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소리는 연주자의 신체조건과 표현방법에 따라 모두 다르게 연주된다. 목소리가 악기인 성악가와 가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건반악기인 피아노 소리도 누가 연주하는지에 따라 소리의 크기와 질감, 음색이 달라진다. 손가락이 건반을 쓸고, 누르고, 때리고, 어루만지는 정도와 몸의 제스처, 건반에 싣는 몸의 무게에 따라 소리가 달라질 수 있는 조건은 무한하다.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연주자의 대략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글에서 글쓴이의 성향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연주자는 무대에서 무의식적으로 보여 주는 음악적 표현과 제스처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
공연을 준비할 때 가장 고민해야 하는 것은 프로그램 기획이다. 전체 프로그램의 주제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 고전·낭만·근현대곡을 골고루 보여줄지, 특정 작곡가의 곡으로 구성할지, 소나타·즉흥곡·랩소디·왈츠 같은 특정 형식을 주제로 연주할지 큰 맥락부터 잡아야 한다. 그리고 템포·리듬·박자·분위기에 따라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며 곡을 정한다.
특히, 독주회에서는 혼자서 무대를 한 시간 이상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몰입감 있는 연주를 위해서는 곡의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빠른 곡을 연주했다면 조금 느린 곡으로, 장중하고 차분한 곡을 연주했다면 밝고 신나는 곡으로 분위기를 바꾸며 연주한다.
연주 후반으로 갈수록 연주자의 체력이 소진되지 않게 에너지를 나누어 쓸 필요가 있다. 첫 곡은 길고 빠른 것보다 짧은 에피소드처럼 스카를랏티 소나타 같은 곡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혹시라도 늦게 도착한 관객들이 공연장 밖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연주 준비 과정은 끊임없는 연습과 반복이다. 아무리 연습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는 그냥 손을 놓는 것이 현명하다. 다른 부분을 연습하거나 연습과는 상관 없는 일을 해도 좋다. 시간이 지나서 여유를 되찾고 어려웠던 부분을 다시 연주하면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집착을 놓으면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각자 갖고 있는 독창성과 고유성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다. 연주자가 프로그램을 기획하듯 자기만의 특색이 드러나도록 삶을 기획해야 한다.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자신을 지치게 하지 말고 의도된 휴식을 찾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해 열정을 다했지만 원하는 목표에 다다르지 않거나 자꾸 실패한다면 잠시 숨을 고를 때다.
삶에도 리듬이 있다. 연주자가 프로그램의 균형을 조절하면서 기획을 하듯 삶의 완급을 조절하면 어려움을 헤쳐나갈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인터미션이 있는 음악회와 같이 휴식과 여유가 있는 인생을 기획한다면 삶 속에서 새로운 열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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