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의 작가노트] 엔트로피를 넘어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11 06:30:30

옛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지혜로울까.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칭한 것. 생각할수록 절묘하다. 마흔이 되면 유혹에 강해진다. 이 말은 삿된 유혹에 잘 안 넘어간다는 뜻도 되지만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살던 대로 살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흔이 되면 나쁜 길로 빠질 일도 줄어들지만, 그만큼 행운을 얻을 기회도 줄어든다.

같은 맥락에서 나이 마흔에 이르러야 비로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간의 삶이 정의·품위·여유·너그러움·지성을 향해 왔다면 그 사람은 마흔에 이르러 그것을 정체성으로 갖게 된다. 품위와 지성을 갖춘 신사 숙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40년 세월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삶이 불의·저열함·조급함·반지성을 향했다면 마흔에 이르러 그는 그런 사람으로 고착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완성형의 저열한 불한당 협잡꾼이 되려면 40년은 묵어야 한다.

엔트로피는 물리학 용어지만 인생살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 엔트로피는 어떤 계의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낸다. 닫힌계에서 엔트로피는 일정하거나 증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일상에 대입하면, 체중을 관리하지 않으면 저절로 배가 나온다. 매일 청소를 하지 않으면 방이 저절로 지저분해진다. 때때로 조이지 않으면 나사는 저절로 풀린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무질서를 지향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수시로 체중조절을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기계의 나사를 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마흔에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수시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마흔이 넘어 자신을 돌아보니 이미 꼰대가 되어 있다! 이럴 때는 방법이 없는 걸까? 일단은 희망이 있다. 변화의 첫 번째 스텝은 자기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까지 이르는 게 가장 힘들다. 대부분은 자기 상태를 모르거나 안 뒤에도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란다’며 체념한다. 고치고 싶다면 노력하면 된다. 그동안 알던 지식과 버릇은 다 잊고 처음 태어난 것처럼 새로 쌓아가면 된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거듭난다’고 이야기한다.

순서대로 맞춰진 트럼프 카드 52장을 바닥에 휙 뿌리는 것은 쉽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주워서 다시 순서대로 맞추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임요희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