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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우방국’ 고구려에게 반기를 들었던 낙랑국

반란 일으켰던 낙랑, 고구려 대무신제 정벌로 멸망

“한나라가 낙랑 정벌”…고구리사초략엔 없는 기록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9-24 15:01:42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지금까지 한·중·일 동양사학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낙랑의 대부분이 우리역사였던 낙랑국(樂浪國)이었음에도 이를 모두 한사군의 핵심인 낙랑군(樂浪郡)으로 해석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식민지가 이 땅에 400년간 줄기차게 존재했다고 역사를 날조해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남당 박창화가 일본 궁내청서고에서 필사해온 『고구리사초략』에 의해 완전 허구라는 것이 밝혀졌다. 참고로 자주사관에 의해 기록된 『고구리사초략』에는 호태왕 비문의 내용이 숫자 하나 틀리지 않게 모두 기록돼 있는데 반해 중화사대사관에 의해 저술된 『삼국사기』에는 비문에 대해 아무런 기록이 없다.
 
먼저 『고구리사초략』에서의 낙랑과 고주몽 관련 기록에는 “동명 4년 정해(B.C 34) 정월, 낙랑의 주(主) 시길(柴吉)과 함께 하남에서 사냥했다”와 “15년 무술(B.C 23) 5월 동쪽으로 낙랑까지 순행하니 시길이 딸을 바쳤다”가 있다. 이렇듯 고구리를 잘 모시던 낙랑을 한사군 낙랑군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여기서 ‘주(主)’라는 표현은 낙랑국왕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토록 친하게 지내던 낙랑이 반란을 일으키자 고구리 대무신제는 친정에 나섰다. 『삼국사기』에 대무신왕 15년(32) 호동왕자와 사랑에 빠진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는 바람에 고구리군에게 포위된 국왕 최리가 공주를 죽이고 항복했다. 20년(37년)엔 낙랑을 습격해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리사초략』에는 “대무 20년 정미(47) 3월 낙랑이 배반하자 상이 친히 그 도읍 옥저(沃沮)를 쳐서 빼앗으니 최리(崔理)가 북쪽 남옥저로 달아났다”는 기록과 “대무 27년 갑인(54) 4월, (자명고가 찢겨지자) 옥저에서 대군을 이끌고 배를 타고 들어가 그 도읍을 빼앗고 최리 내외를 포로로 잡아 돌아왔다. 낙랑은 시길로부터 4대 80여 년 만에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라고 기록돼있어 낙랑국이 B.C. 53년경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B.C. 86년에 북부여의 4대 단군으로 즉위했던 동명국왕 고두막한이 B.C. 60년에 붕어 후 3년 지나서이다. 참고로 『북부여기』에서 B.C. 169년에 마한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최숭의 낙랑국은 고두막한에게 흡수됐다가 최시길에 의해 다시 세워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 낙랑군과 낙랑국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엉터리 재야사학의 지도. [사진=필자 제공]
 
추가로 “대무 29년 병진(56) 7월, 낙랑의 남은 유민들이 동옥저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장수를 보내 동옥저 땅을 빼앗아 해서군(海西郡)이라 하고 낙랑의 잔당들을 원하(洹河) 땅에 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무신왕 때 낙랑국을 멸망시키니 그 잔당들이 계속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은 원화(洹河)에 대해 “안양(安陽)하라고도 한다. 산서성 여성(黎城)현에서 나와 하남성 임(林)현까지 흘렀다가 다시 동류해 안양현으로 흐른다. 나루터 동남쪽에서 나오는 물이 원하이고 동류해 내황(內黃)까지 흘러 위하(衛河)로 들어간다”고 북부 하남성 안양 부근을 지나는 강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기록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삼국사기』의 “대무신왕 27년(44) 가을 9월 한의 광무제가 병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정벌해 그 땅을 군현으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살수(薩水)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됐다”는 기록이다. 물론 『고구리사초략』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절대로 그럴 리 없지만 백번 양보해 설사 후한의 광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11년 후 고구리 태조대왕이 요서 10성을 쌓으면서 소멸돼 그 존속기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지역이 서로 겹치기 때문이다.
 
살수는 고구리 평양성이 위치했던 산서성 임분시와 약 30리가량 남쪽에 있는 강이기 때문에 광무제가 살수 이남에 한나라 군현을 설치했다면 그 위치는 산서성 남부와 황하 이북 하남성 즉 유주(幽州)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태조대왕 3년(55년)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의 침입에 대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구체적인 지명이 생략돼 있지만 『태백일사』에는 《조대기》를 인용해 아래와 같이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태조 융무 3년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漢)의 10성에 대비했다. ①안시(安市)는 개평 동북 70리에, ②석성(石城)은 건안 서쪽 50리에, ③건안(建安)은 안시 남쪽 70리에, ④건흥(建興)은 난하 서쪽에, ⑤요동(遼東)은 창려 남쪽에, ⑥풍성(豊城)은 안시 서북 100리에, ⑦한성(韓城)은 풍성 남쪽 200리에, ⑧옥전보(玉田堡)는 한성 서남쪽 60리에, ⑨택성(澤城)은 요택 서남쪽 50리에, ⑩요택(遼澤)은 황하 북류 동쪽에”.
 
(전문가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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