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전문가칼럼
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유현한 화면과 생기발랄 음악의 만남
'탱자나무' 화가 서달원 인사동서 개인전
‘미니멀의 극한’ 검정 화면에 붉은 점·직선
조명을 받은 화면 반응이 주는 내면의 울림
이재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05 09:12:26
▲ 이재언 미술평론가
 202283일 수요일. 인사동 더스타갤러리에서 개막한 디올 서달원 개인전. 다년간 탱자나무만을 찾아다니면서 탱자나무를 문인화풍으로 그렸던 그의 이번 신작은 전혀 다른 양식의 작업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강한 인상을 풍겼던 나무의 환영들이 종적을 감추고 검은 기하적 화면에 붉은 점이나 직선이 선명한, 그야말로 미니멀의 극한으로 치닫는 듯한 양식의 작업들을 최근 공개한 바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더 깊이 있는 퍼포먼스를 곁들이고 있어 화제다감각적인 붉은 점이나 직선들 외에는 단조로운 검정 화면이 이전의 작업 문맥과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조금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시각예술에서의 판단은 대개 수 초 내에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신작 앞에서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니멀 양식이 어제오늘의 것도 아닌 동시대 보편화된 양식이기에 그 자체로는 충분히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하지만 이전의 작업을 익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비약 이면의 여러 가지 동기들을 파악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추리되기 마련이다.
 
▲ 탱자울타리(천안향교), 130cm x 300cm, 종이에 먹, 2019. [사진 제공=필자]
 
특히 이전에 그렸던 탱자나무 연작들이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기 쇄신에 나섰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모험이다. 누구나 성공적인 양식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의욕과 열정에 불타 소위, 잘 나갈 때의 작업을 종료하고 새로운 작업을 과감하게 선보였다가 시장을 잃은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러한 위험을 모르지 않을 작가가 이렇게 파격적인 신작에 손댄 것은 외적인 배경보다 내면의 동기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 탱자의 가시와 새잎, 76cm x 142cm, 종이에 먹, 2021
 
일단 작가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던 탱자 연작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남부지방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탱자.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져서 노래에도 등장하곤 하는 나무. 과거 팔레스타인에서 예수에게 씌웠던 가시면류관을 연상케 하는 나무다. 작가는 그것들을 수묵으로 담백하게 그려내면서 독특한 미감을 발휘한다. 앙상한 가지와 가시만이 두드러지는 생울타리를 그리거나, 혹은 봄에 가시 밑으로 작지만 소담하게 피는 하얀 꽃을 소묘 삽화처럼 그리곤 했다. 그런가 하면 꽃향기를 멀리까지 전하려는 듯 여백에 바람결을 추상적으로 그리기도 한다. 과연 무엇이 작가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작가는 탱자나무에서 심미적인 면모들 이전에 우리의 혼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가 가지는 상징성이나 의미로 말하자면, 작가에게 탱자나무는 호국(護國)의 나무다.
 
▲ 담다-02, 133cm x 36.5cm, 종이에 먹, 2021
탱자나무는 우리 역사에서 불굴의 저항을 상징하는 나무다. 강화도에는 갑곶이나 사기리 등에 수령 400년이 넘는 나무들을 비롯해 많은 탱자나무들이 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심어진 때보다 훨씬 이전인 고려시대, 몽골의 추격을 막기 위해 강화도 천도 이후 성곽 주변 등에 울타리로 많이 식재되어 지금까지 생태가 이어지고 있다
 
날카롭고 긴 가시를 가진 나무로 생울타리를 했을 때 외적의 침입을 막는 용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준다는 벽사(辟邪)의 믿음이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지고 있던 터이다
 
그런 이유로 성곽이나 담장 주변에 심어졌고, 민간에서도 울타리로 많이 심어졌다. 귀신도 드나들지 못한다는 울타리가 유일하게 새의 출입과 서식을 허용하고 있다는 특이한 생태, 게다가 촘촘한 가지와 가시들의 밀도가 연출하는 미관 등, 풍류에 밝은 시인이나 묵객들이 이 울타리를 지나면서 적지 아니 노래한 바 있다.
 
그런 배경들이 동기가 되어 작가는 탱자나무를 찾아 주유하며, 화폭에 담기를 6. 보터닉 페인팅 같은 정밀한 그림부터 멀리서 본 풍경 그림까지, 특히 재현적인 양식부터 추상적 양식에까지 다양한 모습의 수묵 그림들을 통해 탱자나무에 서린 서사들을 함께 담아 왔던 것이다
 
그 사이 작가는 탱자나무 화가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그렇게 호국의 나무, 우리 혼이 서린 나무에 꽂혔던 작가가 파격이라면 파격인 변화를 시도하면서 선보인 '현현(玄玄)'. 탱자가 작가에게 필연이었던 것처럼 추상의 현현또한 내면의 강권에 이끌려 오랫동안 준비해 온 프로젝트다.
 
지극히 미니멀한 화면으로 이행해 간 작가에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음과 오묘함을 추구하게 하는 내면적 동기들이 있었다. 벽이나 바닥 같은 공간이든, 음의 세계든, 시간의 차원 등과의 상호작용에 오래 전부터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터다
 
어쩌면 이러한 의식이 기본으로 작용해야 마땅했을 일인데, 우리 미술은 지나치게 공간에만 집착을 해 온 것에 대한 성찰이 깔려 있다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그 어떤 주관성이나 감정적 요소도 배격할 필요를 언제나 인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근작의 정황들은 무언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결연한 미학적 입장의 표명으로 보인다.
 
▲ No.HH2022, 90cm x 181cm x 3cm, 종이에 먹, 분채, 2022
 
이전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한 아기자기하고 온화한 필선들이 사라지고 온통 검정의 색면들로 대체되어 있다. 무채색인 검정, 특히 먹의 유현함 속에서도 기운생동의 움직임이나 물과의 상호작용에서 얻어지는 발묵(潑墨)의 여운 같은 심미적 요소들을 배제한, 그야말로 기계적이다 싶은 도포 상태의 검정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작가의 현현연작과 마주하면서 묘한 감흥을 느낀 바가 있다. 무엇이든 블랙홀처럼 흡입해 버릴 것 같은 그 유현한 검정 화면도 사실은 환경의 변화에 상호작용 내지는 반응하면서 우리 내면에 울림을 준다는 사실이다. 조명을 받은 이 화면들이 반응을 하면서 그 때에야 비로소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고 있음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의 처럼 그의 현현은 벽에 걸고 빛을 주지 않았을 때는 그저 검정의 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빛에 반응하는 화면들(전시장 장면).
 
▲  서달원 작가.
 
작가는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전시를 ‘현현시청(玄玄視聽)’이라 명명하며 음의 세계라는 새로운 환경을 삽입, 부가하고 있다. 소리가 있는 상황에서 그의 화면은 더욱 깊고 오묘한 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촉촉하면서도 발랄한 감성의 고품격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는 음악밴드 카일리(Kyly)’ 공연으로 콜라보를 하는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다
 
이 밴드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보컬로 활동하고 있는 딸(서가연)과 많은 의견 교환과 교감을 통해 일찍부터 구축해 온 플랜임을 감안하면 그의 이번 신작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이벤트가 아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축적해 온 노하우의 토대 위에서 그려진 큰 그림으로 시작하고 있는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다. 8월 중 매주 토요일마다 공연이 있으니 참여를 권하고 싶다. 귀 호강하는 전시라니 기대 충만이다.
 
▲ 심장에서 피어나는 탱자. 의미심장한 혼이 담겨 있음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 이번 전시에서 협업공연하는 음악밴드 카일리가 세계적 기타 브랜드 펜더의 엔도저로 선정된 것을 알리는 언론 자료. [사진=사운드캣]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541(청담동) 세신빌딩 9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5일,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조정진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