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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잘못됐던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2)
피해구제법, 원료물질사업자와 정부 책임 동등 반영되게 개정되어야
조정위원회, 기업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 주도로 다시 추진되어야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07 10:45:32
▲ 이동호 변호사
필자는 지난달 10일자 본 지면 칼럼(‘시작부터 잘못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1’)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피해구제법’)이 별 다른 근거도 없이 원료물질 사업자의 책임 비율을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의 비율보다 고작 25%로 한정하고 책임의 한 주체인 정부도 빠져 버린 점에서 시작부터 잘못됐음을 지적한 바 있다. 잘못된 시작이 가습기살균제 사업자인 레킷벤키저(‘옥시’)와 애경산업(‘애경’)의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회 조정안 수용 거부로 이어졌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마침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년 기념 탐사보도에서 옥시를 강하게 비판했던 JTBC도 필자의 칼럼이 나간 직후인 8월16일 ‘옥시 뒤에 숨은 가습기살균제 국내 기업들, “미국이었다면 수십조원 배상”’이란 제목의 보도에서 원료물질 사업자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원료물질을 만든 SK케미칼 측은 비용을 더 부담할 의지나 새로운 안을 내놓지도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기업들도 조정이 다시 시작되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할 뿐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고 정부마저 개입하지 않겠다고 거리를 두면서 보상 논의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라는 것이다.
  
피해구제법이 오히려 피해구제에 걸림돌로 전락해 버린 셈인데 피해구제법의 잘못된 시작이 또 있어서 한 번 더 다뤄보고자 한다.
 
국민이 국가에 내야 하는 돈 중에 대표적인 것이 조세이다. 그런데 조세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돈에 ‘부담금’이라는 것이 있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해서 그 사업과 특별한 이해관계 있는 자에게 부과하는 돈이다. 이 돈도 조세처럼 강제 징수하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담금관리기본법’이라는 별도 법률이 있는데 우선 부담금이 설치되려면 이 법의 별표에 부담금으로 포함되어야만 가능하다. 예컨대 가장 최근에 설치된 부담금으로서 자원순환기본법상의 폐기물처분부담금이 있는데 이것도 부담금관리기본법 별표에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부담금관리기본법에 포함이 되면 그 부담금이 적정하게 운용될지를 기획재정부와 국회가 감시하게 된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3년마다 부담금 운용을 평가해서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폐지할지를 심사해 국회에 보고한다. 그래서 소관부처는 부담금을 신중하게 운용하고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피해구제법상의 피해구제분담금도 바로 이 부담금에 해당될 소지가 매우 컸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법안소위위원장이었던 당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2016년 11월에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안을 발의했을 때 피해구제분담금을 부담금에 포함시키는 부담금관리기본법 개정안도 같이 발의했었다.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2017. 1. 20. 자 체계자구검토보고서에도 피해구제분담금은 환경부장관이 가습기 피해의 구제 및 지원이라는 공익사업과 관련하여 부과·징수하는 부담금으로 볼 수 있으니 부담금관리기본법 별표에 포함되게 해서 기획재정부와 국회 통제를 받게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피해구제법이 통과하고 난 후에 부담금기본법을 담당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는 피해구제분담금은 부담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아 한정애 의원안을 폐기해 버렸다. 이 대목이 아주 뼈아픈데 한정애 의원이 부담금관리기본법 개정을 끝까지 챙기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피해구제분담금이 국회와 기획재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그후에 분담금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의혹 제기가 계속되었다. 이렇게 투명성 측면에서 논란이 생기다 보니 분담금 추가 징수의 당위성도 처음보다는 상실되지 않을까 우려도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기업과 피해자들 간에 조정이 추진되었다. 환경부의 발표에 따르면 기업들이 먼저 조정위원회 구성에 합의하고 환경부에 조정위원장 추천을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긴 어렵고 피해구제법 통과에 큰 역할을 했던 한정애 의원이 환경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환경부가 조정위원회 구성을 주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의지만큼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료물질 사업자와 정부의 책임이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들과 별 다른 소통도 없이 조정이 전격 추진되다 보니 피해자 단체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무엇보다 정부가 쏙 빠진 채 진행된 사적 조정은 사실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국 1250억원이나 되는 피해구제분담금이 피해자들에게 우선 지급되고 9000억원 상당의 조정금액도 제시되었지만 옥시와 애경이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 특히 이미 배상금 3000억원과 분담금 674억원을 냈다고 하는 옥시 입장에서 원료물질 사업자의 턱 없이 낮은 책임 비율 조정 없이 또 다시 거액의 조정금액을 선뜻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9000억원이나 되는 조정금의 분담을 법원 관여 없이 사적 조정으로 결정하자는 발상 자체가 처음부터 상당히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 분담금 추가징수와 조정위 재개 모두 어정쩡한 상태가 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배상 지연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책임은 결국 시작부터 잘못된 피해구제법을 제정한 국회가 져야 한다. 이제라도 여야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원료물질 사업자와 정부도 동등하게 책임지도록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조정을 다시 추진한다면 기업과 피해자 단체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중립적인 인사로 조정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고 책임 비율도 다시 정하고 사례 연구도 풍부히 해서 기업과 피해자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조정안을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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