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유통산업발전법’ 누구를 위한 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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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27 00:02:30

소비자는 유통산업의 발전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하던 식자재들을 매일 아침 새벽 배송으로 받아 볼 수 있게 됐다. 오프라인을 젖히고 온라인 플랫폼이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유통 환경이 바뀌었다. 새벽 배송이 일상인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유통법 개정안)이 폐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과연 이 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소비 트렌드가 바뀌었는데 뒤떨어진 유통법이 대형마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유통법 개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제21대 국회 회기가 29일까지인 것을 고려하면 유통법 개정안은 사실상 폐기된다. 유통법 개정안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새벽 온라인 영업 제한 등을 완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대형마트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 목적으로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2012년부터 월 2회 의무휴업을 하고 있다. 또 전국 대부분의 대형마트는 의무휴업일을 둘째·넷째주 일요일로 지정하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평일 전환은 2월 대구시를 시작으로 5월 청주까지 적용한 이후 지지부진했지만 서초구가 12월 자치구로선 처음으로 대형마트 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꾸면서 다시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유통법 개정안이 폐기되면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의무휴업일 규제는 과거 ‘마트 대 전통시장’이라는 프레임에 의해 만들어진 규제”라며 “‘오프라인 대 온라인’으로의 프레임 전환이 이뤄진 지 오래됐는데도 규제는 여전히 과거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유통산업발전법이 실효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국내 전통시장은 2013년 1500여 곳에서 지난해 1300곳으로 200곳가량 줄어들었다. 또한 대형마트도 2019년 423개였던 매장 수가 지난해 401개로 줄며 업황 악화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적용되지 않는 온라인 유통업체는 대형마트의 몸집이 줄어드는 동안 급성장했다. 김지향 서울시의회 의원(기획경제위원회 소속)이 발표한 ‘서울의 온·오프라인 소비지출 변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인 2·4주 일요일에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소비지출은 감소했지만, 전통시장 또는 골목상권 등의 소비지출도 늘지 않았다. 이는 서울시의회와 서울연구원이 국내 대형 카드사에 공동으로 요청해 서울 시민의 소비 형태를 조사한 결과다.

한 대형 카드사가 서울에 거주하는 카드 소지자를 대상으로 2019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5년간의 카드 지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6월 쿠팡·마켓컬리 등 무점포 온라인 마트 대상의 지출이 코로나19 이전 시기보다 63.7%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오프라인 지출은 21.9% 오르는 데 불과했다. 오프라인 지출의 경우 주중보다 주말에 쏠린 반면 온라인 지출은 주말에 감소세를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업계에서도 국내·외 e커머스의 부상과 유통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유통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유통 채널에서 대형마트와 온라인 마켓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7.8%·28.4%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4년 4월 기준 대형마트는 13.35%로 절반 이상 줄어든 반면 온라인 마켓의 비중은 49.8% 늘었다.

유통법의 취지였던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은 이미 그 빛이 바랬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플랫폼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유통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평일 전환과 새벽 배송을 허용하고, 오프라인 시장의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들을 제공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제22대 국회에서는 유통법 개정안이 통과돼 오프라인과 온라인 플랫폼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바란다.

김나윤 기자 ny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