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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의 열사일침(烈士一鍼)] 세월호와 마지막 유서 “화랑유원지는 건들지 말라”
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23 06:31:10
 
▲ 정창옥 길위의학교 긍정의힘 단장
화랑농장. 안산시 화랑유원지는 6·25전쟁에 참전해 팔다리가 절단된 불구의 몸으로 처절하게 살다 간 상이용사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갈고리촌·깨진바리는 화랑농장의 멸칭으로 상이용사 유가족을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손목이 절단되어 갈고리를 끼우고 산다고 갈고리촌이라 업신여기던 곳, 발목이 전단되어 목발을 짚고 다니는 상이용사들을 깨진발이라 놀려대며 무시하던 곳, 국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운 결과 주민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상이용사들이 사는 거추장스러운 마을이었다.
 
화랑농장은 1986년 안산시가 시로 승격되면서 상이용사 유가족을 강제 이주시키고 난 다음 화랑유원지로 개명된다. 거대한 호수 옆에는 화정천이 흐르고 4호선 고잔역과 초지역이 있으며 동서남북 사방엔 고층아파트와 주택가가 즐비해 마치 미국 뉴욕시의 맨하탄 센트럴파크와 같다. 청계천이 흐르는 5000평 넘는 광화문광장의 40배 면적이라고 보면 된다. 그 중심에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상이용사를 기리는 충혼탑이 외롭게 서 있다.
 
그런데 2018년 세월호 유가족과 더불어민주당은 화랑유원지에 세월호납골당 건립을 확정하고 말았다. 축구장 3배 면적인 7000(광화문광장은 5000)에 단원고 희생자 250여 명만을 위한 세월호납골당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안산 하늘공원묘지에 있는 아이들의 유골을 다시 끄집어내겠다며.
 
세월호납골당이 무서운 것은 제2의 광주 망월동묘역처럼 수도권 2800만 명이 1시간 내에 접근할 수 있는 종북좌파의 성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주기 추모식이 끝나면 5월에 업체를 선정하고 10월에 착공한다. 결국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10년 동안 지역 경제가 망가져도 참고 견딘 안산 시민 등에 비수를 꽂고 만 것이다. 아이들을 두 번 죽인 것이다.
 
필자는 생각에 잠겼다. 불의한 세월호 떼법과 8년을 싸워 왔지만 결국 실패했다. 300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앞세운 무도한 행진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또다른 죽음밖엔 없다.
 
다음은 세월호납골당에 관한 나의 메모 내용이다.
 
 
 
 
 
 
 
# 2024416일 오후 3시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 10주기 추모식이 성대하게 열릴 것이다. 일주일 전 22대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국회의원들이 대거 몰려올 테지. 그 장면을 KBS·MBC·SBS 등 모든 공중파·지상파 방송과 수많은 유튜브가 생중계할 것이다.
 
3시 정각.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부르며 침묵이 흐를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할복할 것이다. 추모식장은 한순간 얼어붙을 것이고 슬픔의 기억 공간에 또다른 죽음이 뿌려지며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분노의 기억이 추가될 것이다.
 
# 새벽 2.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슬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긍정의힘 기적의 콘서트를 통해 ! 단원의 아들딸들이여 제발 살아 돌아오라!’며 한 달 내내 개최한 추모 콘서트. 시민사회단체가 앞장서 수백 억 국민성금을 독려한 시민단체 활동. 수많은 청소년·청년과 함께 찾은 화랑유원지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그러나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5000만 국민도 울었던 슬픈 기억 속에서 세월호 유가족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슈퍼갑이 된다.
 
슬픔은 강요하는 것이 아닌데 세월호의 강요된 슬픔과 침묵이 서린 이 새벽,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인연을 함께 나눈 소중한 분들에게 편지를 쓴다. 전달받지 못할 유서다. “공정과 상식, 자유가 도륙된 대한민국. 이름모를 선구자들이 목숨으로 지킨 자유대한민국을 이 한 몸 할복으로 지킬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저 하늘의 별이 되겠습니다.”
 
잡념을 없애기 위해 하루 전부터 단식을 했다. ‘호국 영령들의 땅 화랑유원지에 세월호납골당이 웬말인가?’란 현수막을 미리 제작하고 길이 30짜리 칼을 준비해 백에 넣었다. 오전 내내 가두방송을 하며 도심 곳곳을 돌아다녔다. 경기경찰청의 모든 경찰은 비상근무로 돌입했고 필자가 탄 차량을 미행하듯 따라다녔다.
 
12, 은밀히 운전할 사람을 불러 식사하러 간다며 운전을 맡겼다. 경찰은 다행히 차를 따라갔다. 나는 주택가를 걸어 화랑유원지 북쪽으로 들어가 숲속에 은신했다. 오후 2시쯤 나와 경기도미술관 화장실에서 칼을 깨끗이 씻고 마지막 예행연습을 했다. 경기도미술관과 정부합동분향소는 상이용사들이 살던 움막촌 자리였다.
 
현수막을 펼친다 함성을 외친다 칼을 뽑아 높이 든다 무릎을 꿇고 배를 찌른다 칼로 찌르는 횟수는 3번이다. 운이 나빠 실패해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40분 전 추모식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나는 마스크를 쓰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20분 전, 추모식장이 술렁였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국회의원들이 대거 도착한 것이다. 10분 전. 앞으로 세월호 정책엔 변화가 생길 것이다. 죽음의 행진은 죽음으로 멈출 수 있다는 상상을 할 때쯤 정규준 청년교감이 단장님하며 불쑥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뒤이어 경찰과 사복형사들이 빙 둘러 내 주위를 에워쌌다. 형사 2명이 내 양옆으로 앉았다. 그 순간 나의 행동반경은 완전 차단되고 말았다.
 
형사 한 명이 귓속말로 말했다. “체포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가시죠.”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외쳤고, 320분경 현장에서 끌려나왔다. 할복 자살 시도는 미수에 그쳤고, 세월호 10주기 추모식은 가장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제 10월이면 세월호납골당(416생명안전공원)은 착공되어 2026년부터 종북좌파의 성지가 될 것이다. 진짜 끔찍한 상상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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