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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땅] 탈주범의 추억
박병헌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13 06:30:30
▲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병원 치료 중 달아난 김길수가 검거돼 경찰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지 얼마 안 된 1988년 10월의 조용한 토요일 오후였다.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던 미결수 25명 중 12명이 공주교도소로 이송 도중 호송 버스 안에서 교도관을 흉기로 위협하고 권총을 빼앗아 집단 탈주한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흉악범이 아닌 잡범들인 이들은 흩어져 서울로 잠입했다. 
 
당시 35세로 이들 중 최연장자인 지강헌 등 4명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게 ‘인질 숙박’을 자행하며 경찰의 검문망을 피해 다녔다. 전국에 갑호 비상령이 내려졌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탈주 9일째인 일요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어느 가정 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최후를 맞는다. 2명은 권총으로 자결했고, 1명은 집 밖으로 나가 목숨을 건졌다. 지강헌은 고등학생인 집 주인의 딸에게 팝그룹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 달라고 해서 들은 뒤 경찰특공대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인질극은 TV로 생중계돼 화제가 됐다. 훗날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홀리데이’로 이름 붙여진 이유다.
 
지강헌은 7차례에 걸쳐 현금·승용차 등 550여만 원어치를 훔친 게 전부였지만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 받았다. 보호감호제는 재범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복역 후 감호소에서 또 징역살이를 해야 하는 이중처벌로 지강헌의 경우 17년형을 선고받은 셈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는 막강한 권력으로 몇 백억 원의 횡령죄를 저질렀지만 재판부가 인정한 횡령액은 76억 원에 불과했고, 죄값은 징역 7년이었다. 이마저도 3년 정도 살다가 가석방된 사실에 불만을 품고 탈주했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었다. “돈 있는 사람은 죄가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죄가 있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유행시킨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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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강도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용됐다가 병원 치료 중 달아난 김길수가 63시간 만에 다시 검거된 일이 얼마 전에 있었다. 그간 신창원 등 탈주 사건이 숱했지만 지강헌 일당의 탈주극은 35년 전 일이지만 유독 생생하다. 전대미문의 탈주 사건 취재를 위해 9일간 고생스럽게 그들을 쫓으며 현장을 누볐기 때문일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그 외침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사법적 병폐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기 때문일까. 
박병헌 국제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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