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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 -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

기울어진 운동장과 노동이사제

기사입력 2022-01-11 22:53:34

▲ 임한상 산업부 기자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헝가리에 9대0으로 패배했다. 아마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었나 보다. 이 경기 점수 차는 월드컵 사상 최다 골 패배 스코어로 기록돼 있다. 한국으로선 첫 월드컵 참가였고 헝가리는 당시 세계 최강의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고 전해진다. 헝가리 대표팀은 그 해 대회 결승에서 서독을 상대로 아깝게 패배해 준우승을 차지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은 축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스페인의 프로축구 명문팀인 FC바르셀로나가 연전연승하자 계속 패배하는 상대팀과 팬들 사이에서 운동장이 기울어진 게 아닌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확산돼 이런 표현이 생겼다.
 
2022년 새해 노동이사제가 국회 통과가 확실시 된다. 좀처럼 국회 상정조차 되지 않았던 이 법안이 초읽기에 들어간 이유는 21대 국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탓이 크다.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은 총 300석인 국회의원 의석 중 무려 180석을 가져갔다. 과반을 넘긴 것이다. 이대로라면 국회의원 60%이상이 이 노동이사제 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의 행보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사실 노동이사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노동이사제는 2017년 5월 31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었고 2020년 더불어민주당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기에 노동계의 불만은 상당했을 터. 그래서 2021년 재보궐 선거 결과는 아이러니하지만 노동이사제 법안에 있어 강한 추동력을 준 사건일지도 모른다. 1년 전과 다른 민심이반의 충격을 받은 집권 다수당은 지지층에게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낼 것임을 조용히 선언한다. 그 개혁 입법 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노동이사제다. 그럼에도 노동이사제는 공전에 공전을 거듭했다.
 
근데 갑자기 대선 후보들이 출연해 이 법안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작년 11월 22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실을 찾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공약했다. 이 후보는 특유의 화법으로 “결단만 하면 되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신속한 추진을 한국노총 지도부에게 약속했다. 그는 이날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이재명식 민주당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몽골기병처럼 필요한 일을 신속하게 해내는 그래서 결과물로 답을 하는 당”이라고 선전했다.
 
그후 12월 15일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한국노총 사무실을 방문해 지도부 간담회에서 “첫 발을 내딛는게 중요하다며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 부실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찬성 의사를 표명했다. 윤 후보는 그 다음 날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에서 최태원 회장을 만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필요성을 역설한다. 윤 후보는 “시대 흐름에 맞게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원자력공사에 노동 이사가 있었다면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탈원전에 찬성했겠느냐”는 논리를 폈다.
 
이처럼 노동이사제를 두고 각 진영 별 속셈은 제각각이다.
 
입법이 코앞이지만 공공부문 노동이사제의 구체적 실행 내용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다만 법률에 노동자 대표의 추천이나 동의를 받은 비상임 이사를 1명 선임한다는 것과 노동이사 자격은 3년 이상 재직 근로자로 임기는 2년으로 하되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는 내용 그리고 시행시기는 공포일로부터 6개월 후라고 돼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입법이 되면 후속 조치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발표될 예정이다. 노동계는 그 가이드라인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경계하고 있다.
 
과연 이번에 도입될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정착될까.
 
우선 장밋빛 전망보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귀가 쏠린다. 공공기관이 민간부문보다 근로조건이 더 좋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공공기관 정규직은 청년들에게 선망의 일터다. 공공기관으로 인재가 쏠리는 현상은 한국경제에 있어 민간부문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지목되곤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이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권익이 향상돼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공공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들이 정말로 국민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제 살을 깎는 공공부문 경영개혁을 할지 미지수다. 그간 공공부문의 역사가 말해주듯 도덕적 해이와 방만이라는 모순 축적으로 일그러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형 공공부문 노동이사제가 이런 함정의 늪에 빠지지 않게 공동체 지향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임한상 기자 / hsrim@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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