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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팝페라 가수 문지훈

“장애편견 딛고 성악大家 향해 세상에 나섰죠”

20살때 원추각막 증상으로 한쪽 시력잃어…올해 미·유럽 공연계획

김민아기자(jkimmina@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6-12 0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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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훈 씨는 여성의 음역대를 노래하는 카운터테너다. 그는 20살 때 원추각막 진단을 받고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음악은 언어가 아니에요.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는 나라와 인종을 초월해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죠. 때문에 음악은 제게 희망이자 마음의 눈과 같아요. 음악으로 세상과 대화를 나누죠.”
 
문지훈(29·남) 씨는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는 팝페라 가수이자 성악가다. 크로스오버 음악은 어떤 장르에 이질적인 다른 장르의 요소를 합쳐 만든 음악을 말한다. 문지훈 씨는 가성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남성인 ‘카운터테너’다.
 
문지훈 씨는 ‘2015 대한민국의 힘 희망을 주는 인물’, ‘2016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0대 청년(The Next Korea Generation Y)’ 등으로 선정된 바 있다. 또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 KBS ‘나는 대한민국 연아 합창단’ 단원으로 김연아 선수와 함께한 카운터테너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 리셉션’ 축하 무대에 서기도 했다.
 
축구선수 꿈 좌절, 음악으로 새 도전…시각장애 판정 “세상이 날 버린 느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하진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축구선수를 꿈꾸며 운동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스카우트 제의가 올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프로팀에 입단하면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걱정한 부모님의 만류로 아마추어 리그에 머물렀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학교 축구팀 입단시험을 본 문지훈 씨는 테스트에서 탈락했다. 감독에게 ‘재능이 없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볼보이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성실한 모습을 보인 덕인지 그는 감독의 추천을 받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 새 축구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그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하루 종일 연습에만 매진했다.
 
“정말 욕심이 많았어요. 친구들에 비해 축구를 늦게 시작해 기본기를 다지려고 연습만 했죠. 무리하게 연습한 탓에 꼬리뼈가 다 닳아버리는 부상을 얻게 됐어요. 의사선생님은 ‘더 운동을 하면 걷지도 못할 수도 있다’면서 운동을 그만둬야한다고 말했어요.”
 
다시 시작하게 된 축구를 접은 문지훈 씨는 6개월 동안 학교를 쉬고 재활치료를 받았다. 몸 상태가 나아지고 난 후 친구들보다 1년 늦게 학교로 돌아갔지만 오랫동안 해온 축구를 그만둔 탓에 방황을 겪었다.  
 
▲ 문지훈 씨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를 꿈꿨다. 하지만 무리한 연습으로 부상을 당해 그만 둬야 했다. 이후 우연한 기회로 만난 음악을 통해 성악가에 도전했다. ⓒ스카이데일리
 
그런 문지훈 씨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음악이었다. 그 중에서도 성악은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 목소리 곧잘 흉내냈고, TV예능 프로그램에 성악가가 나오면 노래를 따라 하기도 했다.
 
“우연히 학교에 여학생 합창단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노래를 배우고 싶어서 합창단에 찾아갔죠. 그런데 남학생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합창에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한 마디만 불렀는데 지휘자 선생님께서 부르지 말라고 하시기도 했죠.”
 
여학생 합창단서 ‘카운터테너’ 역할 톡톡…콩쿠르 입상 등 ‘두각’
 
그는 합창단의 일손을 도와주며 여학생들의 높은 음역대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합창단원들 보다 높은 음역의 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해졌고 실력도 다른 단원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휘자 선생님이 ‘카운터테너’라는 것을 설명해주셨죠. 제가 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면서 학생들 앞에서 칭찬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얼떨떨했죠. 점점 노래 파트가 늘어나면서 합창단의 중심이 됐죠.”
 
문지훈 씨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콩쿠르에 나가 입상 하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시 찾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살에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검사를 받던 도중 한쪽 눈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군의관님이 시력이 안 나오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말했어요. 당시에는 한 쪽 눈이 좋아, 다른 한 쪽이 안 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죠. 검사 결과 오른쪽 눈이 뿌옇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는 병원에서 ‘원추각막’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원추각막은 성인이 되는 과정에 10명 중 7명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중 3명이 시력이 안 좋아질 수 있다. 문지훈 씨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에 절망감에 빠졌다. 이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세상이 나를 버린다는 느낌이 가득했죠.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했지만 또 한 번이 벽이 앞을 가로막았으니까요” 
 
21살 때 각막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수술 직후에는 앞이 보였지만 점점 시력을 잃었다. 그는 장애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 문지훈 씨는 시각장애인이 아닌 성악가 문지훈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밝혔다. 8월 불가리아 공연을 시작으로 유럽과 미국 진출이 예정돼 있다. 사진은 공연 중인 문지훈씨의 모습 [사진=문지훈 제공]
 
“성악 실력이 특출 난 것도 아니었고 몸도 불편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뿐 이었죠.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25살 전까지는 제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부모님 외에 아는 사람이 없었죠.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악보가 보이지 않아 실수가 잦았는데 친구들은 제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수했다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시각장애 성악가’ 알려지며 마음고생 심해…유럽공연·앨범제작 활동 ‘활발’
 
좌절에 빠진 그가 또 다시 일어서게 된 계기는 당시 그를 지도하던 교수님의 한 마디였다. 교수님은 문지훈 씨에게 ‘너는 엄청난 대가(大家)가 노래하는 것처럼 노래를 하는데 좀 더 노력하면 뛰어난 성악가가 될 것이다’고 조언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그는 노래에 더욱 감정을 이입해 실력을 끌어올렸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독창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1학기 때는 대학에서 학회장도 맡았죠. 제겐 너무 버겁고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시각장애인이 아닌 ‘인간 문지훈’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죠.”
 
도보여행도 시작했다. 대전시청에서 인천시청까지 약 200km를 걸었다. 무모할 지도 모르는 도보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도보여행을 마치고 또 한 번의 인생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장애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15년에 광복 70주년을 기념한 ‘김연아 합창단’ 모집이 계기가 됐다. 평소 김연아 선수의 엄청난 팬이던 그는 합창단원에 지원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세상에 장애 사실을 밝혔다.
 
이후 각종 방송 출연과 공연활동을 이어가면서 문지훈 씨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하지만 공연 할 때 두성을 내면서 눈에 압력이 가해지는 것과 강한 조명 탓에 나머지 눈마저 시력이 악화됐다. 건강 악화 뿐 아니라 심적 고통도 많았다. 음악가 이전에 시각장애인으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아킬레스건’을 방송을 통해 고백하면서 시각장애인으로 살게 됐죠. 저는 아무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으로만 저를 보면서 많은 제약이 생겼죠. ‘사연팔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래서 ‘장애를 고백하지 말 걸’이라고 후회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장애 역시 제 자신이고 인정해야 되는 부분이니까요.”
 
음악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온 문지훈 씨는 해외 진출도 앞두고 있다. 오는 8월에 불가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무대에 나선다. 연말에는 미국 공연도 계획돼있다. 올해에는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앨범을 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저는 결코 좋은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계속 도전하면서 제 자신을 발견하고 나만의 행복을 찾으면서 꿈을 찾았죠. 음악을 통해 도전하며, 제가 얻은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김민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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