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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문학예술산책

세자르영화제 트로피 만든 세자르 발다시니를 아시나요

세자르의 유년기 추억 가득한 곳 佛 마르세유 벨 드 메

다양한 문화와 빼어난 자연이 어우러진 최고의 관광지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6-30 09:35:27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영화를 발명한 건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다. 그래서일까, 프랑스인의 영화 사랑은 유별나다. 영화를 주제로 각종 축제를 만들고 최고의 단장을 한 영화인들이 등장해 잔치를 벌인다. 대표적인 것이 칸 영화제다. 칸은 우리 배우들과 감독들이 해마다 참가해 매우 친숙해졌다. 특히 올해는 배우 송강호 씨가 남우주연상을 타 화제가 됐다.
 
이 밖에도 프랑스에는 여러 영화 축제가 있다. 할리우드의 명배우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 도빌 축제도 그중 하나다. 매년 여름 노르망디 도빌에 미국의 영화 스타들이 모여 해변을 왁자지껄하게 만든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제 중 가장 오래되고 으뜸인 것은 단연 세자르(Cesar)다. 이 영화제는 프랑스 영화인들의 잔치지만 칸 영화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세자르는 칸이나 도빌 축제처럼 지역 이름을 딴 것이 아니어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세자르 트로피에서 기인한 세자르상
 
▲ 세자르상 트로피. [위키피디아]
  
세자르, 어디서 온 이름일까? 사실 이 이름은 영화와 큰 관계가 없다. 세자르상이 수여하는 트로피를 조각한 사람의 이름이다. 1975년 프랑스의 기자이자 제작자였던 조르주 크라벤은 미국의 오스카상에 대적할 상을 프랑스에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졌다. 이때 그는 친구인 세자르 발다시니에게 오브제를 고안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세자르는 금속을 압착해 트로피를 만들었다. 크라벤은 이 트로피에 세자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친구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고, Cesar가 Oscar의 운율을 닮아서였다.
 
하지만 세자르의 트로피는 처음에 비난을 면치 못했다. 필름 코일에 둘러싸인 남성의 실루엣은 너무 단순하고 진부했다. 세자르는 트로피를 다시 공들여 손질했고 이러한 비난은 곧 허공으로 사라졌다. 오히려 세자르 영화제는 세자르가 만든 트로피 덕에 오스카와는 달리 아르누보의 상징이 됐다. 이 유명한 3.6킬로의 주괴는 1977년 이후 더 이상 바뀌지 않고 오늘날까지 영화인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트로피는 높이 29센티, 바닥은 8센티로 윤을 낸 금속에 고색을 칠했다. 그 이유는 빛에 반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세자르 발다시니는 누구인가
 
로댕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유명한 천재 조각가 세자르. 그는 1921년 마르세유의 빈민 지역, 벨 드 메(Belle de Mai) 혁명의 거리에서 태어났다. 담배 제조공장이 크게 들어선 이곳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많아 거리에 나가면 이탈리아어가 사방에서 들린다. 세자르의 부모 역시 이탈리아 토스카니에서 온 이민자였다. 그들은 양조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어린 세자르는 호기심이 많고 공상을 좋아했으며 학교를 따분해 했다. 그는 나무조각·돌·점토·석고 등을 만지며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뭐든 그의 손에만 가면 마술처럼 멋진 물건이 됐다. 동생을 위해 통조림 깡통을 자동차로 만드는 등 눈에 띄게 재주가 많았다. 정식 미술공부는 14살 때 마르세유 고등미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이때 그는 콘테스트에 참가해 조각·데생·건축 상을 휩쓸어 3관왕이 됐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세자르는 고향을 떠나 파리로 왔다. 여기서 피카소를 만났고 특히 스페인 아티스트 파블로 가르갈로의 작품을 보고 메탈에 눈을 떴다. 물론 가난한 세자르에게는 그 당시 메탈이 지천에 깔려 있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조각 재료였던 것도 한 이유였다.
 
▲ 세자르의 엄지손가락(라데팡스). [위키피디아]
  
세자르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 서른 살 때다.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있는 날개가 달린 불가사의한 박쥐를 만들었는데 그게 히트를 쳤다. 이때부터 세계 곳곳에서 세자르의 작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유명한 엄지손가락 제작을 의뢰했다. 무려 6m나 되는 이 손가락은 지금까지 올림픽공원 만남의광장을 잘 지키고 있다. 세자르의 이 청동 엄지손가락은 본래 자신의 손가락을 카피해 45cm의 빨강 주조물로 만든 것이다. 이를 1965년 1m85cm로 진화시켰고, 이를 다시 6m로 키워 자신의 고향 마르세유 로터리와 서울 올림픽공원에 세웠다. 현재 프랑스 라데팡스 거리에 서 있는 것은 12m로 하늘을 찌를 듯하다.
 
세자르의 고향 마르세유, 신이 만든 최고의 도시
 
세자르의 눈부신 아이디어는 그가 성장한 마르세유의 벨 드 메와 관계가 깊다. 마르세유 3구에 있는 이곳은 19세기에 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아르메니아·마그렙·코모로인 등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곳이다. 이들은 졸리에트 항구가 건설되자 부두노동자로 취직했다. 
 
그 후 성냥공장·설탕정제공장·화물역이 생겨 이민자들은 더욱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독일 점령기에는 공산당 레지스탕스의 본거지였다. 이처럼 문화의 다양성과 저항정신이 꿈틀거리는 마르세유는 세자르 철학의 골격이 됐다.
 
▲ 마르세유 마조르 대성당.  [마르세유 문화관광청]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혼재된 마르세유라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건 자연경치다. 푸른 물결의 지중해, 사람을 포근하게 하는 온화한 날씨, 거기에 어우러진 본 메르와 파니에까지 이어지는 오밀조밀한 작은 만과 언덕, 독특한 매력의 마조르 대성당, 세잔이 애지중지했던 생 빅투아르 산과 사원, 역사가 스며 있는 거리의 포석들과 건축물, 수려한 섬들과 해산물까지. 신이 준 완벽한 관광지다. 
 
어느 한가한 시간에 이곳을 여행한다면 문화와 예술·자연·미식 모두를 함께 할 수 있다. 아직도 마르세유에 안 가 본 사람이 있다면 주저 말고 버킷리스트에 올리시길.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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