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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응신의 아들이 아닌 인덕을 왜왕에 책봉한 호태왕

인덕은 호태왕에게 책봉 받은 제후에 불과

왜가 고구리에게 나라 들어 항복했기 때문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27 11:20:52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영락 10년(400년, 경자)에 고구리의 5만 보·기병이 신라를 침공했던 왜군을 본토까지 추격해 쓸어버리자 왜가 항복했다. 이후 변심했던 왜국의 땅은 고구리의 군국(郡國=식민지)으로 돼버렸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인 야마토(大和)왜의 본격적인 출범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물론 그 시작은 백제계로 알려진 15대 응신(応神) 왜왕부터 라는 의견이 학계에서 지배적이다. 응신은 백제 아신왕과 교혼(交婚)을 통해 우호관계를 돈독히 했으나 백제의 고구리 침공에는 동참치 않고 신라를 단독 침략했다.
 
호태왕은 백제에게는 항복을 받고 인질을 잡고 왕위를 유지시켜줬다. 왜의 경우는 항복했다가 변심해 다시 도발했기에 응신을 왜왕에서 폐하고 새로이 왜왕을 책봉했다. 그가 바로 《일본서기》에 응신의 4째 아들로 기록되어있는 인덕(仁德) 왜왕이다.
 
통상 왕을 폐하고는 그 아들을 다음 왕으로 세우지 않는 법이다. 부왕에 대한 복수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덕이 다음 왜왕에 오른 것을 보면 어쩌면 그는 응신의 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럴까.
 
《일본서기》에 따르면 16대 인덕의 왕위는 25대 무열(武烈)까지 이어지다가 자손이 없어 응신의 5대손인 계체(繼體)가 26대 왜왕으로 추대됐다고 한다. 그는 무열과는 남이나 다름없는 10촌간이었다. 과연 인덕의 후손 중 계체보다 가까운 혈통이 아무도 없었을까. 뭔가 이상한 왕위 계승이 아닐 수 없다.
 
재야사학자 문정창(文定昌) 선생은 왜국 내에서 백제인들의 지원을 받은 계체가 무열을 제거하고 스스로 왜왕이 됐다고 주장했다.
 
만일 인덕이 응신의 아들이라면 인덕 이하 10명 왜왕도 백제계로 구분돼야한다. 그런데 응신과 계체만 백제계로 구분하는 걸 보면 인덕은 응신의 아들이 아님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응신의 아들도 아닌 인덕이 어떻게 왜왕이 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아래 ‘고구리사초략’의 기록에 있다.
 
“영락 13년(403) 계묘 3월, 왜주(倭主)가 아들 맥수(麥穗)를 보내 딸을 호송해 후궁으로 바치면서 ‘신 인덕(仁德)은 멀리 바다 가운데에서 태양과 더불어 같이 있고 아직 황상의 교화에 젖지 않아 오래도록 마음속엔 모자람이 있었습니다.
 
▲ 계체왕 계보도. [사진=필자 제공]
 
언뜻 듣자오니 황상폐하(=호태왕)께선 성덕이 3황(三皇)을 능가하고 공(功)은 5제(五帝)를 넘으시어 5부(五部)·8맥(八㹮)의 자식들이 찾아와 첩을 살고 남쪽 땅을 복속해 삼한(三韓) 땅을 가지시고 서쪽으론 두 진(東晋·後晋) 땅을 진압하셨다 하옵고
 
신에게 명하시길 딸을 바치고서 이 땅에서 영원토록 임금을 하라시면서 대대로 친하게 지내자고 하셨다니 신은 두렵기도 하지만 기쁜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겠습니다.(命臣納女永主臣邦世世作親 臣惧且喜不知所措)
 
삼가 규전(溈典)을 따라 감히 두 딸을 바칩니다. 예의를 차리며 애교를 떨지 못하여도, 실은 부끄러워하는 섬의 습속 탓이오니 저버리지 않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고 아뢰었다.”
 
위 문구의 “이 땅에서 영원토록 임금을 하라시면서”에서 인덕은 호태왕에게 책봉받은 제후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위 내용은 지난해(402) 고구리에서 동명대제(東明大祭)가 거행될 때 호태왕이 왜국 사신에게 “돌아가거든 너희 왕에게 딸을 후궁으로 바치고 아들을 보내 학문하게 하고 영원한 신민(臣民)이 돼 너희나라에 널리 짐의 교화가 미치도록 하라(永爲臣民遍被皇化可也.)”고 말한 것에 대한 답신이다.
 
비문징실의 내용을 입증해주는 『고구리사초략』의 기록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영락 10년(400)에 왜왕(응신)이 항복해 군국(식민지)이 됐으며 402년에 호태왕이 인덕을 다음 왜왕으로 책봉했다. 『일본서기』에도 응신 왜왕이 죽고 후계자가 바로 결정되지 못하다가 3년 후에 인덕 왜왕이 즉위했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은 임나일본부가 설치돼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었다고 엉터리 주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 왜는 고구리에게 나라를 들어 항복했고 군국(식민지)이 되었으니 왜왕은 호태왕에게 책봉받는 제후였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숨어있던 역사의 진실이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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