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빛’ [173] 전주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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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은 저세상으로 갔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12 06:30:20

창수는 삼남 지방으로 가서 인천옥에서 함께 수감되었던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창수가 탈옥시켜준 조덕근을 찾아갔으나 집안 사람들은 창수를 피했다. 울적한 마음에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술을 마시다 보니 노잣돈은 다 떨어졌다. 창수는 고산림 선생의 소개로 함께 청나라에 갔었던 참빗장수 김형진을 찾아보았다. 둘이 함께 제천당으로 모아산으로 다니며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가 생각났다. 김형진의 고향인 남원에 가서 물어 보니 동네 사람들이 그가 동학에 가담하였다가 식구들을 데리고 도망하였다고 전해 주었다. 창수는 김형진의 매형을 찾아 전주읍에 갔다.

“저는 김 형과 같이 청나라에 갔던 김 아무개입니다. 혹시 김 형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김형진의 매형은 이름을 듣자 얼굴을 찡그렸다.

“김형진 말씀이오? 그는 나의 처남이지만 나한테 짐만 잔뜩 지우고 저세상으로 갔소.”

창수는 너무도 놀라 연유를 물었다. 그러나 김형진의 처남은 퉁명스럽게 대하고는 자리를 떠 버렸다. 창수는 슬픈 마음을 억누르며 전주 장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다가오는 웬 사내가 김형진과 꼭 닮은 것이 아닌가! 창수는 그에게 달려가 물었다.

“혹시 김형진이 아니오?”

그 사내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창수는 계속 다그쳤다.

“저는 김형진이 아닙니다. 그분은 제 형님입니다.”

“당신의 말과 행동이 형님과 똑같구려. 나는 황해도 해주에 사는 김창수라고 하오. 형님이 혹시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소?”

“형님이 살아 계실 때 말씀을 들었습니다. 돌아가실 때도 당신 말씀을 하셨지요.”

사내는 창수를 집으로 인도했다. 작은 집으로 들어서자 김형진의 어머니와 아내가 있었다. 사내가 창수를 소개하자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김형진이 죽은 지 19일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동학교도로 활동하다가 핍박을 받아 병을 얻어 죽었다고 하였다. 창수는 영전에 들어가 절하고 작별을 고했다. 몇 년 전 청나라 땅에 함께 들어가 나라를 구할 계책을 도모했던 김형진은 이제 죽고 없었다. 창수는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를 유람하고 충청도로 돌아와 계룡산 갑사에 도착했다. 가을이 깊어 가 감나무 숲에서는 감이 붉게 익어 땅에 떨어졌다. 절에서 점심을 먹다가 이 서방이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이는 40쯤 되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창수는 공손히 인사했다.

“저는 개성에서 태어나 자랐고 장사를 하다가 망해서 조선 팔도 유람에 나섰습니다. 1년간 타지를 다니다가 이제 고향으로 가는 중입니다.”

창수가 적당히 둘러댔다.

“나는 공주 사람 이 서방이라 하오. 세상 구경을 하니 어떻습디까?”

“젊어서 망한 처지에 즐거운 일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그나마 노자도 떨어졌고 이제 다시 마음잡고 돌아가려 합니다.”

“젊은이가 그만큼 세상 구경을 하였으면 나와 함께 마곡사에 가보면 어떻겠소? 나는 그곳을 구경하러 가는 중이라오.”

이 서방이 정답게 권유했다.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

“40리 정도 더 가면 된다오.”

창수는 어쩐지 마음이 끌려 그와 함께 마곡사로 향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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