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못가면 바깥서 ‘카텔란 노숙자’ 실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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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앞서 진행하는 ‘사전 예약’ 공개 즉시 마감
‘동훈과 준호’ 외 로비 입구 꼬마 자전거 볼 만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6-06 09:57:31

▲ 카텔란을 빼닮은 로봇이 자전거를 타고 나와 로비를 한 바퀴 돌고 있다. 로비 기둥에는 노숙자가 기대어 졸고 있다. 둘 다 카텔란의 작품이다. 임유이 기자

서울 리움 미술관에서 무료로 공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 우리’ 전시가 5개월째 진행 중이다. 1월31일 시작되어 7월16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를 관람하기는 쉽지 않다. 여간해서 기회가 오지 않는다.

카텔란이라는 우주적 명성에 무료 전시의 매력이 더해지니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2주 앞서 진행하는 사전 예약은 공개 즉시 마감된다. 기한 안에 관람 기회가 올지 미지수다. 관람객 중의 90%가 젊은 여성이다. MZ세대 사이에서는 이 전시회를 봐야 대화가 통할 정도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카텔란의 맛을 조금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대로 전시장 밖에 설치된 작품만으로 카텔란을 이야기해 보자.

▲ 미술관 입구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노숙자가 누워있다. 이 노숙자는 카텔란의 작품 ‘우리’의 일부다. 임유이 기자

먼저 리움미술관 권역에 들어서면 ‘우리’라는 주제가 우리를 맞이한다. 미술관 입구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노숙자가 누워 있다. 진짜 노숙자라면 미술관 입구를 떡하니 점유할 수 없겠지만 카텔란 작품으로서 노숙자는 ‘우리’의 일부다.

관람객 어린이가 노숙자의 옷깃에 손을 대자 직원이 이를 제지한다. 작품이기 때문이다. 진짜 노숙자였다면 아이의 엄마가 먼저 만지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작품 노숙자와 사람 노숙자는 어떻게 다른가. 남루한 외관만으로는 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다. 사실 진짜와 가짜라는 구분부터 애매하다. 진짜 노숙자라면 가짜 작품이고, 진짜 작품이라면 가짜 노숙자기 때문이다.

▲ 미술관 로비 곳곳에 앉아 있는 비둘기도 작품의 일부다. 카텔란은 이번 전시 주제인 'WE' 글자 위에도 비둘기를 배치했다. 임유이 기자

노숙자를 지나쳐 로비로 들어서면 또 한 사람의 노숙자와 만날 수 있다. 이 분이 그 유명한 ‘준호’다. 그렇다면 문 밖에 있는 사람은 ‘동훈’일 것이다. TV 뉴스에도 등장한 ‘동훈과 준호’는 카텔란이 자신의 1996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처음 미국 박물관에 이 한 쌍의 노숙자를 전시했을 때 박물관 직원이 모르고 폐기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전시 때는 시민의 전화로 구급차가 출동했다. 다행히 한국 전시 때는 몇몇 관람객이 작품 앞에 동전을 던져놓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훈과 준호는 조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떠올리게 한다. ‘호모 사케르’란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뜻으로 법의 보호망에서 배제된 존재를 뜻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죽은 존재다. 그는 세금을 내지 않지만 시민에게 제공되는 어떤 혜택도 입지 못한다.

▲ 전시장 내부에 말이 매달려 있다. '노베첸토'라는 작품이다. 표 없이는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밖의 '우리'는 말의 머리와 다리만 감상할 수 있을 뿐이다. 임유이 기자

노숙자는 호모 사케르의 대표적인 예다. 그는 지하철 역사처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아무 데도 없는 공간’에 존재한다. 미술관 입구 혹은 로비도 지하철 역사와 비슷한 공간이다. 이곳은 미술관 내부지만 작품의 전시 공간은 아니다. 이곳에 작품을 두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작품인지 아닌지 헷갈려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청소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고, 누군가는 사람으로 오해하여 구급차를 부른 것이다.

로비 곳곳에 설치된 비둘기 역시 작품의 일부다. 비둘기는 노숙자와 동일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도시의 구성원임에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세상에는 각자의 자리라는 게 있어서 그곳을 이탈하는 순간 국가 법망도 보호의 손을 놓고 만다. 그러나 그런 노숙자도 비둘기도 ‘우리’의 일원이라는 것을 카텔란은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