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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이 기자의 책캉내캉] 당나귀와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임택’의 ‘동키호택’
산티아고 800km 여정을 당나귀와 함께
한국어·영어 두 가지 버전으로 동시 출간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23 13:40:17
 
▲ 당나귀와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기 '동키호텍. 책이라는 신화
 
우연만큼 멋진 계기는 없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동키호택의 저자 임택은 우연히 동네 어린이도서관에 들렀다가 동화로 된 여행책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한번 동화책을 써 보리라 결심하고 모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등록한다.
 
30명 정원 중에 남자는 단 한 명. 심지어 환갑을 넘긴 어르신의 출현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6개월 수업을 받으면서 깨달은 것은 동화를 쓰는 여행작가는 힘들겠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의 세계관과 그의 세계관 사이의 갭이 너무 컸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갭을 메워 줄 무언가를 찾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 그는 그것을 찾는 데 성공했다.
 
사랑스러움과 가엾음의 속성 한 몸에
 
 
▲ 비에 젖어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호택과 임택. 책이라는 신화
 
당나귀는 동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당나귀 캐릭터도 다양하다. 동화에 나오는 당나귀는 보통 고집이 세거나 영리한 동물로 등장한다. 윤회를 믿는 네팔 사람들은 죽은 뒤 당나귀로 태어나지 않도록 기도한다고 한다. 인간과 살아가는 가축 중 가장 가혹한 삶을 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움과 가엾음을 모두 담고 있는 당나귀는 어쩌면 최고의 여행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당나귀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근교에 당나귀 목장이 있다고 해 무작정 찾아가서 만난 당나귀가 머리가 커다란 짱구였다. 짱구와 여주 강천길도 걷고 제주 올레길도 걸어 보았다. 하지만 이 당나귀라는 동물은 너무나 예민한 족속이었다. 계단을 오르거나 쇠구조물과 건너거나 뾰족한 돌길을 걷는 것은 생리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산티아고 순례단의 사진을 보게 되었고 그 가운데 당나귀가 끼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쾌재를 불렀다. 산티아고를 걷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짱구를 거기까지 데려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현지에서 당나귀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당나귀가 호택이다. 동키(donkey) 호텍! 그 이름은 우연히도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비슷했다.
 
카미노 또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길이다. 보통 프랑스의 생장에서 출발해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도착하는 경로를 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카미노 800km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칭송한다.
 
그 길 위에 그는 81일간 머물렀다. 코로나19에 걸렸던 열흘을 제외한 71일은 호택이와 함께였다. 애초의 목표는 45일 안에 여행을 마치는 것이었다. 기간이 두 배나 늘어난 것은 카미노 길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그와 호택이를 잡았기 때문이다.
 
우주 대스타 당나귀 호택이
 
▲ 호택이 있어 많은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책이라는 신화
 
여행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생과 닮았다. 만일 모든 일이 나의 계획대로 이뤄졌다면 여행은 단물 빠진 사탕수수와 다를 바 없다.”
 
처음에 그는 호택이를 그저 짐꾼 내지 머슴 정도로 생각했다. 목줄은 그를 통제하는 완벽한 도구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당나귀를 먼저 제압하지 못하면 거꾸로 당나귀를 메고 갈 일이 생길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여정의 절반을 걸었을 때 그는 목줄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당나귀가 사람을 우습게 여길 거라는 속설은 잘못된 것이었다.
 
메세타평원의 거센 바람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호택이의 목을 껴안는 것이었다. 호택 역시 그를 의지했다. 그가 잠깐이라도 안 보이면 울부짖으며 찾아다녔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기대는 듯했다.
 
호택의 존재는 그에게 선물이었다. 호택이 있어 많은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현지 언론이 그와 호택이를 취재해 갔고, 현지인이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했다. 그 모든 사람의 친절과 관심은 호택이가 있어 가능했다.
 
카미노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당나귀를 좋아했다. 당나귀만 보면 부로!’를 외치며 달려 나왔다. 부로는 스페인어로 당나귀를 뜻한다. 가게 주인은 손님을 버리고 달려 나왔고, 아이들은 장난감을 버려 두고 달려 나왔고, 어른은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 나왔다. 그들에게 당나귀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는 듯했다.
 
사실 카미노는 과거 무수한 당나귀가 오가던 길이었다. 당나귀는 이 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운송 수단으로 지금도 그곳에서는 택배 시스템을 동키 서비스라고 부른다. 어느덧 자동차라는 새로운 동키에 의해 진짜 동키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배경으로 호텍의 현현은 그들을 추억 속으로 데려가는 일이었고 전설 속으로 끌고 가는 일이었으며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당나귀의 미니멀한 삶
 
 
▲ 국내 최초로 구글 번역기가 역자로 이름을 올린 영문판 '동키호택'. 책이라는 신화
 
당나귀는 머리를 들고 잔다. 그러니 베개도 필요 없다. 당나귀는 삶에 필요한 물건이 한 개도 없다. 그저 몸뚱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비를 맞고 있지만 잠을 자는 데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다. 그가 지고 다니는 두 개의 가방에는 내게 필요한 물건뿐이다. 당나귀 걱정은 말고 네 걱정이나 하라던 아리츠의 말이 생각났다.”
 
미니멀리즘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당나귀의 심플한 삶에 그는 감명을 받는다. 온 들판이 당나귀의 식당이요 화장실이며 목욕탕이다. 든든하게 배만 부르다면 꾀 피우지 않고 걸으며 일정 시간 걸으면 에누리 없이 휴식을 취한다. 이보다 간단한 삶이 어디 있을까. 그의 말대로 당나귀에게는 우주를 아주 작고 단순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SNS를 확인하고 조회수에 신경을 쓰고 카톡에 답장을 보내는 일은 호택이에게 남의 일일 뿐이다.
 
어느 날 그는 노새 마을을 지나면서 당나귀도 순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레온의 한 수도원에서 동물 크리덴셜(인증서)을 받는다. 담당자 말로는 당나귀에게는 처음 발급하는 증명서라고 했다. 이전에도 많은 당나귀가 순례길에 동반했지만 그들은 짐꾼일 뿐이었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여행의 이유를 묻는다. 동반자로 인해 여행 기간은 두 배로 늘어났지만 호택이 아니었으면 누리지 못했을 다양한 순간과 만났다. 그것은 선물이었고 축복이었다. 누군가로 인해 행복의 시간이 늘어난다면 조금 더 오래 인생이라는 길바닥 위에 머물러도 좋은 것 아닌가.
 
이 책은 한국어판 영어판 두 가지 버전으로 출판되었다. 두 권이 한 세트다. 영어 버전의 경우 구글번역기가 번역자로 이름을 올린 첫 사례가 되었다. 이제 임택은 당초 목표였던 동화책 출간을 남겨 두고 있다. 동화책으로 만나는 호택은 또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 것인가.
 
▲ '유퀴즈 온 더 블록' 출연 후 조세호·유재석과 함께. 본인 제공
 
여행작가 임택은 김포공항의 활주로가 끝나는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마을버스를 타고 떠났던 677일간의 여행기 마을버스로 세계 여행출간 후 KBS1 ‘아침마당’ ‘유퀴즈 온 더 블록등에 출연했고 세바시’ ‘TED’ 강연에도 여러 번 섰다. ‘계획한 대로 여행하지 않고 상상한 대로 여행한다를 모토로 여행 그룹 코긱스(Co- Geeks·협력하는 괴짜)’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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