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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윤석열과 정용진, 그리고 문화 권력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19 09:38:59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멸공’ ‘전두환 공과’ 논란 뒤의 검은 실세
똑같은 사안에 우파에겐 가혹, 좌파에 관대
7080 운동권이 구축해온 문화 기득권 막강
야당 대선의 최대 장애물 ‘기울어진 운동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멸공’ 소신이 결국 꺾였다. 이마트 노조의 우려 성명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이전부터 유형무형의 압력이 그에게 가해졌을 게 분명하다. 일각에서 협박조로 나온 불매운동보다는 우리 사회 어디로부터인가 묵직하게 발산되는 ‘싸늘한 겁박’이 더 직접적인 근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 부회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가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이라며 ‘멸공’ 발언에 대한 사과 메시지를 올린 인스타그램에는 ‘당연한 걸 당연하게 표현한 것뿐인데 도대체 어떤 점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응원이 더 많다는 걸 기억하세요’ 등의 우호적 댓글이 줄을 이었다.
 
결과적으로 정 부회장을 두고 팽팽하게 맞선 ‘겁박’과 ‘응원’ 사이의 기세 싸움에서 ‘겁박’ 쪽이 최종 승리한 형국이다. 그를 강하게 억눌렀던 사회적 압력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이런 종류의 힘은 비단 정 부회장이 관련된 ‘반공’ 문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 걸쳐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실체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국가에서나 묵시적으로 공유되는 불문율이나,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의 일종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공론장’이나 ‘여론’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사회적 압력’은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매우 편파적이다. 내부 구성원 누구에게는 가혹한 기준을 들이대고, 어떤 사람들에겐 관대하기 짝이 없다. 세상 변화를 거부한 채 철지난 과거에 갇혀 있다. 이런 불공평과 비대칭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문화 권력’이란 틀이 유용해 보인다.
 
‘문화 권력’은 간단히 말하면 문화 분야를 오래 장악해온 세력의 기득권이자 힘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좌우하는 문화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문화 소비자들은 문화적 산물들을 대개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학문이나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학자, 지식인들이 과거 역사적 사건이나 현재의 사회 현상을 분석해 놓으면 일단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정하는 바가 바로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문화 창작자들은 큰 권력을 갖게 된다.
 
문제는 문화 권력자들이 편향적이거나 이념적으로 무장한 경우다. 대형 서점에 가보면 좌파 계열의 책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는 ‘우리 민족끼리’ ‘반미’ 코드가 빠지지 않는다. 선거 때만 되면 민주화 진영의 업적을 부각하거나 반대 진영을 깎아 내리는 영화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들 사이에는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불의와 희생도 상관없다는 통일지상주의가 팽배하고, 반(反)기업 친(親)노동 흐름도 뚜렷하다. 산업화 세대를 평가하는 데 인색하고 민주화운동만 ‘절대 지존’인 것처럼 떠받든다. 여성운동은 여성보다 권력을 비호하는데 앞장선다. 곳곳이 모순투성이인데도 지지 세(勢)는 아직 탄탄하다. 1970,80년대 운동권 세대들이 당시 정치권 진출이 막히자 문화 영역으로 눈을 돌려 장기간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정용진 부회장을 몰아붙인 사회적 압력은 옛 반공주의에 대한 반감, 친북민족주의, 친중 노선에서 나온 것이다. 운동권들의 공통 정서와 일치한다. 그러나 운동권 결집만으로는 강력한 위세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어떤 식으로든 영향 받은 사람들이 같이 공감대를 이루면서 도출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이 흔들린다 싶으면 똘똘 뭉쳐 목표물을 향해 가차 없는 공격에 나서고 결국 뜻을 달성한다.
 
정치 영역에선 더 혹독한 형태로 다가온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전두환 정부의 공과에 대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했고 이재명 후보는 “전체적으로 보면 삼저 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 게 맞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발언의 맥락 면에서 둘 다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파장은 확연히 달랐다. 거의 몽둥이로 몰매 맞는 수준으로 궁지에 몰린 윤 후보에 비하면 이 후보는 회초리 정도로 그쳤다.
 
이재명 후보가 공약한 역사왜곡처벌법도 또 하나의 사례다. 그의 공약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단독 처리한 5.18역사왜곡처벌법을 확대해 독립운동과 일본군위안부, 전쟁 범죄 등으로 넓히겠다는 것이다. 5.18법 하나 만해도 사상, 학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국내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이에 견줄 만한 이슈로 우파 쪽 문제를 찾아보자면 박근혜 정부 때 국정 한국사교과서가 있다.
 
사실 두 사안은 같은 무게로 비교할 일이 아니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역사왜곡처벌법 쪽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허물어버린다는 점에서 훨씬 중대하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국정교과서 때는 들불처럼 일어나 맹폭을 퍼부었으나 역사왜곡처벌법에 대해서는 지난해 5.18법 때 성명서 한 장 내놓은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우파 지지자들은 윤석열의 실언보다 이재명의 실언이나 거짓말이 더 심각한데도 현실에서는 윤석열 쪽이 더 곤경에 몰리고 이재명은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을 몹시 억울해 한다. 그러나 문화 권력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좌파가 지닌 힘만큼 그에 따른 차별이나 편차는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에게 ‘내로남불’의 질타가 아무리 빗발쳐도 그들이 뻔뻔하고 태연하게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도 이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 정권을 거치며 문화 권력의 허상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는 점이다. 혼자 정의롭고 양심적이며 고상한 척 하는 지식인, 문화인들의 베일이 걷혀지면서 본래 모습을 보게 됐다. 정용진의 ‘멸공’에 대한 20,30대의 호응에서 나타나듯 시대 상황과 가치도 많이 달라졌다. 젊은 세대들은 북한에 아무 말도 못하는 현 정권을 싫어하고 반중 감정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 권력의 영향력은 사람들의 뇌리 깊숙이 자리 잡는 것이어서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야당의 원초적 불리함, 집권 세력의 정권 수호 총력전을 마주해야 한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이보다 더 싸우기 힘든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문화 권력이 될 것이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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