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는 저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시켜 주고 자신감을 주는 운동이죠. 사람들이 ‘귀가 안 들려도 당구를 잘 치네’라고 생각하니까요.”
양혜현(23·여) 선수는 충남연맹 소속인 포켓볼 선수다. 그는 양 쪽 귀가 온전히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 2급이다. 양 선수는 2016년 충남연맹에 입단했다. 지난해 5월 ‘풀투어 1차’에 3위로 전국대회 첫 입상에 성공했고 10월 ‘구리세계포켓9볼챔피언십’에서 세계대회 32강 진출에 성공하는 등 유망주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청각장애 화가 지망생에서 중 2때 당구 입문
양 선수는 선천적으로 청력이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3살 때 만성중이염을 앓은 후 청력이 약해져 청각장애 2급을 얻게 됐다.
“학창시절에는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 적도 있었어요. 제가 잘 못 들으니까 만만하게 보고 이용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었죠. 물론 속상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얻은 것이니 제가 감당해야 했던 일이라 생각해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진 양 선수는 화가를 꿈꾸며 미술 공부에 전념하는 등 운동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보청기를 항상 끼고 있어 땀이나 물이 묻으면 고장 날 확률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 준비를 하던 중 양 선수는 미술 공부를 중단했다. 12시간 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체력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양 선수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당구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당구를 시작하게 됐죠. 땀이 나면 안 돼서 운동을 전혀 하지도 않았고 흥미도 없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고 땀도 별로 안 나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면서 권하셨어요.”
양 선수는 당구를 치자마자 당구의 매력에 빠졌다. 처음 당구를 배울 때 설명이 필요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히는 등 좋지 않은 청력으로도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오히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집중력이 높아지는 장점도 있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당구인데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하지만 재밌기도 했어요. 당구는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던 중 일산에 가서 차유람 선수의 감독인 이장수 감독님을 만나게 됐죠. 감독님께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흥미가 생겨 당구선수라는 꿈을 갖게 됐죠.”
당구를 치는 것이 즐거워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청각장애는 번번이 걸림돌이 됐다. 당구를 배울 때 코치가 말로 설명을 하면 양 선수가 다른 말로 알아듣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해외 시합을 자주 나가는 것도 어려워요. 당연히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데 장거리를 가면 기압 때문에 귀가 멍해지죠. 그럼 보청기가 고장 나는 것이 아니라 청력이 낮아져요. 훈련을 무리해서 하거나 스트레스도 문제가 되죠.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면 청력이 떨어지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신경이 쓰이죠.”
국·내외 대회서 돌풍 일으키며 ‘유망주’ 부상
현재 양 선수는 충남연맹 소속으로 본가를 떠나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충남도청 당구실업팀인 충남연맹 소속 선수 중 유일한 여자 선수지만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외롭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배우는 것도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양 선수는 동료이자 선배인 황용 선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황 선수와 함께 남·녀 복식팀을 이루면서 많이 혼이 났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평소에는 감독님이 가르쳐 주시지만 저만 전담으로 지도해 주고 조언해 주는 선생님이 없었는데 황용 선수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줬죠. 한 번은 ‘너는 네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너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다. 너는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볼 땐 열심히 안 하는 것 같다. 다 네가 강해지라고 하는 소리다’고 충고해 줬어요.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감동받았고 많이 배웠어요.”
양 선수는 지난해 전국대회 첫 입상과 생애 최초 세계대회 32강 진출에 성공하는 등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이 성적에 만족하지 않았다.
“제가 잘 치면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입상한 것은 물론 기쁜 일이지만 긴장감을 이겨내고 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성적보다는 대회를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에 양 선수는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올해 4월 선수로서 혼자 대만에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다시 떠난 것이다. 장애가 있어 걱정하는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했다. 실력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
그는 미국의 당구 선수인 쉐인 반 보닝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당구를 너무 잘 쳐서 좋아 했는데 알고 보니까 저처럼 귀가 안 들리는 선수였죠. 저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당구 선수로서 시원한 플레이를 펼치는 '한국의 쉐인 반 보닝'이 되고 싶어요.”
그는 "그러려면 실력을 더 키워야 해요. 우선 오는 10월에 있을 전국체전에서 입상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할 예정”이라며 말을 맺었다.
[김민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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