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5주년을 맞았다. 국가 권력의 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항거는 우리 민주주의의 전환점이었고 그 역사적 가치는 널리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그 정신을 기리는 방식이 점점 성역화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5·18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나 문제 제기에 대해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거나 형사처벌까지 가하는 분위기는 표현의 자유,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대표적인 예가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의혹 제기에 대한 무차별적 탄압이다. 공식 조사를 통해 해당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확인됐지만, 의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이 설혹 근거 없는 주장이라 할지라도, 반론과 사실 검증으로 대응하는 것이 민주사회다. 틀린 주장이라고 해서 처벌과 배제, 사회적 매장을 앞세우는 것은 더 큰 해악을 낳는다. 음모론은 억압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과 토론이 가능한 공론장에서 거짓은 자연히 설 자리를 잃는다. 특정 시각에 반하는 말은 ‘역사 왜곡’이라며 차단하고 낙인찍는 풍토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
5·18과 관련된 또 다른 쟁점은 유공자 선정의 불투명성과 과도한 특혜 논란이다. 5·18 관련 유공자는 국가로부터 주택 우선 공급, 의료비 면제, 자녀 취업 가산점, 각종 수당 등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공로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정당성은 있지만, 국민 세금으로 제공되는 지원이라면 그 선정 과정과 기준은 누구나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유공자 명단을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명단 비공개는 의혹을 부추기고, 전체 유공자의 명예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공적이 있다면 공개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비공개가 유공자 본인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유공자 심사 기준 역시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과연 어떤 행위가 어떤 수준의 공적을 인정받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예우만 제공된다면, 제도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멀어진다.
유공자와 그 가족이 누리는 혜택이 보훈대상자, 군 복무자와 비교해 지나치게 두텁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단순한 폄훼나 혐오로 몰아가선 안 된다. 성역이 아닌 제도라면, 사회적 정당성과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 누구나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질문을 막는 구조야말로 불신을 고착시키는 진짜 원인이다.
기억은 강요로 유지되지 않는다. 존중도 침묵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5·18이 성역화될수록, 오히려 국민과의 거리감은 커지고 역사적 의미는 정치화된다. 최근 정치권이 ‘헌법 전문 수록’이라는 형식적 명분에만 매달리면서 정작 사회적 합의와 성찰의 과정은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전문은 단순한 선언문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국민이 공유하는 최소한의 합의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국민 다수가 여전히 질문하고 있고, 제도적 불신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5·18을 헌법에 올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정신 자체를 정치화하고 협소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5·18의 진정한 정신은 국가 권력의 폭력과 억압에 맞선 자유와 저항의 가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역사적 상징이 새로운 억압의 도구로 전환되고 있는 건 아닌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5·18을 둘러싼 논쟁은 감정적 금기나 이념적 경계가 아니라, 이성적 성찰과 열린 공론의 장에서 이어져야 한다. 잘못된 주장에 대해선 반론과 팩트로 대응하고, 제도적 문제는 투명성과 공정성으로 해소해야 한다. 그것이 5·18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며, 살아 있는 역사로 만드는 길이다.
민주주의는 질문받는 체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5·18을 둘러싼 의혹 제기와 제도 비판조차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 된다면, 그때부터 기억은 신화로 고착되고, 신화는 권력이 된다. 그리고 권력화된 기억은 반론을 억압하고, 민주주의의 숨통을 죄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기억은 반론과 토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다.
아무런 근거 없는 사과의 종용이나 처벌 협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닌 정치적 손익계산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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