가 두 돌 지날 때 쯤 또래에 비해 발달이 느리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병원을 찾아다닌 끝에 뇌수종을 앓고 있는 것을 알았죠. 수술을 했지만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어요. 이 때 소근육이 손상돼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죠”
송 씨는 어린 김 씨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불편한 몸을 움직여 리듬을 타는 것을 보고 아이가 유독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악기를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이후 여러가지 악기를 접하게 했는데 김 씨는 현악기, 그 중에서도 특히 첼로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4살 때 택시를 탔는데 가수 혜은이 씨가 부르는 ‘제3한강교’라는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어령이가 노래를 끝까지 듣겠다며 내리기를 거부했어요. 그 때 많은 음악을 들려주고 악기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죠. 덕분에 초등학교 1학년 때 베토벤을 섭렵했죠”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 잘 몰랐지만 아들의 음악을 돕다보니 저도 귀가 조금은 열린 것 같아요. 형편이 넉넉지 못한 탓에 남편 퇴직금으로 어렵사리 첼로를 장만했죠. 첼로는 자체로도 비쌀뿐더러 첼로 활의 활 털과 첼로 줄도 정기적으로 교체해 주어야 하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요. 첼로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죠”
송 씨는 특히 김 씨의 행복을 위해 불가능도 무릅썼다. 일례로 헐리우드 영화 ‘나홀로 집에’의 팬인 김 씨는 영화의 배경인 미국 뉴욕에 위치한 플라자호텔에 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김 씨 가족은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미국으로 떠났다.
“짧은 영어로 호텔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어요. 어령이가 영화 ‘나홀로집에’를 워낙 좋아하는데 스위트룸을 구경시켜 달라고 말했죠. UN총회 등이 열려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는 호텔인데 여러 번의 부탁 끝에 결국 스위트룸에 들여보내줬어요. 침대 위에서 즐겁게 뛰어놀던 어령이의 모습을 보며 저도 행복했죠”
송 씨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격려와 자존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송 씨 역시 김 씨를 두고 장애인이라 음악을 하기 무리가 있다고 말한 사람들에게 일부러 김 씨가 듣도록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칭찬으로 맞받아치곤 했다.
“부모의 자존감이 곧 아이의 자존감이에요. 칭찬도 중요해요. 옛날부터 저는 어령이의 음악적 재능을 칭찬했죠. 장애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장애인이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아이라고 말했어요”
지적장애 2급 판정 후 시작한 기타…어머니의 눈물과 땀의 결실은 ‘딸의 행복’
김지희(25·여) 씨는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다. ‘핑거스타일’은 손가락을 사용해 음악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 멜로디·리듬·화음을 한 대의 기타로 표현하는 주법을 일컫는다. 연주자는 이 주법을 이용해 팝·재즈·클래식·뉴에이지·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
김 씨는 13살에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아 학교 수업은 전혀 따라가지 못했지만 타브 악보 보는 능력이 뛰어나 2013년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폐막식, 미국 혈액암 환자돕기 기적콘서트, 유럽 3개국 순회공연 등 세계적인 무대에 서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평창 문화 패럴림픽 개막 축제에 참여해 멋진 연주를 선보였다.
김 씨가 당당히 장애인 아티스로 자리매김 하는 데는 그의 어머니인 이순도(63·여) 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장애 판정을 받은 이후도 그렇지만 이 씨의 모성애는 사실 김 씨를 임신했을 때부터 남달랐다. 이 씨는 처음 김 씨를 가졌을 때 전치태반 임신 판정을 받았다. ‘전치태반’이란 태반이 자궁 출구에 매우 근접해 있거나 출구를 덮고 있을 때를 말한다. 이럴 경우 임산부는 통증 없는 출혈을 겪는다. 조산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결국 이 씨는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매일 누워서 생활해야 했다. 그러던 중 임신 7개월쯤에 양수가 터져 산모와 아이 모두 위급한 상황에 처했고 다행히 응급수술에 성공하면서 김 씨를 낳게 됐다. 미숙아로 태어난 김 씨는 태어난 직후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만 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22일을 지내며 힘겨운 하루를 버티는 아이를 보며 하늘이 원망스럽고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슬프다고 아프다고도 표현 한 번 못하며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죠. 6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이 씨는 김 씨가 말을 시작한 이후 언어장애연구소 등에 보내고 일반 학교로 진학시켰다.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 김 씨의 부족한 사회성이 길러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그림만 그릴 뿐이었고 비장애인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자라는 과정에서 대소변 가림이나 걷는 것조차 또래 아이들보다 2~3년 뒤졌어요. 말을 가르치려 하면 눈을 마주치지 않아 어려웠고 유치원에 가서도 아이들과 소통을 하지 못해 졸업하는 날까지 울면서 하원하는 날이 태반이었죠”
이 씨는 집에서 200m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김 씨가 걱정돼 집 앞에 초·중등학교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집 앞에 있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병원에서 장애등급 심사를 받았는데 정신지체 2급을 판정받았다.
“장애 판정을 받고난 후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이를 모른 채 억지로 공부를 가르치려 했던 전 오래동안 아이가 받은 스트레스가 떠올라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장애 아이를 둔 엄마로서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마음을 추스렸죠”
김 씨가 처음 기타를 접한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다. 젊은 시절 포크송을 좋아했던 아버지이자 이 씨의 남편은 또래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던 김 씨에게 기타를 권유했다. 이를 계기로 김 씨는 기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기타에 흥미를 보였다. 2012년에는 전국장애학생음악콩쿨에 도전해 고등부 관현악 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입상자들이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갈라콘서트행 티켓을 얻었다.
콩쿨 접수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해당 대회에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중 기타는 제외돼 있었다. 이 씨는 대회 주최측인 방송국에 기타 연주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김 씨의 이야기는 방송국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콩쿨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갈라콘서트라는 큰 무대는 장애인 김 씨에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지희가 무대에서 연주한다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아니었어요. 엄마의 욕심이었던 거죠. 떨리는 손, 불안한 시선, 끊기는 연주 등을 보며 사회성을 먼저 길러야겠다고 다짐했죠”
이 후로 이 씨는 딸과 기타를 들고 지하철역·카페·공원 등 무대가 있든 없든 전국을 찾아다녔다. 장애를 극복하고 대중 앞에서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다. 김 씨의 홍보를 위해서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명함을 주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유튜브·SNS 등을 하면서 손가락에 무리가 와 밤에 잠도 못잘 정도로 아팠지만 열심히 지희를 홍보헀어요. 서대전네거리역 역장님에게 무작정 찾아가 지희 프로필과 사정을 설명하고 콘서트를 제안해 결국 한 달에 두 번 앰프 등 장비를 지원받아 무대에 서는 성과를 내기도 했죠”
어머니인 이 씨의 노력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2014년 ‘음악의 힘으로 장애를 극복한 기타리스트’로 ‘도전한국인’ 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최단기간, 최다공연으로 또 한 번의 ‘도전한국인상’을 수상했다. 2015년 4월부터 한국장애인문화협회중앙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매 공연마다 어머니인 이 씨는 직접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어머니인 이 씨의 노력 덕분에 김 씨는 무대에서 연주하고 청중을 만나 박수를 얻으며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나름의 꿈도 키워나가고 있다. 모진 역경을 극복한 모녀는 현재 누구보다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자부한다.
“지희는 엄마의 그늘과 창을 통해 많은 성장을 했고 예술인으로서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됐어요. 지희의 성장이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연주를 잘하는 기타리스트에 그치지 않고 따뜻한 감성과 소리로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기타리스트가 되게끔 노력할거에요”
[남승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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