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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원의 성경&정치경제

노동 아닌 휴식의 한가위를 바래본다

코로나 등으로 집에서 보내는 사람 많아…축제의 성격 기억해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26 12:14:3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잠언 18 : 11>
 
▲ 深頌(심송) 안호원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한국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던 한가위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달이 원만하게 커간다. 창밖의 귀뚜라미의 소리도 점점 또렷해진다. 뉴스에 보니 햇사과가 벌써 나왔고 농촌에는 대추가 영글어졌고 마당에는 붉은 고추가 즐비하게 널려있다.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벌초를 한 봉분들도 모두 산뜻해졌다.
 
무더운 여름을 떠나보낸 고향은 밝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햇곡식과 햇과일을 준비해놓고 귀가할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다. 명절에 만날 그리운 가족들의 얼굴, 동네 어귀의 기차 길 간수 아저씨가 있는 건널목, 둑 넘어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물과 참나무가 무성한 동산, 노을 지는 마을 어귀에 풀을 뜯고 있는 누렁이(소), 또 동네골목을 휘잡고 돌아다니는 개도 떠오른다. 소낙비를 맞으며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뛰던 때도 생각난다. 밤이 되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밤하늘에 헤일 수 없이 떠있는 별을 세기도 했다.
 
그런 고향의 추억이 모두 즐겁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칠순이 넘은 고향 친구들 몇 명이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코 흘리게 벗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온다. 그래서 고향은 따뜻하면서도 슬픈 곳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갈수 없는 고향이 돼 버렸다. 이미 부모님이 모두 소천(小天)하셨다. 그래서 가슴에 묻은 고향이 돼 버렸다. 정부의 시책이기도 하지만 별수 없이 집에서 명절을 보내야 할 것 같다.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의 압박효과 덕일까. 많은 사람들이 추석연휴를 집에서 보낼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가 추석연휴를 코로나 방역의 최대 고비로 보고 국민들에게 고향 방문 자제를 요청하면서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예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은 명절을 맞이하면서 무거운 표정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경제도 침체되기도 했겠지만 고향의 부모님을 뵙지 못하고 친구들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명절이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날인가? 어떤 의미가 있기에 명절을 연휴로 지정하고 쉬는가. 또 명절이 되면 고향에 가기위해 민족 대이동인 교통대란도 감수하는가. 잘 모르긴 해도 명절을 맞이해 조상을 기리는 것도 있지만 부모님과 일가친척 그리고 벗들을 만나 안부도 묻고 정을 나누기 위함이 아닐까?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매년 이맘때만 되면 팔월 한가위를 즐겨왔다. 고된 여름 농사와 가을 추수 사이에 황금 같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한 해 동안 농경으로 삶을 꾸렸던 시간들 지금까지의 노고를 스스로 자축하며 다가올 수확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기력을 모으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무(歌舞)를 즐기는 문화에 젖은 우리 민족은 그래서 잔치와 놀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꼭 추석명절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한식이나 단오 같은 명절에도 쉼 없는 노동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때마다 필요한 휴식과 충전을 잊지 않고 챙기려는 조상들의 혜안이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카인과 아벨이 감사제에서 첫 곡식과 흠 없는 어린 양을 신에게 바치는 내용이 있고 미국은 신천지에서의 첫 수확을 감사하기 위해 추수감사절을 지냈다. 이렇게 각 나라와 민족에게는 형식과 절차 혹은 의식은 다르지만 가을의 수확을 감사하면서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어우러져 기념하는 명절 풍속이 존재한다.
 
옛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명절은 즐거이 기다려지던 시간이었다. 특히 수많은 신들을 섬기던 사람들답게 이들의 명절은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축제(祝祭)였다.
 
축제와 잔치는 일상의 활력소일 뿐만 아니라 고전 문학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하다. 이 같은 축제의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명절을 지낸 후 이혼율이 올라가는 까닭은 왜일까?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명절 직후 평균 이혼 신청률이 평소의 2배 이상으로 상승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명절이혼이 늘어나는 원인을 분석해보니 평소 배우자에게 쌓인 불만이 명절 갈등으로 폭발하면서 이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명절 갈등 중 한 가지는 바로 한쪽에게만 부과된 육체노동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혼 여성들은 명절에 시댁에서 온갖 음식을 장만하는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기혼 남성들은 대부분 친지나 부모님과 차례를 지내는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명절 노동은 그림자 노동이라 하기도 한다.
 
이는 며칠 전부터 마련한 명절 음식과 손님맞이 준비는 가사 노동에 포함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명절 노동은 경제적 가치를 매기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에 머물러 있다. 명절을 준비하는 것은 나(여자)인데 명절을 즐기는 것은 여전히 남자(남편)라는 것이 불만 조건이 된다.
 
명절은 축제다. 고대의 제의(祭義)에서 출발한다. 인류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봄과 가을 등 계절의 변화가 확연 할 때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를 중시 여겼다. 봄에는 초월적 절대자에게 정성스러운 제사를 드림으로써 생명과 활력이 자기들의 삶의 터전에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가을에는 수확한 곡물 그리고 채집과 사냥을 통해 먹을거리를 마련해 신(神)에게 나누는 바치는 행위로 공동체의 믿음과 확신을 다졌다. 결과적으로 제의는 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잔치로 여겨졌다. 농경사회에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 봄부터 시작된 고된 농사일이 결실을 맺는 시기인 가을은 중요한 축제의 시기였다.
 
공동체의 협력으로 이루어 낸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가을의 추석은 조상들께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감사하며,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친족과 이웃 간 정을 나누는 축제였다. 명절이 끝나면 기혼 여성들 대부분은 긴장이 풀리면서 몸져눕기 십상이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가사노동과 장시간 계속된 귀성. 귀경길로 인한 피로감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어려움 때문일까, 새로운 명절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자식들이 사는 도시로 부모들이 역귀성 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이고 차례를 아예 지내지 않거나 간단하게 주문을 해서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또 각자 형제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오는 가정도 늘고 있다. 심지어는 추석 명절을 제2의 휴가라 생각하고 추석명절 연휴기간 해외로 떠나는 가족도 있고 숙박지인 콘도에 붙박이로 차려진 제사상을 빌려다 제사를 지내며 연휴를 즐기는 가정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시민은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유일하게 명절을 맞이해 일가가 모이는 건데 만약 이런 명절문화가 사라진다면 그나마 친족들과의 만남도 사라질 것 같다” 며 “우리 세대보다 내 손자 세대로 가면 우리가 느꼈던 추석 명절의 정서와 추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수 있겠다”라며 명절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다시 말하지만 잔치니 축제니 명절이니 하는 것은 일상의 고된 노동의 무게를 아는 이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모쪼록 기혼 여성들에게 이번 한가위가 달콤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마가복음 9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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