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전문가칼럼
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상담은 필요한데 정신과는 가기 싫은 사람을 위한 조언
고해성사 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속 비밀·우울
백지 한 장 위에 펜으로 ‘~싶다’ 나열해 적어 보라
김성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23 09:35:20
 
▲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거리를 걸으며 빌딩 4층이나 5층을 유심히 보면 보인다. 가족 상담소·청소년 상담, 부부상담·인간관계 상담·공사랑 신경정신과 의원.... 빤히 쳐다보면서 지나다닌 지 벌써 열닷새다. 자꾸 시선이 가는데도 막상 발길을 하지 않는 건 왜일까? 내가 처한 상태가 아직 막바지는 아니라는 건가? 모르겠다.
 
이런 사람 의외로 많다. 정신과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싶긴 한데, 결행하지 못한다.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내가 이상한 건가 세상이 이상한 건가, 두리번거리면서 며칠, 구름 속 맑은 하늘처럼 쨍하는 기분으로 며칠, 친구하고 폭풍 수다를 떨었더니 가슴이 풀려서 며칠, 이렇게 주춤거린다. 이런 분을 최근에 직접 만나 본 경우만 해도 세 명이다.
 
지방 공기업 상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얼마 전 지하 3층에 있는 기관실 근무자로 발령이 났다. 물론 환풍 상태나 온도 따위가 적절하게 조절된 곳이긴 하다. 그에게 극심한 편두통과 우울감은 근무가 시작된 지 며칠 후부터 시작됐다. 
 
또 한 사람은 50대 초반 가정주부다. 처음에는 갱년기 우울증? 하다가 며칠이 지나면 깨끗이 사라진다. ‘이러다 말겠지’ 하고 모른 척했는데 며칠 전, 극단적 생각에 홀려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20대 후반 여성은 소위 일류 기업에 입사한 지 4년 3개월이다. 가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우울감 때문에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입사만 하면 ‘인생 쾌청’인 줄 알고 혼신의 힘을 다했던 나날이었다.
 
사람이 싫은데 사람이 너무 그립다
 
‘사피엔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등으로 알려진 유발 하라리는 ‘행복’을 삶의 특별 항목으로 분류할 일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행복감은 두뇌에서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될 때 느끼는 여러 정서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행복은 마치 소변이나 땀처럼 내·외부 조건이 갖춰졌을 때 경험하는 심리적 역동이다. 행복이든 슬픔이든 어떤 감정도 지속 가능한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위 세 사람은 행복은 고사하고 지금의 불안·두려움·수시로 침입하는 우울감만 해결되면 바랄 게 없다. 이런 기분이 우울감? 처음에는 골목 어귀에서 인상 나쁜 사람을 스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못 본 척하고 넘어갔더니 유사한 기분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나 자신조차 신뢰하기 어려운 건, 주변 사람들이 그런 기분을 부추기는 중재자 같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있나 하다가도, 그럴 거야! 하는 내면의 속살거림을 듣게 되면 급 우울해진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나의 내면을 모조리, 싹싹 긁어서 드러내보일 수 있을까. 저 상담소들, 저 정신과 병원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유행가 가사에도 있지 않은가.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실정이 이러한데 그들은 나의 얽히고설킨 내면에서 무슨 사연을 건져낼 수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 이 생각 자체도 우울증세 중 하나일까.
 
막상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만나면 더럭 겁이 나거나 못 본 척하게 된다. 나에게 익숙한 길·나에게 익숙한 생각·말... 저 병원이나 상담소는 턱없이 낯선 동네다. 의사는 10분쯤 요리조리 탐색의 눈빛을 날리다가 ‘아직은 초기인 것 같으니 일단, 3주 정도 이걸 복용하신 후 한 번 더 내원해 주세요’ 하는 정도 아니겠어? 
 
상담소에 가 보면 인생 상식이 저나 나나 오십보 백보 같은 상담원이 만사 초연한 표정으로 생글거리며 고개를 연방 주억거리는데, 이 사람이 과연 내 인생을 얼마나 이해하면서 주억거리는지 알 수 없어서 지레 짜증이 울컥거리곤 하겠지.
 
진퇴양난이다. 나는 보나마나 병원이고 상담소고 갈 위인이 아니다. 내 마음은 내가 안다. 내가 누구냐. 솔직히 말하면, 고해성사에서도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는 사람 아닌가. 당신은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무슨 생각인지, 온갖 분노와 악다구니들이 들끓는데 그 뚜껑을 열어젖히기 너무 두렵다.
 
우울은 이렇게 ‘진퇴양난’의 질곡에서 허우적거린다는 느낌 그 자체다. 이때 도움이 될 만한 수단이 있다. 지금 즉시 백지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를 준비하면 충분하다. 방해받지 않는 시공간 확보도 중요하다. 그런 다음 끄적이기 시작한다. 이왕이면 모든 끝말을 ‘~싶다’로 마치는 말을 써 보라. 자기 내면의 아우성·중얼거림·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었던 말들을 모두 적으면서 가급적이면 ‘싶다’라고 마친다.
 
여행가고 싶다. 욕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걷고 싶다. 누군가나 하루 종일 수다떨고 싶다. 이렇게 쓰는 것도 좋다. 하지만 당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생각·감정들이 이렇게 단순할까. 이것은 혼자서 쓰고, 혼자서 읽고, 감쪽같이 폐기처분할 백지에 불과하다. 더 구체적으로 쓰면 당신의 내면은 그만큼 풀어진다. ‘여행 가고 싶어’가 아니라 ‘다음 주 월요일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가고 싶다. 공항가는 차에서 애들한테 전화해야지. 엄마, 암스테르담 다녀온다. 그동안 집 잘 보고 있어라. 딱 이렇게 질러 버리고 싶다.’ 이왕이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서술해 보라. 뜻밖에도 큰 소득이 있을 수 있다. _()_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
좋아요
3
감동이에요
1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541(청담동) 세신빌딩 9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5일,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조정진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