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손흥민과 베컴의 오른발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스카이&땅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24 06:30:30

‘손흥민의 오른발’과 ‘베컴의 오른발’이 영국 의회 연단에 선 연설자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청중석을 빼곡히 채우며 앉아 있던 의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찰스 영국 국왕의 초청으로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회 연설 중에 있었던 일이다.

윤 대통령은 “영국이 비틀즈·퀸·해리포터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엔 BTS·블랙핑크·오징어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대목에서 의원들이 웃음으로 화답한 것이다.

무엇이 의원들의 웃음을 터지게 한 것일까? 그저 축구선수의 이름 뒤에 붙은 ‘오른발’이란 표현의 가벼운 장난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윤 대통령 연설 중 이 대목은 꽤 의미심장하다. 적어도 영국인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이 몇 번이고 찾아 보는 영화가 있다. 1990년에 첫 개봉됐던 미국영화 ‘나홀로 집에’ 시리즈와 2003년 영국영화 ‘러브 액츄얼리’가 그렇다.

앞에서 언급한 윤 대통령의 연설 대목은 사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영국 총리는 미국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을 향해 영국을 무시하지 말라며 자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부각시킨다.

극중 총리 역을 맡은 영국의 국민배우 휴 그랜트의 대사는 이렇다. “영국은 작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위대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처칠·비틀즈·숀 코너리·해리포터의 나라이고,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왼발도 있군요. 위협하는 친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닙니다. 힘에는 힘으로 대항해야 합니다. 이젠 저도 더욱 강해지려 합니다.”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 영국 총리는 토니 블레어였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감독이 의도적으로 영국인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통쾌한 대사를 영화에 넣었다는 후문이다.

윤 대통령의 연설은 영국인의 자긍심을 세워 주면서 그 옆에 한국의 저력을 나란히 놓고 있다.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은 지금 한국은 영국의 역동적 핵심 파트너로 성장했음을 행간을 통해 역설한 셈인데, 이 점이 영국 의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다. 박선옥 논설실장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