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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극장)의 경기 부진이 심각하다. 얼마 전 개봉한 ‘드림’은 ‘극한직업’으로 관객 1600만 명을 동원한 흥행감독 이병헌의 신작이어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극심한 불황에 빠진 극장가에 선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관객 동원 100만 명을 겨우 넘기는 참패로 끝났다. ‘드림’의 실패는 한국영화의 부진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영화관의 부진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올해 관객을 100만 명 이상 동원한 영화는 ‘아바타2’ 등 모두 8편. 흥행 규모 또한 참혹한 수준이다.
극장은 오랫동안 최고의 종합문화관이었다. 연극도 하고 영화도 상영했다. 가수가 리사이틀을 할 수 있는 곳도 극장이었고, 계몽 결의대회나 규탄대회 같은 것도 극장이 무대였다. 그야말로 가난한 시절의 안방 같은 존재였다. 자리를 깔면 잠잘 수 있는 침실이 되고, 자리를 걷어 내고 밥상을 들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을 수 있는 식당, 책을 펴면 공부방이 됐던 안방처럼 말이다. 요즘에야 웬만한 집이라면 식당·침실·거실·공부방을 각각 구분하지만 방 한 칸 또는 두 칸에 한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에는 안방이 곧 식당이고 거실이며 공부방이었다.
요즘은 지방의 중 ·소도시라 하더라도 문예회관이나 시민회관·군민회관·구민회관 등의 이름으로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설이 있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극장이 그 역할을 했다. ‘극장(theater)’이란 단어는 객석을 가리키는 ‘데아트론(theatron)’에서 유래했다. 연극도 하고 신에게 제사 지내며 술과 춤을 즐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극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0년대 초기. 서울 시내에 전차 시설 공사를 하던 한성전기회사가 공사에 동원했던 근로자를 위안하기 위해 동대문 근처의 발전소 마당에 가설한 것이 시초였다. 극장이라고는 하지만 천정도 벽도 없는 채로 영화만 상영할 수 있는 정도의 간이시설이었다. 의자도 없어 마당 여기저기에 앉아야 했고 마차를 개조한 특별석 몇 개가 놓여 있는 수준이었다. 오늘날의 ‘드라이브 인’ 극장을 연상할 수 있지만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 들어가는 것이어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워크 인’ 극장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나마의 시설도 당시로서는 구경거리가 될 신(新)문물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극장이 없었다. 사당패 공연이나 농악 같은 것을 하더라도 적당한 빈터를 찾아 자리를 펴면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대한제국 시절 신문물로 등장한 극장은 고정된 자리에서 시간표를 정해 놓고 일정한 스케줄에 따라 공연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낮이나 밤이나 상관이 없었고 비가 와도 걱정이 없었다. 1970년대까지 같은 풍경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극장의 역할은 영화 상영이 중심을 이루었다. 사당패 공연이나 쇼는 극장을 무대로 잡더라도 한시적인 공연이었다. ‘극장 간다’나 ‘극장 구경’이란 말은 ‘영화 보러 간다’는 뜻이었다.
1980년대부터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극장은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갖추게 되었고 프로그램도 영화 상영 만으로 짜여졌다. 종합 공간으로서의 영화와 공연을 감당하는 극장이 아니라 영화를 위주로 상영하는 영화관 시대가 된 것이다. 연극이나 기타의 공연은 연극 전용 극장이나 공연장·체육관·문화관 같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영화관과 극장은 의미를 달리하는 용어가 되었다. 영화관 수는 611개, 스크린 수는 3437개다. 영화관 수가 가장 많은 곳은 153 곳의 영화관과 893개 스크린을 가진 경기도다.
영화관 수는 늘었지만 관객은 가장 많았던 2019년의 연인원 2억6000만 명을 정점으로 2022년에는 1억128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객이 급감했던 2021년에 비해서는 86.4%(5228만 명) 증가했으나, 2019년과 비교하면 49.8%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2019년에는 1000만 관객 영화가 5편이나 나왔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할 정도로 호황을 누린 해였다. 하지만 2023년 4월 말 현재 누적 관객 수는 4156만 명 수준이다. 연간 집계가 아니어서 연말에 1억 명을 넘길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으나 전망은 밝지 않다.
관객이 줄어든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이 모이는 곳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진 데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스트리밍 관람의 일상화, 영화관에서 볼 만한 영화들이 줄어든 탓 등 여러 가지 복합된 현상을 원인으로 본다. 가정용 TV가 대형화되고 있는 현상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꼽힌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방식과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의 ‘화양연화’ 시절이 다시 오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에 대해서는 영화인조차 부정하지 않는다. 댓돌에 떨어진 오동잎 하나가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듯 2023년 한국영화의 부진은 영화의 몰락과 함께 영화관 쇠퇴의 징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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