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영국과 일본의 ‘애증 120년’과 한·일관계

결별과 배신 거듭하며 서로 구렁텅이로 몰아

러·중 막으려고 후쿠시마 팝콘 먹으며 재결합

韓·日도 이용가치 주고받는 ‘用日’로 갈 수밖에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25 10:55:10

 
▲홍찬식 언론인·칼럼니스트
 영국과 일본 사이에 영일동맹이 다시 성사된 것이 눈길을 끈다. 최근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런던에서 만나 ‘원활화 협정’을 체결했다. 
 
두 나라 군대가 상대국에 입국할 때 비자를 면제해 주고 무기와 탄약도 반입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의 군사동맹이다. 1902년 첫 영일동맹이 맺어진 것으로부터 계산하면 120년 만의 동맹 부활이다.
 
이번 만남에서 두 정상은 후쿠시마 산(産) 팝콘을 같이 먹어가며 새로운 밀월 관계를 과시했지만 지난 세월 두 나라의 관계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만나서 뭉쳤다가 다시 갈라지고 끝내 적(敵)이 되어 싸웠다. 그 과정은 국가 간 외교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한 편의 드라마다.
 
먼저 드라마의 제1막. 소제목을 붙이자면 ‘짝사랑’이다. 영국과 일본은 여건이나 환경이 유사하다. 세계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지리적으로 닮아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섬나라 영국은 유럽 대륙에 인접해 있고, 또 다른 섬나라 일본은 동아시아 대륙에 바짝 붙어 있다. 거리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가 33km, 일본과 한국은 49km. 육지와 적당히 떨어져 있어 독자성을 견지하기 쉬운 땅이다.
 
일본이 개국에 나선 19세기 후반에 세계 최고의 문명국은 영국이었고 가장 부자인 나라도 영국이었다. 지정학적 유사성, 같은 군주국인 점도 일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본이 근대화의 롤 모델로 영국을 콕 찍은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이때부터 ‘영국 배우기’가 시작된다. 일이 잘 풀리자 스스로 ‘동아시아의 영국’ ‘제2의 영국’이라고 내세웠다.
 
다음은 제2막, 소제목은 ‘동행’이다. 1902년 1월 1차 영일동맹이 체결된다. 깜짝 뉴스였다. 일본이 어디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유럽인이 많았다. 이때 영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동쪽에서 곰처럼 우뚝 버티고 있는 러시아였다. 큰 땅덩어리를 바탕으로 군사력 경제력에서 위협적인 존재였다. 영국은 1885년 조선의 남쪽 거문도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러시아의 확장을 견제한 적도 있었다. 한편 일본은 한반도를 놓고 어차피 러시아와의 일전(一戰)을 피할 수 없었다. 같은 적을 둔 두 나라가 손을 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선망의 눈초리로 영국을 바라보던 일본인들은 동맹 체결 소식에 흥분했다. 동양의 약소국가가 서양의 강대국과 동맹을 체결했다는 것에 거의 모든 사람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받았다. 도쿄 사람들은 영국 국기를 집 앞에 내다 걸었다.(당시 와세다대 학생이었던 소설가 우부카타 토시로의 회상)
 
·일동맹의 효과는 1904년 러·일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컸다. 일본은 전쟁 비용이 없어 런던에서 거액의 공채를 발행해야 했으나 성사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영·일동맹으로 영국이 보증을 선 꼴이 되어 위기를 넘긴다. 전쟁의 분기점이 된 러일전쟁의 ‘동해 해전’에서 러시아함대는 영국이 지배하는 수에즈 운하로 가지 못해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가야 했다. 가는 도중에도 영국은 러시아 함대를 끈질기게 괴롭혀 진을 뺐다. 결과는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러시아 함대의 전멸이었다.
 
·일동맹은 당초 상대국이 공격당했을 때 지원하는 ‘방어동맹’으로 출발했으나 러·일전쟁이 진행 중인 1905년 공격과 방어 모두에서 지원하는 ‘공수동맹’으로 확장됐다. 러·일전쟁이 끝나자 조선은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 여기까지가 영·일동맹의 ‘꽃피는 봄날’이다.
 
제3막의 소제목은 ‘파경’이다. 사이가 틀어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서로의 국가 이익이 충돌했다. 형식적으로는 영국이 동맹국으로서 일본에게 1차대전 참전을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본이 더 적극적이었다. 목표는 중국과 태평양에서 독일이 확보하고 있던 이권이었다. 
 
일본은 산동반도 이외에 사이판이 포함된 남양군도를 노렸다. 하지만 일본의 세력 확대는 역시 필리핀 등을 차지하며 서태평양을 탐냈던 미국을 자극했다. 미국은 특수 관계인 영국을 채근해 1923년 영·일동맹을 종료시킨다. 영국도 중국에서 일본 세력이 커지는 게 싫었다.
 
제4막은 ‘싸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이 영국과 전쟁 중인 독일 측에 가담하자 두 나라는 적대국으로 변했다. 이 시기의 하이라이트는 1941년 12월 25일 일본의 영국 령(領) 홍콩 점령이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일본은 홍콩 이외에 말라야(말레이반도에 있던 영국 식민지)도 점령했다. 영국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이 사건은 ‘대영제국 해체’의 기폭제가 됐다. 일본도 미국 영국 등의 반격으로 파멸로 치달았다. 한때의 동맹국이 서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영·일동맹의 복원은 세계 질서의 격변을 상징한다. 미·중 갈등,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혼돈 속에서 각자 ‘보험’ 상대를 찾아나서는 새로운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과 일본을 다시 손잡게 만든 ‘공동의 적’이 20세기 초처럼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점에서 묘한 기시감을 준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 한국과 일본을 한 세트로 묶어 방문한 것은 지리적 접근성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과의 공동성명 등에서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에서 미국의 본심이 드러난다. 
 
미국은 전부터 동아시아 전략에서 한국 미국 일본의 삼각 체제를 대(大)전제로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구상은 탈 난지 오래다. 삼각대에서 한 축에 이상이 발생하면 제대로 설 수 없다. 윤석열정부 출범으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미국의 조바심이 역력하다.
 
·일 관계는 너무 망가져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상태다. 새로 들어선 윤 정부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영국과 일본의 지난 120년이 잘 보여 주듯이 외교는 내부적으로 서로를 이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해가 어긋나면 동맹이 갈라서는 것도 순간이다. 한·일 관계도 ‘협력’이니 ‘우호’니 하는 비현실적인 말들은 접어두고 철저하게 서로의 이용 가치를 주고받는 ‘용일(用日)’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최근 국제 정세의 급변으로 경제와 안보 등 ‘거래’할 품목이 늘어났다는 게 그나마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후속기사원해요
    0

  • 화나요
    5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K리그1' 1위를 유지하며 우승을 향해 가고 있는 울산현대의 '홍명보' 감독이 사는 동네의 명사들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설준희
캐시카우
홍명보
울산현대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모두 위한 하나 아닌 ‘하나 위한 모두’의 사회 돼야죠”
열정적인 해설·논평으로 이름난 자유주의 경제...

“톡톡 튀는 클래식 콘서트… 색다른 매력 전파하죠”
클래식 음악을 편안한 친구로 만드는 사람들

미세먼지 (2022-07-01 10:00 기준)

  • 서울
  •  
(양호 : 38)
  • 부산
  •  
(최고 : 15)
  • 대구
  •  
(좋음 : 21)
  • 인천
  •  
(좋음 : 26)
  • 광주
  •  
(좋음 : 29)
  • 대전
  •  
(보통 :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