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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지구촌 IN & OUT

韓·日, 이제는 아무 전제 없이 만나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10 09:22:00

 
죽창가 드높이던 한국 일본 관계에
정권 교체로 관계복원 분위기 흘러
이제는 무작정 미화도 비난도 말고
있는 그대로 서로 지켜보는 여유를
 
예전에 도쿄특파원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회사에서 일본 근무 소감을 사보에 써 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10여장 분량으로 일본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친절’을 적었다. 눈치는 좀 있는 편이어서 소감 제일 앞쪽에 ‘친일파 소리 들을 것을 각오하고’라는 전제를 달고 글을 썼었다. 필자보다 10년 정도 먼저 도쿄특파원을 지낸 선배가 사보를 보고는 “맞아. 그런 전제 안 달면 작살나지”라고 코멘트했던 기억이 난다.
 
정권이 바뀌면서 죽창가 대신 한·일관계 복원이 얘기되고 있다. 그러니 사보에 썼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전제 없이 써보려고 한다. 사실 전제를 두지 않고 서로 욕하고 칭찬하고 싸우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이 관계 복원의 기본이다. 또 다른 기본은 서로를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인정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장애인 문제를 통해 일본인을 들여다보자.
 
·일의 장애인 복지
 
얼마전 우리나라 언론에 ‘장애인 배려 선진국 일본’이란 기사가 실렸다. ‘고령자나 장애인이 살기에는 한국보다 일본이 낫다’는 내용이다. 동의한다. 계단을 이용 못 하는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우리나라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면 우선 상당히 걸어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많지도 않다. 반면 일본은 ‘좀더’ 잘 돼 있다. 
 
·일 똑같이 길에 점자 블록이 설치돼 있지만 일본이 좀더 철저하다고 기사는 소개했다. 그런 격차는, 겉으로는 2000년 도입된 ‘고령자, 장애인의 공공교통기관을 이용한 이동의 원활화 촉진에 관한’이란 긴 이름의 법률 때문에 발생한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배려하는 마음의 차이에서 격차가 생겨났다”고 기사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런 예를 들었다.
 
한·일의 차이가 배려심 차이?
 
‘일본에도 엘리베이터 없는 전철역이 있다. 그런데 역의 계단 입구에 벨이 달려 있고 그걸 누르면 역무원들이 달려와 친절히 인사하며 휠체어를 번쩍 들어 이동시켜준다. 또 애기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면 모두들 웃으며 자리를 내어 준다. 시내버스도 장애자가 보이면 기꺼이 그리고 신속히 운전사가 내려서 탑승을 도와준다. 그리고 그런 걸 당연하다고 여긴다. 한국과 달리 마음에 여유가 있고 배려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배려심이, 부족한 장애인 시설을 보완해 준다.’
 
특별한 일본, 국제적인 한국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런데… 일본도 사람사는 사회다. 배려가 대단한 것 같지만 그저 그뿐이다. 그렇게 잘 웃고 친절하고 완벽하게 배려했다면 지난달 일본에서 화제가 된, 시각장애인 여성이 전철에 치어 죽는 사고가 일어났겠는가. 모든 일본인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충만했다면.
 
서비스 정신이 뛰어나다는 건 맞다. 일본 가게에서 길을 물으면 해당 장소까지 안내해 주는 친절과 배려를 경험한 한국 관광객이 적지 않다. 일본인은 자기가 받는 댓가에 맞게, 혹은 그 이상으로 해 주려는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 반면 우리는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친절한 경우가 있다. 한국 편의점에 갔더니 손님한테 인사도 안 하고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채팅을 하고 있더라며 불쾌한 방한기를 쓴 일본인이 많다. 
 
한국인은 부여받은 일만 하지 손님을 위한 일을 스스로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하는 일본인도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일본의 서비스 수준이 특별할 뿐이고, 우리의 일하는 태도가 국제표준에 맞을 뿐이다.
 
모든 일본인이 진지하거나 훌륭한 것도, 모든 한국인이 엉망인 것도 아니다.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작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양국 시각은 이렇게 비슷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 배려하듯 장애인도...
 
만원전철에 휠체어탄 사람이 무작정 밀고 들어오거나 시각장애인이 무턱대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권리를 주장하면 우리 중 상당수는 “장애인을 위해 빨리 시설을 개선했으면” 한다. 일본인 대부분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일본인은 “장애인도 비장애인을 좀 배려했으면”하고 조금 더 나간다. 물론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긴 한다.
 
일본인한테 ‘왜 좀더 나갔냐’고 물어봤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세상 살려면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그렇게 거칠게 나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라고 했다. 그뿐이다. 가만히, 차분히 들어 보면 이해가 되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와 별로 생각이 다르지도 않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우리가 다이내믹하게 “장애인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는 반면 그들은 온건하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얘기하는 것 정도다.
 
10년간이나 도와 줬을까
 
물론 한·일 간에 시각이 다른 부분도 있다. 10년 넘게 초등학생들의 도움을 받으며 버스 타고 시청까지 출근했던 시각장애 일본 공무원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이 사례에 대해 “역시 일본은 장애 시설이 잘 돼 있고, 일본인들은 남을 배려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 사례를 본 일본인들 반응은 “시각 장애인이 겸허하게 주위의 도움에 감사해 왔기 때문에 10여년 가까이 사람들 도움이 이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미묘하지만 근본적 차이는 아니다.
 
일본에도 한국에도 친절한 사람은 넘쳐난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산모와 할머니 대신 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한국과 일본 양쪽에 다 있다. 우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엘리베이터 타는데 그 우는 아이를 달래 주던 한국 아줌마 할머니들 때문에 감동받은 일본인 아주머니들도 많다. 일본사람이니까, 또는 한국사람이니까 이렇다 저렇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미화하지도 비난도 말자
 
장애인 문제 하나에서도 한·일 간에는 닮은 점이 많고, 미묘하게 다른 점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차이다.
 
한때 우리가 북한 사람을 뿔난 도깨비로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본에 대해서도 얼마전까지 그랬다. 이제는 시간도 지났으니 서로를 상식적으로 보면 어떨까. 보통사람으로 보고 미화하지도 말자. 
 
일본 사람이 분명 우리와 미묘하게 다르지만 죽창가 부를 정도는 아니다. 여유를 갖고 보면 그 다름이란 것이 이해할 만한 다름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람 사귈 때 가장 큰 문제는 상대를 화성에서 온 외계인쯤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아닐까.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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