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65] 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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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밤, 슬픔의 침묵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8-31 06:30:10

애초에 영결식은 인화문 밖에서 거행할 예정이었다. 황태자 역시 궐문 밖에서 봉사(奉辭)하고 궐에 머물다가 반우할 때 성문 밖으로 나아가 지영하는 것으로 정했었다. 그러나 발인 때가 가까워지자 광무 황제는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황태자와 함께 능소까지 나아가 영결식을 거행하였다. 황후와 자신의 정리(情理)가 만고에 없던 것이며, 비통하고 애도하는 마음을 보일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는 황제의 강한 주장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전통적인 조선의 국장은 만 27개월이나 13개월 동안 여러 가지 절차가 있었는데 상례의 절차는 상주의 입장에 따라 진행되었다. 그외 조문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짐이 상례였다. 그러나 황후의 국장에는 각국 외교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황제와 황후와의 우정과 신뢰를 보여 주어 자연스레 외교의 장이 되기도 했다. 명성황후 국장을 맞아 각국 공사 및 영사들은 발인 당일 새벽 6시에 황제와 함께 인화문 밖에서 대여를 지송하는 데에 참여하였다.

오후 2시에는 국왕을 따라 산릉까지 와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재궁이 산릉에 올라갈 때 거행하는 제전에 참여하였다. 능에는 황제와 황태자가 머물 거처와 여러 채의 임시가옥이 만들어졌다. 황제가 거처하는 능상각과 외재궁을 안치하는 수도각, 임시 재실과 내인들의 거처와 수라소복방도 지었다. 또한 외국 공사와 영사가 묵을 임시가옥을 만들고 음식도 많이 장만하였다.

황후의 주치의였던 릴리아스 선생 또한 국장에 초청되었다. 릴리아스는 남편 언더우드 박사와 행렬의 끝에 합류했다. 헐버트 선생 부부도 함께였다.

“이제 황후를 보내 드리는군요.”

언더우드 박사가 침울하게 말했다.

“여보, 사실 나는 더 늦게 출발하고 싶었어요. 조용한 길 위에서 그분을 추억하고 애도하며 가고 싶었어요.”

릴리아스 선생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들은 모두 검은 상복 차림이었다.

“시신을 어찌 수습했는지…”

헐버트 선생이 말했다.

“황후마마의 몇 안 남은 유골이 재에 섞여 있었는데, 경험 많은 늙은 환관이 유골이 없는 부분은 석회를 넣어 보충하면서 염습을… 하였다고… 하더군요.”

슬픔으로 언더우드 박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들은 황후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묵묵히 행렬을 따랐다. 함께 지낸 크리스마스, 궁궐에서 스케이팅, ‘조선도 강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쓸쓸한 표정…

영구 행렬은 밤 8시가 다 되어 황실을 상징하는 붉은 등과 노란 등이 밝혀진 넓은 지역에 당도했다. 약 5킬로미터 가까이 등이 설치되었고 화려한 깃발들이 나부꼈다. 여기저기에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초겨울이지만 매우 추워서 군졸들이 불을 쬐고 있었다. 장례에 참여한 인원은 많았지만 모두 절도 있고 조용했으며 슬픔의 침묵으로 분위기는 고요했다.

릴리아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 별빛이 쏟아질 듯 총총했다. 수많은 별 중 어느 별에 승하한 황후가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장례를 왜 밤에 치르는지 알 것 같아요.”

릴리아스 선생이 남편에게 속삭였다.

언더우드 박사가 눈빛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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