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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은퇴 후 왕성한 자선 활동 펼치는 ‘킥의 마술사’ 베컴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7-22 10:30:44

 
▲박병헌 언론인·전 세계일보 체육부장
/어려서부터 하루 1000개 킥연습
/한때 최고 연봉 축구선수에 등극
/영국 걸그룹 멤버와 호화 결혼식
/그라운드서 받은 사랑 사회 환원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축구의 종주국인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을 오랫동안 지낸 데이비드 베컴은 축구공 하나로 명예와 부를 이룬 주인공이다. 배관공의 아들로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베컴은 어려서부터 축구 선수를 꿈꿔왔고, 결국 그 꿈을 아름답게 이루었다.
 
학창시절부터 축구를 남들보다 잘 하기 위해 훈련이 끝난 뒤 킥 연습을 하루에 무려 1000개 이상 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어둠이 깔려 공이 안 보일 때까지 킥 연습을 했다는 얘기다. 베컴의 킥 연습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최고 인기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입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코칭 스태프나 동료 선수들이 그의 킥 연습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클럽팀이나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프리킥은 베컴의 독차지였다. 오랫동안 킥 연습을 하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무회전 킥, 드롭 킥, 좌로 급격히 휘는 킥 등 다양한 필살기를 개발해 낼 수 있었다. 베컴을 킥의 마술사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키가 1m75cm로 축구선수치곤 크지 않은 베컴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선수였기에 많은 칭송을 받고 있다.
 
맨유팬이 맨유 선수로 그라운드에
 
맨유의 레전드인 보비 찰튼 경이 설립한 맨체스터 축구학교를 다닌 베컴은 14세에 학생 전형으로 맨유에 입단한다. 베컴은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폴 스콜스 등과 함께 맨유에 입단해 1992년 5월 구단의 FA 유스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들은 이른 바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금 세대들이다.
 
베컴이 꿈에 그리던 맨유 1군에 오른 것은 1995년의 일이다. 그의 나이 20세 때였다. 인기구단인 맨유의 광팬이었던 베컴이 선수로 그라운드를 밟게 된 것이다. 베컴은 비록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맨유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 스타디움에 와서 맨유의 홈경기를 지켜보며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당시 맨유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베컴은 빠르게 맨유의 우측 미드필더 자리를 꿰차며 자신의 입지를 점차 넓혀갔다. 베컴은 골문 앞에서 거친 몸싸움을 하며 골을 전문적으로 넣는 스트라이커라기보다는 자신의 정교한 킥을 앞세운 미드필더로서 어시스트를 하거나 프리킥을 전담하며 이름을 알렸다. 베컴의 골 기록은 필드 골보다 대부분 프리킥에 의한 골들이었다.
 
그의 킥은 정교함 그 자체
 
특히 베컴은 1998~99시즌에 잉글랜드 클럽으로서는 유일하게 프리미어리그 우승, FA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큰 수훈을 세웠다. 2000~01시즌에는 맨유의 EPL 3연패에 일조했고, 모든 구단을 통틀어 이 업적을 달성한 사례는 150년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4번밖에 없었다.
 
맨유는 2002년에 비록 무관에 그쳤지만 베컴 자신은 맨유와의 계약이 끝나면서 대박 계약을 터뜨렸다. 베컴에게는 최고의 시즌이었다. 그는 28경기를 치러 11골을 넣었고, FA컵 대회 등 모든 경기를 통틀어 42경기에서 16골을 기록했다. 베컴은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앞세워 그해 5월 3년간 계약으로 주급 9만파운드(한화 약 14억5000만원)의 연봉 계약을 하면서 세계에서 최고 연봉 선수에 등극하는 명예를 안았다. 베컴은 이전까지는 주급 2만5000파운드의 특급 선수였지만 이젠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는 인기구단 맨유에서의 주장 활약과 축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6월 대영제국 금강기사단 장교 훈장(OBE)을 받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현역 선수가 훈장을 받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이는 베컴의 인기도와 성실성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는 클럽마다 우승컵 들어 올려
 
이후 베컴은 전 세계 유명 축구 선수들을 한데 모으겠다는 스페인 명문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은하수)정책에 따라 거액을 받고 이적했다. 이후 이탈리아 AC밀란, 프랑스 생제르망(PSG)에서 활약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행운을 맛봤다. 2013년 5월 은퇴를 선언해 20년의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고, 19개의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두며 축구선수로서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잉글랜드 대표 멤버로서도 14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 해의 최고 축구선수에게 시상하는 발롱도르상과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를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게 베컴으로서는 큰 아쉬움이었다. 2위를 각 두 차례 차지했을 뿐이다.
 
축구선수로서 인기를 한 몸에 받던 베컴은 영국의 세계적인 걸그룹인 스파이스 걸스 멤버인 빅토리아 애덤스와 웨딩마치를 올려 또 한 번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일랜드 루트를스턴 성에서 치른 이 결혼식에는 약 500명의 인력이 동원되었고, 50만파운드의 경비가 소요된 것으로 보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3년 맨유 시절부터 국제아동보호기금(UNICEF·유니세프) 지원활동을 끊임없이 해 온 베컴은 2005년 1월에는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 위촉돼 비시즌에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을 돌아다니며 어린이·기아 해방운동을 열심히 벌였다. 축구선수로서 또 유명 연예인과의 결혼으로 유명해진 베컴은 의류와 향수사업으로 번 돈을 어린이·기아 해방 활동에 쏟아부었다.
 
프로축구 구단주인 행정가로 변신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위촉된 10주년을 맞아 2015년에는 위기에 처한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데이비드 베컴 유니세프 재단’을 출범시켰다. 물론 사업비와 활동 비용 등은 베컴이 전적으로 책임졌다.
 
영국의 유명 가수인 엘튼 존이 만든 에이즈재단의 후원자이기도 한 베컴은 어린이 에이즈 퇴치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9년에는 영국의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인 앤디 머리와 함께 말라리아 퇴치 단체를 만들어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라운드 밖에서의 자선 활동은 축구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누빌 때보다 더 왕성하다. 축구 하나로 엄청난 재산을 형성한 베컴은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20년간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겠다는 생각에서다.
 
어느덧 네 자녀의 아버지가 된 베컴은 2014년 2500만달러에 메이저리그 사커(MLS) 인터 마이애미 CF를 사들여 구단주가 되면서 축구 행정가로 변신했다. 근래 들어 베컴의 자선 활동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축구선수로서는 드물게 다양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왕성한 자선활동을 벌이고 있는 베컴의 다음 행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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