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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지구촌 IN & OUT

100세 정년 시대 와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13 12:10:30

 
▲ 이혁재 언론인·전 조선일보 기자
/노후 대비했던 100세 할머니
/명분과 현실을 간파한 지혜꾼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기업들
/정년보다는 기업 생존에 비중
 
 
일본에 100세 넘게 장수한 ‘킨짱’ ‘긴짱’ 이란 쌍둥이 할머니가 있었다. 19세기부터 20세기, 21세기까지 3세기에 걸쳐 세상을 살았다. 100세가 넘어서도 명랑하게 방송에 출현했던 할머니들은 TV 사회자와 이런 신화적인 대화를 남긴다.
 
-출연료 받아서 어디다 쓰세요?
“저금해.”
-손주 용돈 주시려고요?
“아니야. 노후에 대비해야지.”
 
그런 장수국가 일본에서 고령자 고용안정법이 개정돼 이달부터 ‘70세 정년 시대’가 열렸다. 이미 사라져 버린 환갑잔치 대신, 이제부터는 ‘칠순파티’가 직장 사무실에서 열릴 것이란 말이 나온다.
 
70세 정년은 ‘노력해야 한다’는 ‘노력의무’ 조항에 해당된다. 도입하지 않는다고 당장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65세 정년이 당분간 유지된 뒤 각종 회의와 공청회를 수십 차례 연 뒤에 70세 시대로 공식 진입할 전망이다. 우리처럼 단칼에 “~ 안 하면 처벌한다”가 아닌, 결정 하나 내리는데 허다한 대화와 과정을 거치는 전형적인 일본 방식을 택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다가온 70세 정년
 
산업사회 이전에는 정년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했다고 한다. 1889년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노령연금을 도입했는데, 평균수명이 40세 안팎이던 시절에 연금수령 나이를 70세로 정했다.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결국 65세로 낮춘다. ‘고령화’의 기준 65세는 여기서 유래한다.
 
우리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와 함께 팔팔한 ‘청년 노인’들이 쏟아지고 있다. ‘60세 정년, 65세 노인’은 이미 현실에 맞지 않는다. 정년 70세는 우리에게도 먼 미래가 아니다.
 
정년 연장은 정부 연금재정 부담을 덜어주고, 고령층에 활기를 넣어주는 등 많은 장점이 있다. 기업 규모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고령자의 실적 향상, 노하우 전수, 전체 사원에 동기부여 등도 기대된다.
 
하지만 장밋빛만은 아니다. 실제로 70세 정년으로 대부분 기업에서는 총인건비 상승, 생산성 저하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간다는 기업들이, 이런 상황을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일본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정년이 연장되는 세상에 대비해왔다. 그래서 마련한 대표적인 대비책이 연봉 삭감, 그리고 ‘흑자 리스트라’이다.
 
“실적도 못 올리면서, 또 적지 않은 연봉 받으면서 70세까지 회사에 눌러앉겠다는 건 솔직히 양심 없는 거 아닌가.”
 
이것이 일본 기업들 속내 같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필수요원’이 아닌 노령 직원에 지출할 수 있는 ‘선의의’ 인건비에는 한계가 있다.
 
‘노년 복지’ 명분과 ‘기업 생존’ 현실
 
실제 일본 기업들은 고령 직원의 연봉을 꾸준히 줄여왔다. 2014~2018년 사이 40세 대졸 사무직 연봉은 711만엔에서 685만엔으로 26만엔 하락했다. 하락 폭은 나이가 많을수록 커져, 50세는 49만엔, 55세는 63만엔이나 줄었다. 반면 20, 30대는 큰 변화가 없다. 나이 많을수록 크게 깎이니, 70세 정년을 바라보는 고령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 일본 기업들은 정부의 공무원법 개정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공무원법은 6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연봉을 30% 삭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업의 또 다른 대비책인 ‘흑자 리스트라’는 회사 형편이 좋은데도 퇴직 희망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2019년 희망퇴직을 실시한 상장기업 35개사 중 흑자를 기록한 기업은 60%에 달했다. 삭감 인원은 중고년이 중심이며 9000명이었다. 2018년에 비해 3배 늘었다.
 
기업 입장에선 실적이 미약한 60~70세 직원이 회사에 눌러 앉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월급을 깎으며 눈치를 준다. 반면 고령 사원들은 일단 퇴사하면 재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월급이 깎여도 안 나가고 버틴다. ‘눈치 없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뽑아드는 ‘레드 카드’가 흑자 리스트라인 셈이다.
 
선의의 정년 연장이 세대 갈등 부를 수도
 
정년 연장은 기업 내 세대 갈등도 심화시키고 있다. 일본에선 정년 연장 덕에 회사에 남아 있는 고령층을 ‘요정’ 이라고 부른다. 분명 출근하긴 한 것 같은데 오전 2~3시간을 제외하곤 어디 갔는지, 일은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칭이다. 얼마 전 아사히(朝日)신문은 요정과 젊은 사원 간 논쟁을 실었다.
 
젊은 사원 ‘60세 이상 사원은 2명에 1명이 요정이다. 출근해선 신문 보고 텔레비전 보고 점심 먹고 낮잠 잔다. 저녁 회식 자리는 안 빠지고, 다음날엔 지각한다. 젊어서 고생했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 대우 받는 거라 하는데, 우리 세대는 기대하기 힘든 특혜다.’
 
요정 ‘되도록이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우리들 심정을 알기나 하나. 니들 뒤에는 너희보다 젊은 녀석들이 너희를 노려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정년이 연장된 상황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란 예측이다. 일본에서 대기업은 지난해 4월부터, 중소기업은 올해 4월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목적 중 하나가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대우 철폐’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 원칙을 국제노동기구 헌장에 실었고,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보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왜곡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고령층 임금을 낮추는 카드로 사용하려는 것 같다. “동일노동을 못했으니 동일임금은 지급 못 하겠다”는 식이다. 즉 비정규직 처우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실적을 못 올리는 고령층 정사원의 급여가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봉 차이가 줄어드는 것이다. 선의의 명분과, 명분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충돌하면 벌어지는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있다. 그 진리대로 정년 연장에도 공짜는 없다. 100세 넘게 살았던 일본 쌍둥이 할머니들은 3세기에 걸쳐 인생을 산 덕에 세상의 순리를 알았고, 그래서 노후에 대비해 저금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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