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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의자왕을 체포해 당나라에 바친 반역자 예식진
예식진의 조부와 부친은 백제서 좌평 지낸 명문 집안
비문에는 백제왕 체포했다는 내용은 새겨져 있지 않아
2010년 아들·손자 묘지명 발견돼 역사적 사실로 확정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4-01 09:47:48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나당연합군의 기습공격에 도성인 사비성을 버리고 웅진성으로 피신했다가 북쪽 경계까지 이르렀던 백제 의자왕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의자왕은 <삼국사기> 기록처럼 웅진성문을 열고 나와 자진 항복한 것이 아니라, 웅진성 수비대장이 의자왕을 체포해 당나라로 연행하려하자 왕이 자결을 시도했으나 동맥이 끊어지지 않아 항복해 수모를 당했다는 <조선상고사>의 내용은 사실일까?
 
그렇다면 중국사서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신당서> ‘소정방열전’에 “그 장수 예식이 의자와 함께 항복했다.(其將祢植與義慈降)”는 기록과, <구당서>에는 “그 대장 예식이 의자를 데리고(체포해) 항복했다(其大將禰植又將義慈來降)”는 기록이 있다. 장(將)의 뜻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 예식진은 의자왕을 데리고 간 걸까? 체포해간 걸까? [KBS 역사스페셜]
 
우리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고 <당서>에만 보이는 이 예식(禰植)이란 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간 의문에 쌓였다가 2006년 낙양에서 발견된 한 묘지명에 새겨진 망자의 이름이 예식진(禰寔進)인데, 그가 바로 예식과 동일인임이 밝혀졌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614년 웅천(熊川)에서 태어난 예식진의 조부와 부친은 백제에서 좌평을 지낸 명문집안이다. 그는 중국에서 이방인으로는 김일제(金日磾)보다도 높은 공적을 올렸고, 16위대장군의 하나인 정3품 좌위위(左威衛) 대장군과 종2품 주국(柱國)을 지내다가 672년 58세로 사망했다고 새겨져있다.
 
 
▲부여박물관에 전시된 예식진묘지명 탁본 [KBS 역사스페셜]
 
사실 예식진의 비문에 백제왕을 체포했다는 등의 직접적이고 상세한 공적은 새겨져있지 않다. 하지만 한 무제를 자객으로부터 구해 훗날 벼슬이 시중과 고명대신에 이르고 투후(秺候)에 봉해졌던 김일제보다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하니 어느 정도 공적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식진이 오른 벼슬도 백제부흥운동의 주역이었다가 투항해 훗날 정2품 상주국(上柱國)까지 오른 흑치상지에 버금간다. 당나라에서 무명의 이방인 예식진이 이처럼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웅진성에서 백제왕을 체포한 공적을 아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참고로 당나라의 종2품 주국은 현재 우리나라로 치면 부총리급이다. 무신의 최고관직인 대도독 등과 6부의 수장인 상서(판서)가 16위대장군과 같은 정3품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의자왕을 체포해 연행했다는 예식이 예식진이라는 사료가 명확하지 않아 가정의 역사일 수밖에 없었으나, 2010년 예식진의 아들 예소사(禰素士)와 손자 예인수(禰仁秀)의 다음과 같은 묘지명이 발견됨으로써 그러한 가정은 역사적 사실로 확정되었던 것이다.
  
“당나라가 천명을 받아 무도한 동쪽(백제)를 토벌하니, (예식진은) 그 왕을 끌고 고종황제(이치)에게 귀의했다. 이에 좌위위대장군에 제수되었고 내원군개국공에 봉해졌다. (洎子寔進, 世官象賢也. 有唐受命, 東討不庭, 卽引其王, 歸義于高宗皇帝. 由是拜左威衛大將軍, 封來遠郡開國公.)”
 
660년 웅진 수비대장 예식진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혼자 잘 살기 위해 자신의 국왕을 체포해 당나라에 바치는 만고역적의 길을 택했다. 의자왕이 웅진으로 오기 전에 예식진은 당나라와 미리 협상을 마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랬기에 소정방이 웅진성에 도착해서는 더 이상 공격을 명하지 않고 뭔가를 기다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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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신라 무열왕(김춘추)에게 수모를 당하는 패자 의자왕 [SBS 드라마]
 
660년 의자왕이 체포됨으로써 700년 사직의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부흥운동이 한때 큰 세력을 떨치기도 했으나 왕이라는 확실한 구심점이 없었기에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나라가 예식진의 공적을 아주 높게 인정했던 것이다.
역사에서 “만약에 그렇지 않고 이랬더라면 어찌 되었을까?”라는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에 예식진이 그런 역적질을 않고 의자왕을 도와 당나라 군대와 대치하면서 지방에서 올라올 지원군을 기다렸으면 백제가 과연 망했을까? 라는 어리석은 가정을 해본다.
백제 멸망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당나라가 백제를 치기 위해 10만 병력을 보냈었는데, 백제부흥운동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40만 병력을 파견했던 걸 보면 그러한 가정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예식진을 우리 역사상 제2의 민족반역자로 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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