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71]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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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께서 우리를 기뻐하셨을 텐데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08 06:30:20

원익은 오랜만에 집을 찾았다. 명성황후의 국장이 치러진 며칠 후 시위대 병사들에게 윤번제로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원익은 동료 병사 임준호와 함께였다. 그들은 마루 위에 누워 청명한 초겨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말이 많지만 폐하께서는 진심으로 황후 마마를 사랑하셨어.”

준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관할 때 폐하께서 하우판까지 내려가서 살펴보실 때 말일세, 올라오지 않으실까보아 가슴이 철렁했다네.”

원익이 조용하게 말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 땀이 밴다.

“자네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닐 거야. 민영환 대감의 표정도 새파랗게 질렸거든. 근처에 계셔서 똑똑히 보았다네.”

“황후께서 살아계신다면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셨을 텐데 말일세.”

“그날 그때 우리 시위대가 있었다면 황후께서 그리 무참하게 돌아가시지도 않았겠지.”

“폐하께서는 시위대를 6000 명까지 증설하려 하신다네. 러시아 교관들을 적어도 3년은 잡아두려 하시지. 그뿐인가, 병기공장을 세워 우리 손으로 신식 무기도 만들고자 하시지. 러시아 교관을 몇 명 초빙하기로 하셨는지 자네는 기억하나?”

“군악대 교사까지 합쳐서 160명 정도라고 알고 있어. 원익이, 자네 지난 5월의 사격 시범이 생각나나? 푸차타 대령의 구호에 맞추어 폐하가 지켜보시는 앞에서 총을 쏘는데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손에서 총이 자꾸 미끄러지더군. 땀이 범벅이 되어 말이야.”

준호가 그때를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나는 말이지… 5월 말 사열식 때 커다란 돌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네.”

원익이 한바탕 웃었다.

“폐하가 지켜보시는 사격과 열병식도 이제 추억이 되어 가는군. 그런데 자네, 요즘 러시아 장교들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은가?”

“베베르 공사가 이 땅을 떠나고 그들도 허전해졌을 거야.”

“아니, 내 말은 그 정도 이야기가 아니야. 일본공사가 시위대 조직에 대해서 계속 간섭을 하고 있다구. 몇몇 원로대신을 자극해서 러시아 군가 교관 초빙 고용을 반대하게 하고 있다네.”

“그러면 머지않아 우리 시위대가 일본놈 손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인가?”

원익이 화들짝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난 군대에서 나갈 거라네.”

“자네 제정신인가? 시위대 월급이 얼마인데 그래? 폐하께서 곧 월급을 올려주신다는 소문이 돌던걸?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겠지? 일본 놈들이 감히 러시아를 제치고 대한제국의 앞날에 참견하지는 못하겠지? 그러지 못하도록 우리가 폐하와 백성들을 지켜야 하겠지?”

원익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 자. 그만 고정하시고 여기 누워 하늘을 보세요. 저어기 춘향이 눈썹 같은 초승달이 보이네요.”

준호가 싱긋 웃으며 원익을 붙잡아 눕혔다.

“원익이 왔구나! 수고 많았다, 중전마마의 장례는 어떠했니?”

해주댁이 아들을 반겼다.

“순조롭게 잘 치루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크게 슬퍼하셔서 저희들도 힘들었어요.”

“가신 지 이태나 지나 국장으로 모실 수 있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임준호입니다.”

준호가 얼른 일어나 절을 올렸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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