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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탈북민 신문 매뉴얼에 빠진 ‘5·18 조항’ 왜?
 
▲ 허겸 사회부장
자유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탈북에게 정보기관 요원과의 만남은 예고된 수순이자 일종의 통과의례다. 정보 요원이 탈북에게 묻는 항목을 ‘신문요항(訊問要項)’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묻는 항목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한 매뉴얼이다. 
 
만약 역사에 관심 있는 국민에게 일일 정보기관 요원이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도 △천안함이 북한의 기뢰에 의한 선제 공격이 맞는지 △연평해전 또는 연평 포격은 북한이 사전 계획했는지 △피랍 국군포로는 북한에서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 △자진 월북한 이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질문할지도 모른다. 
 
5·18에 관해 물을 수도 있다. △5·18 당시 북한 공작조가 남조선에 침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규모가 어느 정도라고 들었는지 △어떤 루트로 남파됐다고 들었는지 △어떻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계엄군의 소행으로 오인하도록 위장했다고 들었는지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새 정보기관의 신문요항에는 5·18, 더 나아가 한국 과거사에 북한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에 관한 항목 자체가 아예 없다고 한다. 사람들과 5·18에 북한이 개입했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 보면 흔히들 요즘 탈북민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데 북한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 소식이 묻힐 수 있겠냐고 한다. 일단 답을 먼저 제시하자면 정보기관에선 탈북민에게 그런 거 안 물어본다. 따라서 축적된 정보도 없다. 시민은 5·18 특별법에 묶여 발언을 못 하고 정보기관에선 매뉴얼에 들어 있지 않아 질문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터부시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보 소식통은 “정권 성향에 따라 신문요항이 달라졌는데 5·18에 관해 묻는 것 자체를 (요원들이) 부담스러워 한다”고 했다. 한 탈북민은 5·18에 관해 자기가 아는 것을 설명하려 했지만 정보 요원은 “여기서도 밖에서도 그 말은 하지 말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문재인정부에서 출범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비슷하다. 북한의 개입 여부를 조사하도록 지정된 과 소속의 모 조사관은 북한에 관한 증언을 고의로 묵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또 다른 조사관은 북한 개입 여부를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조사위를 박차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조사관은 “조사위가 답을 정해 놓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는 후문이다.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자는데 시작하기도 전부터 정답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 만약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1+1=2’를 규명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든다면 국민은 칭찬칠까 비난할까. 해답이 나와 있다면 진상을 조사할 이유는 없다. 답을 모르기 때문에 진상 조사를 하려는 거다. 
 
아직 예단할 수는 없지만 기자가 5·18을 취재하며 느끼는 솔직한 심정은 5·18에는 지울 수 없는, 부인할 수 없는 폭동의 흔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요컨대 1980년 이후 43년이 흐른 지금까지 격앙되고 분노한 시민이 스스로 무장한 뒤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을 향해 조직적으로 총격을 가한 사례가 과연 있었을까. 
 
기자가 경찰 취재팀장을 맡았던 2008년 광우병 시위 때도 현장에서 과격한 시위 양상이 전개됐지만 무기고를 탈취하고 군경의 총을 빼앗은 뒤 군경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는 말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이쯤 되면 5·18에서 드러난 행태가 범상치 않다고 의심하고 뒷배경을 확인하는 데 조사 역량을 결집했어야 한다. 
 
만약 북한의 개입이 진실이라고 해도 광주시민은 속은 것일 뿐 선량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거짓으로 점철된 0.1%의 가짜 유공자들을 모두 솎아 낸다고 해서 나머지 99.9%의 광주시민이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우리 이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만약 5·18의 진실이 폭동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폭동지휘부에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일 뿐 광주시민이 따스한 눈빛을 가진 평범한 우리네 이웃이라는 관점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 
 
5·18의 진실을 추적하는 건 간신히 아문 광주시민의 상처를 다시 도려내는 못할 짓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선량한 광주시민을 이용하고 오랜 세월 가스라이팅해 온 세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일일 수도 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호남 사람을 싫어 하거나 비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글을 쓰면서도 기자에겐 저어하는 마음이 없다. 
 
허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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