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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100여 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영화 ‘도토리’의 시사회가 5월1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 중구 대한극장 3층에서 열린다.
우리 사회의 탈북인 수는 3만4000여 명에 달한다. 대부분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한 후 중국에서 남한으로 이동한 이들이다. 북한 정권과 유착 관계에 있는 중국은 탈북인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중국은 매달 40~100명, 많게는 600명에 이르는 탈북인을 북한으로 강제로 되돌려 보내고 있다.
강제북송 경험 영화화
영화 ‘도토리’는 이처럼 강제로 북한에 되돌려 보내는 이들, 강제 북송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북한 정권은 북한 이탈 행위를 사형에까지 처할 수 있는 ‘조국 반역죄’로 규정하는 만큼 이들이 당하는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영화의 연출부터 각본·촬영·편집·제작까지 1인 5역을 해낸 허영철 감독은 직접 강제 북송당했던 경험을 십분 살려 ‘도토리’를 완성했다.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서 강제 북송을 당하게 됐다. 1년 4개월의 수감 기간 별의별 고문을 다 당했다. 무자비하게 때리고 밟는 구타 행위는 다반사고 여자들은 펌프 기합(앉았다 일어서기) 1000개를, 남자들은 2000개를 받는다.”
그는 이번 촬영을 위해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북한 감옥’을 재현하기도 했다.
“크기와 구조 모두 북한의 감옥 그대로다. 탈북인이 많이 잡혀 들어올 때는 사람으로 꽉 차 누워서 잘 수도 없다. 빼곡히 낀 채 앉아서 자야 한다. 손바닥만 한 감옥에 30명이 들어갈 때도 있다.”
남한서는 ‘별미’ 북한서는 ‘식량’
‘도토리’라는 영화 제목에는 70년에 걸친 민족적 수난과 남북한의 현 상황이 압축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식량을 수탈당한 우리 백성은 도토리로 묵을 쒀 끼니를 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실향민들은 산에서 도토리를 긁어다 식량으로 삼았다. 현재 남한에서 도토리는 별미로 혹은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식량원이다.”
2002년 아내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온 허영철 감독은 정착 이후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영화에 푹 빠져 촬영과 연출·시나리오 작법을 배웠다. 그리고 2005년 단편 다큐 ‘뿌리’로 부산시네마영화제에서 창작상을 받으면서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제2의 인생을 남한에서 시작한 셈이다.
그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사실적인 연출을 위해 소품 하나하나에까지 공을 들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집기 대부분은 탈북인들이 북한에서 쓰던 물건들이다.
“영화 출연자의 90%가 태어나서 연기라곤 해본 적 없는 탈북인들이다. 다들 북한의 인권 실태를 알리기 위해 기꺼이 촬영에 임했다. 영화 제작을 앞두고 이들이 얼마나 자기 역할을 소화해 줄지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연기를 썩 잘하더라. 직접 겪은 일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배역을 소화했다.”
이번 영화에는 탈북인 출신 방송인 이순실 씨도 참여한다. 꽃제비 엄마 역할이다. 이순실 씨 역시 꽃제비 생활 10년에 여덟 차례의 강제 북송 경험이 있다. 누구보다 수용소 생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다.
허 감독의 진짜 어려움은 다른 데 있었다. 한 끼 식사에만 100만 원이 넘게 들어가다 보니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원래 이 영화는 무보수로 참여하는 탈북민과 십시일반으로 각출한 성금으로 시작되었다.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4000만 원에 이르기까지 탈북인의 성의가 모였지만 운영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영화 후반 작업에 이르러 기업 후원이 이어진 것이다. ‘도토리’가 언론을 통해 소개된 덕이 컸다.
해외서 시사회 문의 빗발쳐
“지난해 12월 공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강제 북송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인류의 문제이다 보니 국제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됐다. 미국 하원에서 영화가 완성되면 시사회를 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체코대사관에서도 상영 제의가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청와대에서도 관심을 내비쳤다. 소박하게 시작한 일인데 생각보다 큰 화제몰이를 하고 보니 허 감독의 어깨도 그만큼 무거웠다. 몇 개월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이번에 개봉되는 ‘도토리’는 1부다. 허 감독은 2부도 제작 중에 있다.
“이미 30%가량 촬영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실향민 1세대와 탈북 이야기를 함께 담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북한의 인권 문제가 시급하다는 생각에 이번 편을 먼저 내보내고 실향민 이야기는 2부로 제작하게 됐다.”
2부는 손녀와 할머니가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 남한 사회에 이르기까지 실향민의 삶을 조명한다. 한국 항공기 협회 협조로 전투기가 등장하며 걸그룹 ‘파스텔 걸스’도 출연한다. 이야기만 들어도 2부의 규모가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열악한 환경에도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허 감독은 울분에 찬 표정을 지었다.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수용소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이 참상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남한에 정착해 20년 넘게 살아 온 소감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도 나름 문제를 안고 있지만 탈북인 입장에서 한국처럼 살기 좋은 곳은 없다. 인터넷 인프라와 의료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것에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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