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㉝ 44년 이어온 논란 ‘실체 확인 불가’ 결론
[단독: 5·18 진실 찾기] <33> 전일빌딩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
기총소사 피해자·증거 없는데 의혹만 부풀려 진실 왜곡
“조비오 주장 신빙성 인정 어렵다” 조사위 공문서 수록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16 00:05:00
▲ 문재인정부가 만들어 4년간 500억 원 이상의 국민 혈세를 들인 5·18 정부 조사위원회가 끝내 ‘헬기 기총사격’ 규명에 실패했다. 조사위는 부실한 근거와 추정으로 진상이 규명됐다고 무리수를 던졌지만 ‘이런 식으로 결론 내려선 곤란하다’는 조사위 내부 반발에 부딪힌 결과, 사실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 헬기에 기관총 거치대를 설치하기 위해선 이륙 전부터 헬기 문짝을 분리해야 한다는 항공 관계자의 지적이 있다.(작은 칼라 사진·매일신문 온라인 캡처). 당시 문을 연 헬기의 모습이 목격됐다거나 사진으로 촬영된 전례가 없는 데도 전일빌딩 전시관에는 문을 개방한 헬기 모형이 일반에 공개돼 있다. 조사위는 시민군이 헬기에 총을 쏜 사건에 대해선 규명조차 안 해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그래픽©스카이데일리
 
1980년 5·18 당시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現 전일빌딩245) 헬기 사격은 증거가 없다고 정부 일부 조사위원들이 결론 내렸다. 
 
이로써 조비오 신부(본명 조철현·2016년 사망) 등이 1989년 국회 청문회에서 처음 공개 증언하면서 촉발된 ‘기총소사’ 논란은 35년 만에 실체 확인이 불가능한 일방의 주장인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동안 전일빌딩 최고층인 10층(옛 전일방송) 천장과 중앙 기둥에 있는 총탄 자국(탄흔)은 계엄군 헬기가 쏜 ‘기총소사’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속됐고, 결과적으로 계엄군의 무자비한 잔혹성을 집중 부각함으로써 국민을 호도하고 군의 사기와 명예를 떨어뜨렸다는 비난이 있었다. 
 
실제 헬기 기관총에 맞아 죽은 피해자가 단 한 명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헬기 사격 이슈는 신문과 방송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며 ‘계엄군은 악마’라는 주장과 맞물린 채 확대 재생산됐다. 도리어 시위대가 군헬기를 쏜 사건은 규명조차 안됐다. 군 3급기밀 문건에는 1980년 5월21일 오후 2시45분 전남도청, 3시50분 광주 국군통합병원 상공에서 각각 UH-1H 군 헬기가 지상으로부터 사격을 받고 6개 탄흔이 발생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정부가 구성한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는 2018년 최종 보고서에서 ‘분명한 사실은 충정작전 시 1980년 5월27일 많은 무장 헬기가 작전에 참가했다는 것’이라고 언급한 뒤 어떠한 물증과 가담자 증언 없이 84쪽에 “시민군을 제압하기 위해 M60 또는 M16 총기를 사용해 전일빌딩을 향해 사격을 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황당한 결론을 끌어내 국민에게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과학적·합리적 배척 사유를 들어 헬기 사격 주장의 물증이 없고 근거 자체가 빈약하며 실제 정황과 맞지 않는 데다 당시 관공서와 군 기록에도 전혀 존재하지 않아 조씨 주장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논리적 반박이 정부 조사위 공문서에 구체적으로 처음 기재된 것이다. 
 
15일 문재인정부에서 출범해 지난해 12월 공식 조사 활동을 종료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5·18조사위’·위원장 송선태)가 공개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직나-10)’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 5월27일 새벽 헬기 기총소사가 규명됐다는 다수 의견을 반박하는 소수의견이 처음 기재됐다. 
 
5·18조사위의 이종협 상임위원과 이동욱·차기환 비상임위원은 다른 위원들이 ‘기총소사가 사실로 규명됐다’는 취지로 전원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가 증명이 미흡한 일방의 주장을 근거로 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고 오히려 ‘헬기를 못 봤다’는 신빙성 있는 증언은 고의로 배제한 데 대해 질책했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직나-10)’ 보고서 표지.
구체적으로 위원 3인은 위원회의 실험사격 탄흔과 전일빌딩 탄흔 245개의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탄흔 크기가 최대 7.4배, 관입 깊이는 5.6배 차이 난다’는 회신을 받고 전일빌딩 탄흔은 헬기 기관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이어 전일빌딩 탄착군(탄흔이 모인 지점)은 수평사격이어야 가능한 각도인데 헬기가 고도를 낮춰 10층 높이를 유지했다는 ‘호버링(hovering.공중정지비행)’에 대한 목격자 진술이 없고 직접 총을 쐈거나 기관총 사격을 도왔다는 조종사와 사수·부사수의 증언이 없는 데다 기관총 사격 후 바닥으로 떨어졌을 탄피 200여 발 중 한 조각이라도 발견됐다는 역사적 기록이나 증언이 전혀 없는 점을 들어 설득력 있게 반박했다. 
 
또한 당시 전일빌딩 옥상에 있던 외신기자 2명과 건물에 있다가 체포된 시민군 김모 씨가 ‘헬기를 목격하지 못했다’고 신빙성 있게 진술했지만 전남대 출신이 주축인 5·18조사위에서 다른 상임 및 비상임위원들이 이 사실을 외면한 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전일빌딩 기총소사 시점으로 주장되는 5월27일 새벽은 계엄군이 전남도청 수복 작전을 위해 곳곳에 은밀히 몸을 숨기고 있던 시점이었는데도 군 기록물에 ‘헬기 사격’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마찬가지로 전남경찰과 전남도청·광주시청·동구청 등 관공서의 각종 상황일지에도 기록이 없어 조씨 등의 목격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보고 “헬기 사격의 진상이 규명됐다고 결론 내려선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조씨 등으로부터 비롯된 ‘기총소사’ 사건은 숱한 국가적 손실과 기회비용만 날려버린 채 허무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일방의 주장으로 남게 됐다. 
 
“표적 맞은 탄두가 뾰족?… 시위 군중 위협사격했다는데 본 사람 없어” 
 
이 상임위원 등 5·18조사위원 3인은 “헬기사격에 관한 ‘결정적 증거(스모킹건)’가 없다”며 전원위가 부실한 근거를 앞세워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막았다. 
 
이들의 논리적·과학적 반박을 살펴 보면 그동안 ‘헬기가 총 쐈다’는 조씨 주장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 것인지, 이를 질끈 부여잡은 5·18조사위가 얼마나 억지 논리를 덧대려 했는지, 이를 보도한 언론들의 팩트체크가 얼마나 함량 미달이었지를 손쉽게 가늠할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 이유로 “헬기 사격을 직접 실행하는 조종사와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사실을 알 수밖에 없는 정비사·무장사·승무원들이 헬기사격을 부인하는 데도 위원회가 정황 증거들만으로 헬기사격이 실제 존재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위원 3인은 못을 박았다. 
 
소수의견은 크게 △5월21일 광주천 헬기 사격 △5월27일 전일빌딩 헬기 사격의 두 가지 과제에 대해 ‘근거 없다’고 일치된 판단을 제시했다. 
 
▲ 군 헬기가 위협사격을 했다는 조사위 다수 의견에 대한 반대 논리로 소수 의견은, 위협하려면 시위군중이 모여 있어야 하고, 모인 군중 가운데 목격자가 없다는 건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직나-10)’ 보고서 159쪽.
 
먼저 이 위원 등은 “조사위가 21일 광주천 불로동 다리 상공에서 506항공대 소속 500MD 헬기가 광주천과 광주공원 및 사직공원을 향해 위협사격 수준 이상의 사격 사실이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조씨와 천주교 신도 이모 씨의 목격 진술은 당시 불로동 다리 주변에 상당수 시위군중이 밀집해 있었는데 헬기사격 목격자가 전혀 없다”며 “목격자가 없다는 것은 만약 헬기가 위협사격했다면 위협을 받을 사람이 전무했다는 희한한 결론에 도달한다”고 반박했다. 
 
또한 “전남경찰·전남도청·광주시청·동구청 등 관공서의 각종 상황일지에 헬기에서 사격했다는 내용이 없고 당시 도청 앞 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들 중에서도 목격자가 나오지 않아 (조씨 등의) 목격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소속이 다른 조종사들이 사격했다고 대화하는 소리를 광주비행장에서 들었다는 조종사 진술에 대해서도 이 위원 등은 “믿기 어렵다”고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이들은 “203항공대 UH-1H 조종사 고모·노모 씨 진술은 자신들이 직접 헬기 사격을 목격한 게 아니고 소속이 다른 코브라 또는 500MD 헬기 조종사들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는 전언 진술”이라며 “그러나 광주천변에 코브라 사격이 있었다면 20㎜ 발칸의 위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당시 광주천변에 있었던 많은 시위 군중이 인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목격한 사람이 없고 AH-1J 코브라 헬기나 500MD 헬기 사격 시 다량의 탄피들이 기체 밖으로 배출돼 떨어지는 데 어떤 실물 증거나 목격자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헬기 사격 지시·지원 요청·명령 하달이 존재했다는 진술만으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조종사·정비사 등은 헬기 사격을 부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명령 하달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헬기 사격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조사위 내부의 반박 의견.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직나-10)’ 보고서 159쪽.
 
조사위 보고서 154쪽은 ‘5월22일 광주로 출동한 AH-1J 코브라 헬기 사격의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다’며 31항공단 탄약관리하사의 진술과 조선대 절토지에서 발견된 한 발의 20㎜ 연습탄두 등을 근거로 적시했다. 
 
그러나 소수의견은 “31항공단 최모 하사가 코브라 헬기가 출동 시 20㎜ 발칸 탄약 헬기당 500발씩 총 1000발을 무장한 채 출동했으나 3분의 1가량 소모된 채 복귀했다고 진술했다”며 “그러나 이를 모를 수 없는 무장사나 정비사들의 증언이 전혀 없고 사격한 수량만큼의 탄피가 발견된 바도 없다”고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했다. 
 
20사단 전투상보 보급문서에 기록돼 있다는 ‘5월23일 20㎜ 발칸 탄약 1500발 항공대 보급’과 관련해서도 위원 3인은 “실제 보급이 이뤄졌다면 탄약을 보급해 준 20사단 탄약 업무 관련자와 코브라 항공대의 무장사나 정비사들도 모를 수 없는데도 이들의 증언이 없다”고 언급했다. 
 
▲ 끝 부분이 뾰족하게 원형을 유지한 채로 발견된 원형 탄두는 코브라 헬기에서 발사된 탄두가 아니라는 조사위 소수의견.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직나-10)’ 보고서 160쪽.
 
이어 조선대 절토지에서 발견된 한 발의 20㎜ 연습탄두에 관해서는 “M16 소총도 (표적에 맞으면) 탄두 끝부분은 뭉그러지는데 헬기에서 쏜 탄두의 끝부분이 뾰쪽한 것은 코브라 헬기에서 발사된 탄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과학적 근거에 따라 조사위 주장을 일축했다. 
 
또한 “발칸사격 시 10여 발씩 연발로 발사되고 탄착군이 형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발만 발견된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고 봤다. 
  
▲ 1980년 5월 항쟁기간에 전일빌딩 상공을 비행하는 군헬기. 연합뉴스
 
왜곡된 주장만 득세… “헬기 못봤다” 증언 고의로 외면 
 
이종협 위원 등 3인 전일빌딩 탄흔 245개 국과수에 의뢰 
“헬기 기관총 탄흔 아니다” 통보 받아… 과학적 근거 제시 
그동안 궤변으로 국민 현혹… 5·18 책임 軍에 뒤집어 씌워 
 
전일빌딩 헬기 사격 근거 없다”… 흥미진진한 과학적·논리적 내부 반론들 
 
송선태 조사위원장이 공개를 승인한 이번 보고서의 소수의견을 살펴보면, 그동안 헬기 사격 주장의 근거가 얼마나 빈약하고 일방적 추정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엿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일빌딩에 관한 조사위 보고서 154·155쪽도 ‘헬기 사격은 근거가 없다’고 위원 3인이 의견일치를 보였다. 
 
보고서는 “5월27일 광주재진입작전 당시 전남도청 일대 진압작전에 대한 항공부대의 작전 참가 과정에서 대공화기가 전일빌딩 옥상에 설치됐다는 첩보에 따른 전일빌딩에 대한 사격이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궤변을 늘어놨다. 
 
이에 대해 위원 3인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 같은 근거로 “위원회 실험 사격 탄흔 데이터와 전일빌딩 탄흔 데이터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전일빌딩의 탄흔 크기 데이터는 위원회 실험 사격의 탄흔 크기 데이터에 비해 약 1.5∼7.4분의 1 비율에 불과해 매우 작고 관입 깊이도 또한 약 5.6배 차이가 난다”며 “전일빌딩 내 탄흔의 크기 및 관입 깊이는 실험 사격의 탄흔 크기 및 관입 깊이와 차이가 너무 크게 나서 헬기 사격으로 인한 탄흔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 조사위가 자체 실험한 데이터를 국과수에 감정 의뢰한 결과, 이 결괏값과 전일빌딩 탄흔 크기 데이터는 크기와 깊이가 달라 헬기 사격 때문에 발생한 탄흔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조사위 다수 의견은 또다시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며 ‘진상 규명’ 결론에 이르는 정황 증거로 간주하려 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직나-10)’ 보고서 161쪽.
 
이어 “감정 결과에서 탄환이 유리를 통과한다든지 하면 탄흔의 크기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유리는 한 번 통과하면 깨지고 없어진다. 몇 발 정도는 탄흔의 크기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탄흔 크기 차이가 이렇게 현저히 나는 것에 비추어 헬기 사격으로 인한 탄흔이라고 보기에는 무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전일빌딩 옥상에 거치된 대공화기(LMG) 제압을 위해서 헬기가 격추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버링 상태에서 용감하게 임무 수행할 조종사는 없다”며 “전일빌딩에 남아 있는 탄흔은 UH-1H 헬기가 호버링 상태에서 M60기관총 또는 M16소총으로 사격했을 때나 생성 가능한 탄착군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밖에도 “‘계엄군 지상병력의 작전을 공중화력으로 지원하기 위한 헬기 사격을 포함한 항공작전이 전개됐을 가능성을 목격한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는데 당시 작전 상황과 전혀 맞지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시민 이모 씨는 ‘오전 3시30분쯤 적십자병원 삼거리에서 헬기가 병력을 내려놓고 도청 쪽으로 UH-1H 이동하면서 3번 사격했고 헬기에서 내린 병력도 도청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사격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는데 이는 당시 작전 상황과 전혀 맞지 않다”고 증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전일빌딩 내 탄흔과 UH-1H에서의 사격 상황이 현실적으로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들 위원은 “전일빌딩에 생성된 탄흔이 245개인데 시민 목격자들은 목격 시각도 제각각이며 한결같이 헬기가 잠깐 쏘고 사라졌다는 진술밖에 없다”며 “이러한 진술로는 전일빌딩 탄흔 245개를 설명할 수 없고 목격자들의 진술은 헬기 호버링 사격 상황이 없는데 호버링 사격이 아니고선 전일빌딩 탄흔 245개를 설명하기 어려워 목격자 진술은 상호 모순된다”고 판단했다. 
 
헬기 내에서 M16소총을 사용했을 경우 245발을 쏘기 위해서는 20발들이 탄창이 최소 12개 이상 필요하고 탄창 교환을 거치며 연속 사격했다면 발생하는 총구 과열 등 여러 문제가 설명되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이 위원 등은 “M60기관총의 경우 조사에 참여했던 위원회 전문위원은 ‘당시 UH-1H에도 기관총 거치대가 설치됐다’고 위원회에서 진술했으나 사진 제시 등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그 무엇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 같은 주장을 유지하는 위원이 누군지 소수의견에서 실명을 밝히진 않았다. 
 
이들은 또 “M60기관총을 사용할 경우 거치대가 없었다면 양손으로 들고 쏠 수밖에 없고 사격 시 반동으로 탄착군을 형성시키기 매우 어려워 전일빌딩 내에 형성돼 있는 탄흔처럼 한 공간으로 집중 사격이 가능하지 않다”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M60기관총은 사수와 부사수 두 사람이 운용하므로 이들의 증언도 실재해야 하지만 그런 증언이 없다는 점도 ‘헬기 사격’을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았다. 
 
소수의견은 “분당 발사 속도 550∼650발의 M60기관총을 기준으로 제작된 탄띠는 7.62㎜ 실탄 100발이 한 줄로 연결돼 있고 전일빌딩의 탄흔 245개가 M60기관총에 의한 것이라면 최소한 3번의 탄띠 교환을 위해 부사수가 세 번 이상 사수의 사격에 개입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헬기가 호버링 상태에서 사격했을 경우 아래로 쏟아지는 탄피 200여 발이 증거물이 될 수 있으나 5·18 당시 전일빌딩 일대에서 M60기관총 탄피 실물의 발견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헬기 사격과 전일빌딩 탄흔과는 현실적으로 연결 지어 설명할 수 없다”고 조사위 전체 결론을 반박했다. 
 
▲ 1980년 5월27일 새벽 전남도청 수복 작전이 은밀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곳곳에 숨어 대기하던 계엄군 중에 전일빌딩 10층을 향해 헬기가 총을 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진술이 단 하나도 없음을 지적한 소수의견.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직나-10)’ 보고서 161쪽.
 
계엄군이 도청 일대에서 본격적인 작전을 전개하기 이전에 육군 항공의 헬기들이 임무에 투입돼 오전 3시20분쯤부터 전일빌딩을 향해 사격한 것처럼 본문 내용에 기술된 점도 문제 삼았다. 
 
조사위원 3인은 “이 시간에는 이미 3·7·11공수여단 특공조 및 20사단, 그리고 이들의 길 안내를 맡은 경찰이 도청·전일빌딩·광주공원 인근에 은밀히 접근해서 공격 대기 중이었다”고 작전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은밀히 접근해서 공격 대기 중이던 계엄군 작전 병력 중에서 여러 증언자가 안 나올 수가 없고 피아 구분이 어려운 야간에 아군이 공격대기를 위해 배치된 지역으로 헬기를 띄워 사격할 정도의 공·지협동 항공작전을 계획했다면 지상작전부대와 항공작전부대가 사전에 협조 회의를 안 할 수 없다”며 “그런데 당시 지상작전부대와 항공작전부대가 사전에 협조 회의를 했다는 정황과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는 군사 상식에 배치된다”고 조씨 등의 입에서 시작됐고 미디어를 통해 소용돌이치며 기정사실인 양 굳어진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준용한 조사위의 비상식적인 결론을 꼬집었다. 
 
특히 “외신기자 로숑과 쇼벨은 자신들이 ‘27일 자정~오전 3시 사이에 전일빌딩 옥상으로 올라가 취재하다가 새벽 시간 전일빌딩에 투입된 11공수여단 특공조에 의해 옥상에서 밑으로 내려보내졌다’고 했다”며 “자신들이 전일빌딩 옥상에 있는 동안 헬기 사격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공개했다. 
 
또한 “27일 오전 2시쯤부터 전일빌딩 안에 있다가 빌딩 내부로 진입한 계엄군에게 체포된 시민군 김모 씨는 5·18조사위의 직접 조사에서 ‘27일 새벽 2시쯤에 탄창 2개를 받고 전일빌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며 “‘수위실에 있던 시간이 1·2시간쯤 되는 것 같은데 수위실에 있던 중에도 체포된 이후에도 총격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위원 3인은 “외신기자 로숑과 쇼벨의 증언, 그리고 시민군 김씨의 증언은 27일 전일빌딩 헬기 사격 여부를 밝히는 조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고 신뢰할 만한 진술임에도 조사위 보고서는 이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5월27일 광주 재진입 작전을 위해 ‘26일 오후 항공대장이 직접 공격헬기 조종사들을 집합시켜 구체적인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고 하는 내용이 본문에 기술돼 있다”며 “이렇게 진술하는 사람은 천모·노모 씨 두 사람인데 지시받았다는 내용이 서로 달라 신빙성이 떨어지고 다른 조종사 10여 명도 똑같은 지시를 받았을 텐데 추가 증언자가 없어 천모·노모 씨 진술의 신빙성을 더욱 의심하게 한다”고 진술을 배척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정부에서 불거진 ‘공군 훈련기 폭격대기설’이 전혀 근거 없이 날조된 허위사실임을 유튜브채널 이봉규TV에 출연해 낱낱이 밝혀낸 함선필(예비역 공군 대령) 민간 5·18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은 “개별적 사실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하나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며 “대부분 생업에 바쁜 국민은 물증이 없는데도 그럴듯하게 사실처럼 포장한 얘기를 듣다 보면 자동적으로 부화뇌동하고 세뇌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 조사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사실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 1980년 5월21일 오후 시위대가 헬기에 총을 쏴 헬기 탄흔이 생성된 사실이 정부 3급 기밀 자료로 확인됐지만 조사위는 이 사안을 철저하게 파헤치지 않았다. 군 3급 기밀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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