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때리는 일본보다 침묵하는 韓정부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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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핑계로 협박하는 일본 정부
국민 메신저 만든 네이버 축출 위기
국익 훼손돼도 한·일 관계 개선?

이상준 금융부장·부국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23 00:02:30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시누이가 미운 것은 겉으로는 내 편을 들지만 내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이버도 애써 키운 라인을 일본 기업에 넘기라는 시어머니(일본 정부)보다 내 편을 들지 않는 시누이(한국 정부)가 더 밉지 않을까. 라인야후를 팔라는 일본 정부보다 네이버를 보호하지 않는 한국 정부가 더 문제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국에 카톡이 있다면 일본엔 라인이 있다. 라인이 탄생한 계기는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네이버의 이해진 글로벌투자 책임자는 당시 지진 발생 지역의 교통이 마비되고 휴대전화가 통하지 않게 되자 “소중한 사람을 핫라인으로 이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일본 국민 약 80%가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 라인은 쇼핑과 금융·오락 서비스까지 더해져 생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일본 총무성은 올해 3월부터 라인야후에 개인정보 보호를 빌미로 행정지도를 실시했다. 동업하던 일본기업 소프트뱅크는 이때다 싶었는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했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관치 경제를 추구한다. 경제와 금융은 물론이고 기업 경영 방향까지 정부가 좌지우지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가 2018년 닛산을 자회사로 편입하려고 하자 일본 검찰이 카를로스 곤 르노 회장을 배임 혐의로 체포했을 정도다. 르노는 1999년 경영난에 빠졌던 닛산을 인수해서 부활시켰지만 일본식 관치 경제의 희생자가 되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억지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동안 라인야후는 라인의 아버지로 불렸던 신중호 이사마저 이사회에서 배제했다. 일본이 국민 메신저를 선물한 소중한 사람과 회사를 쫓아내려는 이유는 뭘까?

일본 총무성은 보안 문제를 내세웠다. 라인 개인정보(52만 건)가 유출된 지난해 11월 네이버클라우딩 해킹을 거론했다. 2021년 4월 페이스북 개인정보(43만 명)도 유출된 사실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를 제재하지 않았다. 미국 기업 메타에 아무 말도 없었던 일본 정부가 유독 한국 기업 네이버만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퇴출하는 법을 만든 것처럼 일본도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네이버를 압박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안보 핑계도 억지에 가깝다. 미국이 만든 틱톡 퇴출법은 적대적인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중국과 달리 한국은 일본과 우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한·일 관계 개선이 양국 국민에게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 기업 때문에 안보 문제를 걱정한다면 한국을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은 일본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까지 맺었는데 적성국 취급을 받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침묵할까.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를 자처했던 윤 대통령은 기업 하기 가장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은 최근 “정부를 믿고 마음껏 기업활동을 하시고 해외시장에 계속 도전해 주시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시장에 도전해서 성공한 네이버가 일본 정부 협박에 전전긍긍할 때 정부는 침묵했다. 네이버 노조가 “대한민국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이고 단호한 조치를 요구한다”고 외쳐도 대통령은 침묵했다.

정부의 친일본 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정부는 아낌없이 일본 정부에 협력했다. 심지어 핵 오염처리수를 태평양에 방류해도 한국 정부는 앞장서서 안전하다고 떠들었다. 핵 오염처리수를 걱정하는 국민 목소리가 많았지만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국민을 설득할 정도였다. 핵 오염처리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정부는 네이버 지분 매각 강요엔 오히려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네이버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했지만 말리는 시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외교부는 일본 총무성에 해명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네이버 지분 매각을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는커녕 반일 여론을 고려해 언론 인터뷰를 주선했다. 기자회견을 요청했던 도쿄 특파원들이 딱 한 명과만 전화 인터뷰를 하겠다는 총무성 요구를 거절하자 외교부는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외교부 노력으로 나온 기사 제목은 ‘日 총무성 당국자, “라인야후 행정지도, 지분 매각 강요 아니다”’였다.

한 외교관은 보수언론 특파원에게 물었다. “한·일 관계 개선을 가장 기뻐하던 당신이 왜 논란을 일으켰냐?” 조선일보 특파원의 대답이 대통령에게도 알려졌길 바란다. “우리 국익을 훼손하면서까지 한·일 관계 개선을 기뻐할 수는 없다.” 맹목적인 관계 개선에 대한 비판이었다. 기업 이익이 국가 이익으로 연결되므로 네이버 이익을 지키지 않으면 국익도 훼손된다.

정부와 여당은 일본 정부가 아닌 야당을 공격했다. 네이버를 압박한 일본 총무상이 한·일합방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후손이라고 비판했다는 이유로 반일 감정을 부추긴다고 비난했다. 핵 오염처리수 방류 때와 똑 같은 행태다.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는 전략이다. 네이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라면 라인을 소프트뱅크에 넘기려는 시어머니(일본 정부)보다 지분을 지켜 주기는커녕 반일 감정이 잘못이라는 시누이(한국 정부)를 미워할 만하다.

이상준 금융부장·부국장대우 ju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