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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126회> 당신의 진실
나는 아무래도 네가 내 딸 같아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27 09:40:00
저녁 약속 있는 거 아니지?”
 
미술관 주차장에 미경이 서 있었다. 얼굴엔 할 말이 가득 쌓여 보였지만,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미경은 말이 없었다.
 
선우야. 나는 내 딸, 찾을까 싶어, 이제는.”
 
룸으로 들어오자마자 무슨 폭탄을 날리듯 미경이 말했다. 선우는 채 자리에 앉기도 전이었다.
 
이모 딸? 예지 말고 이모한테 또 딸이 있었어요?”
 
미경은 뭔가 말을 하려다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뱉아 내듯이 말을 던졌다.
 
평생 가슴에 묻고 살려고 했는데, 나는 아무래도 네가 내 딸 같아.”
 
선우는 테이블에 세팅된 접시를 떨어뜨릴 뻔했다. 미경은 폭탄 같은 말을 하고는, 자신도 감당이 안 되는지 물병을 그대로 따서 벌컥벌컥 통을 비웠다.
 
내가 왜 이모 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호적상으로는 엄마가 맞지만.”
 
선우도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미경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미경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선 안 될 거란 생각뿐이었다.
 
나도 그날 아기를 낳았거든. 아니 하루 전이지만. 그리고 이제 35년이 지났으니까 말할 게. 나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날 밤, 별장에 계셨어. 나도 아기 낳고는 갈 데가 없어 별장으로 갔고.”
 
 
 
별장은 평창동에 있었다. 거기서 밤을 샌 소선이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다 잠수교에서 사고가 난 거라는 가정은 성립이 된다. 차가 반포동 방향으로 진행하다 사고가 난 거니까.
 
동네 병원서 아기를 낳고는, 병원비가 없어서 도망쳐 나와 별장으로 갔어. 내게 별장 열쇠가 있었거든. 그런데 거기에 나 선생님이 먼저 와 있었어. 그래서 난방도 안 되는 별채에서 아기랑 자고, 새벽에 바로 병원으로 갔었어. 아기가 심하게 열이 나서.”
 
이제까지 미경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옥죄고 있던 어딘가의 무엇이 풀어 헤쳐진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이모. 제가 알아듣게 좀 더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미경은 찻잔에 담겨온 차를 단숨에 마셨다.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나 선생님이 사고를 당해서 수술 중이었어. 사람들 눈에 띌까 봐 수술방 옆 유아침대에 아기를 눕혀놓고 숨어 있었는데, 나 선생님 아기인 줄 알고 간호사가 내 아기를 데려갔어. 놀라서 내가 나 선생님 아기를 안고 뛰어나가다 네 아빠를 만났고. 아빠는 그 애가 내 아이라고 생각하고 데려가 버렸지. 뭔가 말을 하고 어쩌고 할 사이가 없었어. 병원 사람들이 볼까 봐 내가 떳떳한 입장이 아니라서.”
 
아빠와는 오래전부터 만나던 사이셨네요?”
 
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내가 건넨 그 아이가 죽었다는 거야. 그럼 나소선 딸인 네가 내 딸인 거야.”
 
음식이 차려졌지만 젓가락조차 들 기운이 없었다. 둔기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뇌가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선우야. 우리 유전자 검사하자.”
 
 
[: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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