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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빚’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빚은 잠시 보유한 것일 뿐 갚아야 할 재화라는 점에서 빚으로 얽히고설킨 경제는 아이러니컬하게 자본주의의 기본 메커니즘인 ‘순환고리 방정식’을 절묘하게 만들고 작동시켜 준다.
경제의 핵심 3주체인 국가, 기업, 개인은 모두 빚을 지고 있다. 그 빚의 근원은 재화의 순환 메커니즘에 있다. 보다 엄밀하게는 가상화폐(본원통화 이외의 신용)의 창조에 기반을 둔다. 본래 없는 가치에 가치를 붙인 사실상 가짜화폐를 유통시키다 보니 그 가상화폐를 사용하는 경제주체들은 모두가 빚쟁이가 되는 구조다.
따라서 빚은 엄밀히 경제라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혈액이고, 그 빚이 많아진다는 것은 새로운 혈액이 많아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우리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빚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증가돼야 한다는 궤변같지 않은 궤변이 실물경제에서 지극히 정상적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빚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그런데 경제전문가들과 국민들은 이를 비정상의 시각으로 우려스럽게 보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국민들이 진 가계부채는 총 1223조원에 달한다. 한마디로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가계부채 1000조원 위기설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가계부채 시한폭탄이 이미 재깍거리며 터질 날만 남았다는 우려가 크다. 여기에 국가부채는 중앙과 지방을 합해 497조원에 달할 뿐만 아니라 공무원연금 충당금까지 감안한 부채규모는 1117조원에 이르고 있다.
공무원연금 충당금을 빼고 가계와 국가부채만 감안해도 우리 국민 한 사람이 갚아야 할 채무가 약 3400만원이다. 4인 가족에서 가장만 돈을 번다고 가정했을 때 가구당 실질적으로 떠 앉고 있는 빚은 1억3600만원이다.
다시 원론적으로 보면 우리 국민들은 향후 돈을 벌어 가계흑자가 나도 가구당 1억원이 넘는 적지 않은 돈을 이 사회에 계속 내놓는(갚는) 방식으로 화폐를 순환시켜야 한다. 화폐의 순환 가능성이 더욱 활기를 띨 가능성이 높기에 빚은 경제활력에 탄력을 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그 ‘빚 창조’가 만들어 내는 경제활력의 요소가 날이 갈수록 작동이 더뎌지는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의 우려가 바로 이 점이다. 시중에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막상 돈은 돌지 않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 누구나 빚을 지고 있으면 화폐 순환고리가 잘 작동해야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렇지가 않다.
우리 경제당국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경제운용을 하고 있으니 ‘모럴 해저드’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빚 유동성만 증가시키고 막상 경제현장에서 필요한 화폐의 유동성이 경직되고 있다는 것은 빚이 가진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에서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빚은 본래 악마적 요소를 띠었지만 경제순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이 이를 가려주어 왔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지금 빚 본래의 음울한 악마적 요소가 점차 드러나는 심각한 예후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와 개인이 진 빚이 오히려 화폐의 유통을 가로막는 거대한 쓰나미로 오고 있다.
그 원인의 일단에는 빚을 너무 급격하게 팽창시킨 것에 있다. 지난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5년간 중앙·지방정부의 부채만 해도 61.3%가 폭발 증가했다. 이 기간 중 가계부채 또한 급속히 늘어나 증가율이 41.4%에 달했다.
신용창조라는 가상의 화폐가 늘어난 만큼 기업에서는 부가가치를 늘리는 투자가 동시에 늘어나야 화폐의 긍정적 선순환이 이뤄지지만 그 조차도 엇나갔다. 결국 부가가치는 정체된 상태에서 잔뜩 빚만 부풀려 놓았기 때문에 그 빚이 오히려 부가가치를 가로막는 암적 요인으로 닥치고 있는 중이다.
기업들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빚 위험 때문에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증상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운용 주체인 국가가 위험하고 소비주체인 가계마저 위험하다면 기업들은 당연히 움츠려 들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그 증상이 오래전부터 나타났음에도 경제당국은 빚을 늘리는데 주저함이 없는 ‘대책 없는 미봉책’에 혈안이 돼 왔다.
현재 기업들은 현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그 현금조차 국외로 빠져 나가는 ‘국부유출’이 심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기업들 대부분이 해외로 자금을 빼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최근 들어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방증이다. 부채비율이 준다는 것은 재무건전성이 좋아진다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작금의 상황은 수익이 나면 현금보유량을 늘리거나 재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들 자금들이 바로 국부유출되는 자금으로 제기된다.
한국경제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국내 주요 30대 그룹 전 계열사(금융부문 제외)들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83.3%였다. 이는 10년 전인 지난 2004년 103.1%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수치다. 더불어 이들 대기업들의 경제사건만 터지면 해외 곳간인 ‘페이퍼 컴퍼니’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경제당국은 이처럼 부작용이 속출하는 잘못된 빚 경제를 운용하는데 대한 감각이 무뎌진 것인지 도무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국가나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을 지도록 했다면 기업들의 투자활성화에 사활을 걸었어야 했지만 요란하게 소리만 냈지 무엇하나 제대로 투자를 끌어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도 솔직히 ‘하는 척’ 시늉만 냈다. 정부는 뒤늦게 전방위 규제혁파의 칼을 빼들었지만 그 조차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소위 ‘빚 망국론’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하나다. 빚을 줄이는 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빚을 줄이는 과정 속에서 전 국민들은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정부투자 예산을 줄이고 복지예산까지 대폭 깎아야 한다. 국가가 다이어트 하는데 따른 파문은 전 국민 각 가정에 속속들이 고통으로 파고들게 된다.
부동산과 주식이 폭락할 수 있는 등 보유한 자산들의 가치 역시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빚을 갚지 못한 파산자들이 속출할 상황도 맞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를 우리 국민들은 직시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지금 보이지 않는 ‘디플레이션 사태’로 진행 중이라는 것을 두 눈 크게 뜨고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폭발은 구제불능인 공황사태인 탓이다.
학계와 재계 일각에서 3~4년후로 예측되는 최악의 공황을 막으려면 국민 모두가 ‘가난으로의 추락’이라는 사지를 동시에 건너가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경제당국은 이를 애써 간과하고 있거나 무시하는 듯한 행태를 보인다.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정부는 그동안 경제를 살린다는 빚의 선순환 명분하에 국민 모두에게 무차별적인 빚 폭탄을 안겨주고, 그 몇 배의 빚을 국민들에게 또 안겼다. 천문학적 이자가 붙는 국가 빚도 종국에는 국민이 갚아야 하는 탓이다. 국가가 결국은 국민들을 상대로 고리채 장사를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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